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인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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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을 앞두고 출간된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전집.

14권 중 11번 째 책, 행인을 읽으며 3차분 출간된 분량까지 모두 읽었습니다.

이제 몇 개월 후 마지막 세 권만 더 나오면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장편소설 전집은 완간되는군요.

 

 

 

 

<행인 行人>은 읽으면서 좀 놀랐던 작품이었어요.

출간 순으로 쭉 읽어오다보니 나쓰메 소세키 작가의 심적 변화, 문학관을 동시에 엿보며 읽어올 수 있었는데, 소세키 후기 3부작이라 일컫는 <행인>은 그야말로 존재론적 질문으로 가득합니다.


1912년 12월부터 약 1년 간 아사히 신문 연재된 <행인>.

그런데 위궤양과 신경쇠약으로 연재중단을 했을 정도로 나쓰메 소세키 작가의 건강악화가 있었는데요. 이때 5개월 정도 중단된 시점에 나쓰메 소세키의 심적 변화가 특히 크게 작용했는지... 완결을 거의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분량이 대폭 늘어난 소설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4장은 그래서 좀더 작가의 마음을 읽어보려고 노력하면서 책장을 넘기기도 했네요.


<행인>에서는 사랑의 여러 형태가 등장합니다.

뭔가 화끈함을 예상할만한 묘한 관계도 나와서 어어? 갸웃거리며 읽기도 했어요.

친구 미사와와 '나'의 경쟁구도, 친구 미사와의 옛 사랑 이야기, 어머니의 친척 오카다 부부 이야기, 아버지가 들려준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가장 직접적 관계를 맺는 형 부부 이야기. 특히 형과 형수 관계에 '나'가 엮이면서 '나'는 그저 관찰자 입장이 되고, 형의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형이 '나'에게 질문한 "넌 남의 마음을 알 수 있어?"에 담긴 형의 속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형의 심적변화를 흥미진진하게 이끌고 있어요. 체면불구하고 동생에게 물은 저 말은 영혼 즉 정신도 얻지 못한 여자와 결혼한 자신을 드러낸 말입니다. 정신을 얻지 못하면 만족할 수 없다는 조지 메러디스 작가의 글을 인용하면서 형 부부관계의 불안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형이 '나'에게 형수의 정조를 시험해달라는 제안입니다.

형의 최대 관심사는 아내의 진실을 아는 것이죠. 남편을 사랑해야 할 아내가 시동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신을 가졌던 형. '나'는 형이 말하기 전까지는 형수를 그렇게 생각해본 일조차 없다가 갑자기 사건의 중심에 엮여버리네요. 형이 궁금한 것은 과연 아내가 누구를? 입니다.

그렇다고 아니, 형수와의 하룻밤을 제안하는 형이라니. 이런 어이상실하게 만드는 사건이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서 나오다니! 드디어 소세키 작가의 소설에 19금 등장하는가! 


 

그러다 정말 본의아니게 형수와 단 둘이 있는 상황에서 천재지변으로 옴짝달싹 못하게 된 사건이 생깁니다.

두려움과 흥분의 마음을 오가는 '나'를 그린 묘사는 독자들을 제대로 낚아버립니다. 갈팡질팡하는 사고의 흐름을 고스란히 묘사했던 소설 <갱부>를 다시 만난 느낌입니다. 실망스럽게도(?) 예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ㅋㅋ

​형수의 마음은 솔직히 끝까지 모르겠더라고요. "남자들은 패기가 없어요, 막상 일이 닥치면요." 라고도 말하는 형수. 친절을 가장한 교태인지.


'나'는 사실 뚜렷한 연애관이 없습니다. 친구 미사와와의 경쟁에서도 딱히 연애관과 결혼관이 없는 상태로, 막상 부딪히면 현실을 회피하는 성향의 인물입니다. 이런 '나'가 형 부부의 갈등에 휘말려가는 과정이 흥미롭더라고요. 

형은 '나'에게 신곡의 파오로와 프란체스카의 불륜을 이야기하며 "인간이 만든 부부라는 관계보다는 사실 자연이 만들어낸 연애가 더 신성하니까" 라는 말도 합니다. 이런 형을 두고 있는 '나'는 얼마나 가시방석일까요. 정작 아무런 일도 없었지만 위축되는 상황입니다.

 

 

 

​후반에는 H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동안 관찰자 입장이었던 '나'에서 H가 형을 관찰하는 입장으로 바뀌는 구도를 보여줍니다. 불안을 극복하지 못하고 점점 이상해져가는 형과 여행을 하면서 관찰한 것을 적은 장문의 편지가 마지막 장을 상당히 차지하네요. 이때 비로소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자의 불안한 내면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습니다.

"자네 마음과 내 마음은 도대체 어디까지 통하고 있고 어디서부터 떨어져 있을까?"라는 형의 질문에 H씨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는 다리는 없다"며 독일 속담을 인용합니다.


자신에게 성실하지 못한 자는 결코 타인에게 성실할 수 없는 거라며, 성실을 가장한 거짓을 비꼬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본인도 아내에게 얼마나 성실했는가 하는 자기반성의 모습은 그동안 없었죠.

하지만 이제 불안장애가 극에 달한 형은 ​"죽거나 미치거나, 아니면 종교에 입문하거나, 내 앞에는 이 세가지 길 밖에 없네." 라는 말로 연구적인 내가 실행적인 나로 바뀔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쉽게 자극 받으면서 어떤 자극에도 끝까지 견디지 못하는 약점을 가진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행인>.

정답은 없지만 삶의 의미와 살아가는 이유를 고민하는 존재론적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보려는 과정을 형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 같아요. 불안장애를 겪는 형의 모습은 신경쇠약으로 고생한 소세키 작가 본인의 모습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세키의 에고 ego 3부작이라 불리는 <춘분 지나고까지>, <행인>, <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 마지막 4차분에서 출간될 <마음>에서는 어떻게 진행될지 기대됩니다.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진실이라는 주제 자체가 어렵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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