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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2인자들 - 그들은 어떻게 권력자가 되었는가
조민기 지음 / 책비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인자보다도 어쩌면 더 치열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2인자들의 이야기 <조선의 2인자들>.
충신이라 해도 정치 상황에 따라 한순간에 훅 갈 수도 있었고, 간신이라 해도 실패한 삶을 살지만은 않았던 조선의 정치가들. 그들의 성공과 실패는 현재 정치판과 크게 다를 게 없더라고요.
조선 건국과 관련한 인물로 이성계와 정도전, 조선 창업과 관련해 이방원과 하륜, 종친과 외척 대표 인물로 수양대군과 한명회, 간신과 권신으로 임사홍과 김안로, 당쟁과 관련해 이준경, 송익필. 이렇게 10명의 2인자들이 등장합니다.
기록으로 남겨진 것이어도 후대의 평가가 편파적이거나 관대한 경우가 많다고 해요. 특히 임금을 보좌했던 신하에게 그런 일이 많은데, 망자의 명예라며 미화한 부분이 많아 조민기 저자는 보이는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조선의 2인자들>을 읽으며 이 사람에게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점도 많았습니다.
조민기 저자의 전작 <조선임금잔혹사>에서도 느꼈는데 이 저자분 스토리텔링 참 재밌어요.
딱딱하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는 감각적인 글이 <조선왕조실톡> 웹툰을 보는 것만큼이나 읽는 맛 나게 합니다.
정몽주, 정도전, 이성계의 관계부터 이야기하는 조선 건국 시조 이성계 편. 아들 이방원의 손에 의해 정몽주가 제거된 사건 이후 이성계의 앞길은 쭉쭉 펼쳐집니다. 변방의 무장으로 고려의 2인자에서 조선의 건국 시조가 되면서 2인자에서 1인자로 등극하게 되고요.
조선 건국의 설계자 역할을 한 정도전은 천재 혁명이가 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설계한 나라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은 실패한 정치가로 결국 삶을 마감합니다. 정도전의 지나친 독선에 관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충격적이었어요.
개국공신에 이름도 못 올리고 백수 신세에 정도전의 견제까지 받았던 이방원 편은 요즘 <육룡이 나르샤> 드라마 덕분에 더 관심 있게 읽었네요. 이성계의 자랑인 아들에서 애증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 이방원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처세의 신 하륜을 만나면서 이방원은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합니다. 이방원이 왕이 된 후 2인자가 된 하륜은 성공한 신하의 모범이라 평가받을 정도로 정치적 보복 없이 임금에 대한 충성과 끊임없는 인재 천거 등 정도전과 완전히 다른 정치생활을 했더라고요. 개혁은 정몽주처럼, 혁명은 정도전처럼, 인생은 하륜처럼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게 됩니다.
소소한 에피소드도 깨알 재미 줍니다. 아들에게 삐진 이성계를 간신히 데려오니... 이방원을 보자마자 이성계는 욱하는 심정에 활을 쏘질 않나, 철퇴를 내리치질 않나. 이게 장난 아니게 살벌했다고 해요. 이때가 이방원이 이미 왕이었던 시기였는데 말이죠. 철퇴를 내리쳤을 땐 신하가 죽기까지 했을 정도니. 그런데 이걸 예상하고 대비한 게 바로 하륜이었습니다. 뭔가 신기가 있는 ^^;;;
권력을 욕망하며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을 보면 참 허탈해지긴 하지만... 권력의 흐름을 읽는 눈이나 화려한 권모술수와 처세술을 발휘하는 2인자들을 보면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금수저로 태어나 경제적 뒷받침이 튼튼했든, 흙수저로 태어나 줄을 잘 타든 간에 권력의 힘을 맛보기 위해서는 인맥 형성이 관건이더군요. 인맥 형성의 고전적인 방법은 정략결혼이었는데, 결국 왕이 된 자나 신하로서 2인자가 된 자나 대부분 이 정략결혼의 맛은 빼놓질 못하더라고요. 이리저리 얽힌 관계를 보면 정신이 없을 지경입니다. 특히 척신정치 세도가로 명성을 날린 한명회는 얼마나 인맥 관리가 남달랐는지 6대 단종부터 9대 성종까지 무려 4번을 공신과 1등 녹훈을 받은 조선 역사상 유일무이한 경우라고 하네요.
<조선의 2인자들>에서는 한명회보다 더한 절대간신 임사홍의 평가를 조금 느슨하게 합니다. 금수저로 태어나 과거 급제까지 한 엘리트여서 더 시기와 질시의 대상이 되어 비난을 심하게 받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네요. 긴 세월 정치판에서 난리 친 사람도 아니었고 짧고 굵게 딱 3~4년에 불과했던 시기만 실제 정치활동을 한 임사홍. 솔직히 이보다 더한 사람도 있는데... 요런 느낌이었어요. 게다가 왕으로서 비난을 제대로 받은 연산군 시절의 신하였던 터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평가가 박했네요.
권모술수의 궁극을 보여주는 치밀한 계획의 달인 김안로에 대해서는 오히려 후대의 평가보다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일단 맑고 깨끗한 선비의 풍모를 보여준 김안로. 외모와 시대적 상황 등에 의해 오히려 임사홍보다 더 악습과 폐단을 남긴 인물임에도 후대에 비난을 적게 받는 이라고 하네요.
권력의 중심에 있었으면서도 권력을 추구하지 않았던 이준경 이야기도 새롭게 기억에 남게 되었습니다. 붕당의 시대를 예언하며 진심이 담긴 유언을 선조에게 남겼는데, 그 유언이 할 말 안 할 말 다 내뱉은 글이어서 충격적이면서도 속 시원해지더라고요.
조민기 저자는 조선 시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종시대를 잘 봐야 한다고 합니다. <대장금>에서 "맛이 참 좋구나."만 기억나는 중종 이미지 때문에 우리는 중종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고 하네요. 무려 39년이란 긴 재위 기간, 무책임한 군주의 전형이었던 중종. (그 완성은 선조가 이뤘다는 말에도 빵 터졌고.)
그 시대 드디어 동인과 서인의 당쟁 역사가 시작합니다. 서인의 제갈공명이라 불린 송익필의 숨은 활약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하면 읽어보세요.
<조선의 2인자들>에는 조선상식노트라고 해서 소책자가 함께 있는데, 본책 중간중간에 소개한 토막상식을 이곳에 다시 모아뒀고, 10명의 인물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소책자만 봐도 스토리가 술술 기억나네요.
그나저나 당쟁의 역사는 이제 시작인데 이 사람들로 끝? 싶었더니 역시나 <조선의 2인자들> 2탄 준비 중이라네요. 내년 출간예정인 2탄에서는 치열한 당쟁의 브레인들, 조선의 패망과 관련해서 한 몫 챙긴 이들이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조선임금잔혹사>로 조선 왕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조선의 2인자들>로 조선 충신과 간신의 X파일을 들여다볼 수 있어요. 역사 이야기 지루하거나 어려워서 접할 시도를 못 했던 분이라면 이렇게 가볍지 않되 적당히 묵직한 스타일의 책, 읽는 맛 좋으니 추천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