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연출의 사회학 -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
어빙 고프먼 지음, 진수미 옮김 / 현암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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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 곧 사회적 삶은 연극이라는 말일까요.

제목부터 뭔가 묘하게 수긍하게 됩니다.

 

1959년에 출간된 사회학 고전 <자아 연출의 사회학>이 드디어 번역판으로 나왔습니다. 20세기 후반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이 책에서 개인이 일상에서 남들에게 자신을 표현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당시 주류와는 다른 형태의 연구를 통해 학교, 군대, 병원, 가정, 정계 등 사회 곳곳의 사례를 파헤치며 비주류로서 미국 사회학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는 점이 인상 깊었네요.

어빙 고프먼은 고전 문학에서 사례를 많이 뽑아내기도 했는데 사회학자로서 문학에 상당한 조예가 보여 딱딱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고, 문학 속 사례는 일상 사례보다 오히려 더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개인은 자신을 표현하는 행동을 하게 마련이고 상대방은 그 인상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거짓 정보를 전하기도 하는 속임수, 위장도 있게 마련인데요. <자아 연출의 사회학>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을 '연출'하는 개인의 관점으로 즉, 개인이 남들 앞에서 행동할 때 택하는 극적 연출의 문제를 사회학적 분석으로 다룬 책이랍니다. 특이하게 연극 용어를 사용하며 설명하고 있는데 이게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했어요. 연극 무대로 한번 꼬아 설명하는 게 더 적절한 비유가 될 때도 있었고, 오히려 낯설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었단 말이죠. 하지만 대체로 비유는 절묘하긴 했어요.

 

자아 연출 방법을 진심으로 자기가 연출하는 인상이 진정한 실체라고 확신하는 경우와 가면극처럼 냉소적인 경우로 나눠 설명하는데, 결국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보는 사람은 겉모습과 몸가짐으로 인상을 판단하게 됩니다. 겉모습은 사회적 지위나 개인적 의례 상황을 알려주고, 몸가짐은 어떤 역할을 할지 예상할 수 있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서비스직은 청결함, 세련됨, 유능함, 진실함을 부각하고 표현하듯 말이죠.

 

 

 

이런 연기는 사회가 이해하고 기대하는 틀에 들어맞도록 이루어지고 수정된다고 해요.

인간은 여러 방식으로 이상화된 인상을 보여주려는 경향이 있고, 이상화된 자신의 면모를 세상에 보여주려는 충동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회화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반면 부정적 이상화도 있습니다. 일부러 낮은 지위 취급을 감수하는 거죠. 이렇게만 보면 설마? 싶었는데 다양한 사례를 언급해주니 아하~ 최고점은 길거리 거지 공연이라는군요.

 

 

사회적 자아는 한 가지만이 아니라 소속된 집단의 수만큼 많은 사회적 자아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분, 에너지에 따라 변하는 충동을 지닌 존재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자아와 사회화된 자아 사이에 결정적 불일치가 있기도 하는데요,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연기를 잘한다는 사실. 사람들의 됨됨이는 겉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런 겉모습 역시 관리될 수 있다는 점을 <자아 연출의 사회학>에서 계속 다룹니다. 정말 이렇게만 보면 복잡한 자기기만의 삶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사회적 자아는 개인에서 팀으로 확장할 때 더 강력해집니다.

노선유지 들어보셨죠? 공식적으로 유지하는 인상에 모순되는 의사소통 때문에 당황해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로 정치판을 들 수 있겠네요.

 

 

 

성공적으로 배역을 연기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질로 인상 관리의 기술을 다루기도 합니다.

의도치 않은 실수, 불의의 기습, 결례 등의 상황에서 일어나는 사건에서 말이죠. 보통 허둥대고, 불편해지고, 당황하거나 과민 반응을 보이기 마련인데 이때 가면에 가려진 개인의 이미지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걸 방지하는 방어 수단들을 보니 배우지 않고서도 우리는 자신을 나름 잘 방어해오고 있었구나 조금 허탈하기도 했어요. 수습 기법을 활용해 짜고 치는 고스톱판처럼 대다수 사회적 상호작용이 이렇게 이뤄지는 거죠.

 

고도로 주의 집중하는 모습이 뚜렷이 드러나는 취업 면접을 생각해보면 겉모습, 몸가짐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됩니다. 무심결에 좋지 않은 인상을 줄지도 모르는 위험에 대비하고 신중을 기하죠. 연극적 용의주도함을 발휘하는 시간입니다.

 

개인은 순간적인 인상을 토대로 과거와 미래를 짐작하며 연기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자아를 어느 정도 동일시해 대하는 경향이 있고, 알면서도 속는 것처럼 태도를 보이기도 하죠. 남을 판단할 때 그렇게 하니 반대로 내가 당하는 입장에서는 관찰자의 감수성과 공정성을 믿기보다는 그전에 본인이 원하는 쪽으로 유도하는 행동 조절을 하게 되고요.

 

​"우리는 모두 이런 식으로 부질없이 남들이 상상할 것 같은 우리 모습을 상상하기 때문에 최악의 인간이 될 수 있다." - p295

 

누구나 겪는 자아 연출의 문제는, 계략임을 눈치채고도 자기에게 굽히는 척 속임수를 쓴 나를 경멸하는 것 같은(p296) 수치심도 알게 모르게 생긴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공연자로서 역량을 발휘해 자신의 됨됨이와 자신이 이룬 성과가 보편적 평가 기준에 부합한다는 인상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중략) 우리는 공연자로서 도덕성을 파는 장사꾼인 셈이다." - p314

 

물론 우리 사회 전체를 연극적 관행으로만 규정지으려는 시도는 삼가야 한다고 어빙 고프먼 저자는 말합니다만, 어쨌든 사람들이 타인과 주고받는 인상이 사회적 삶을 표현하는 구성 요소의 원천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닐까요. 늘 확고한 도덕적 기준을 준수하고 사회화가 잘된 인물이어야 한다는 의무가 자리 잡고 있으니까요.

 

<자아 연출의 사회학>을 읽으면서 우리의 참된 자아란 도대체 뭘까 고민하게 됩니다. 허상 같은 자아인가 싶을 정도로요. 상황에 따라 나타나는 다양한 자아. 이것은 '관계'에 의존해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나타난 것이고, 이것이 바로 사회가 유지되는 비결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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