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
샤론 모알렘 지음, 정경 옮김 / 김영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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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만족스럽게 읽은 책이랍니다. <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는 유전적 유산을 보는 시각을 확 바꿉니다. 유전이라 하면 고스란히 물려받는 고정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DNA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연한 유전이라는 것을 알려주네요.


저자 샤론 모알렘은 인체생리학, 신경유전학 및 진화의학 박사로 생명공학 분야에서 혁신적인 발견으로 수많은 상을 받은 과학자라고 합니다. 특히 희귀 유전병과 관련한 연구를 통해 생명공학 관련 특허를 열아홉 개 획득하기도 했다는군요.

 

<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는 희귀유전병의 사례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다루고 있어요. 과학의 대중화를 위한 글이기에 의사로서 경험한 다양한 사례를 개인적인 이야기와 버무려 쉽게 설명해 읽는 맛도 좋았고요. 이야기 도중 살짝 옆길로 샜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지만 놀랍고 신비로운 이야기에 눈을 뗄 수 없었어요.


유전병을 진단하는 것은 간단하고 미묘한 단서만으로도,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해준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외양이 유전적 혹은 선천적 질환을 가졌는지 진단할 수 있는 신체의 단서들. 손, 눈, 코, 입, 턱... 이런 것을 통해 유전병을 알아내기도 한다는 게 참 신기하더라고요.

 

 


 

현대 유전학의 아버지 멘델의 콩 실험은 누구나 알고 있죠.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어떤 형질이 전해진다는 것을 발견한 멘델. 하지만 그의 실험에서는 중요한 게 빠졌습니다. 바로 유전 발현의 다변성입니다. 같은 유전자여도 다른 발현이 있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던 멘델식 유전 운명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 당신 세포들의 핵 속에는 자물쇠고 꽉 잠긴, 당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그리고 어디로부터 왔는가에 대한 백과사전이 있다. 여기에는 또 당신이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단서도 있다. ” - p42



 

 

균형식단을 했지만 결국 간암으로 이어진 제프의 사례는 과일과 채소가 맞지 않은 경우였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피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제프도 유난히 과일과 채소를 쳐다보지 않고, 육류 위주 식습관이었는데 의사의 조언에 따라 균형 잡힌 식단으로 바꾼 것이 그에게는 독이 된 겁니다. 유전병이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니고 원래 지니고 있던 거였고요. 그전까지는 유전병이 있는 줄 몰랐다가 뒤늦게 밝혀진 상황입니다. 그동안은 잠잠하게 있던 것이 왜 하필 균형식단 때문에 발현되었을까? 내 유전적 구성에 절대 맞지 않는 몇 가지 음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는 모두 각자의 특정한 유전적 유산에 꼭 들어맞는 방식으로 먹어야 한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사례는 제프처럼 평균 또는 대부분이라는 보편적 상식을 벗어나는 사례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중 누구도 대다수에 속한다고 확신할 수 있겠느냐고 샤론 모알렘은 묻습니다.


“ 당신의 행동이 당신 유전자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고' 또 '결정하기 때문'이다. ” - p51


동일한 DNA도 어떤 요인에 따라 유전자 발현에 차이를 가져온다는 후성유전학.

꿀벌 여왕벌과 일벌은 유전자가 같지만, 여왕벌이라는 유전적 발현은 단지 로열젤리 때문이라는 것. 어찌 보면 허무하기도 하네요. 로열젤리가 일벌로 만드는 유전자의 발현을 줄이도록 도운 거라고 합니다. 발현의 문제였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유전자를 켜고 끄고, 혹은 발현량 조절 방법까지 고안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유전자 발현에 영향 주는 것들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바로 약, 식습관, 운동, 스트레스 등 우리 삶의 경험입니다. 집단 따돌림을 예로 들며 설명한 걸 읽고는 정말 놀라웠어요. 나는 기억 못 해도 유전자는 기억한다니...


샤론 모알렘은 이런 정보들을 토대로 생활습관을 좋은 쪽으로 유도해 스스로 삶의 선택을 하는데 유용하게 쓰라고 조언합니다. 좋은 음식을 찾아 최근 우리 조상이 먹은 것처럼 먹고, 활동적으로 살면서 자신의 몸이 말하는 것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합니다.



유전학, 음식, 특정 미생물의 조합에 따라 유전자 발현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평범하게 쓰이는 약품이 독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사례도 나옵니다. 약품 권장량은 유전적으로 다수의 규정에 맞을 뿐, 유전적 소수자들의 요구는 무시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평균의 함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유전자에 따라 그 좋다는 오메가3가 독이 되기도 하고, 성장호르몬 역시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요소가 다분한 점을 일깨워주기도 했고요.


 

흥미로운 또 다른 사례로는 고산병이 거의 생기지 않는 고산 지대에 적응한 셰르파 이야기였어요. 에베레스트 산에서 등반가들을 도와주는 일꾼으로 사는 셰르파. 그들에게는 산소가 부족한 고산에 유리한 특정 유전자가 있었습니다.

 

셰르파 사례를 보며 미래에는 유전적 급수에 따라 경쟁하는 스포츠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저자의 예측에 공감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피 속에 적혈구가 더 많은 유전병은 극한 스포츠에 아주 유리하거든요. 그런 유전자가 없는 사람과 그 종목에 유리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경쟁하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사회가 아니지 않겠어요? 미래에는 선수들에게 유전자 검사가 필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유전자를 가지고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말도 나옵니다.

미국에서는 반-가타카 법이라 해서 유전학적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보험에는 적용이 안 된다니 반쪽 법안입니다. 이제는 유전자 검사의 문턱이 낮아졌고 검사 비용도 점점 낮아지는 추세인 데다가 기술은 더욱 좋아질 텐데, 그와 관련한 도덕적 사항들은 여전히 SF영화 가타카에서 본 유전에 따른 차별 세상을 방지하긴 힘든 수준이군요.


 

셰르파 사례에서처럼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바람에 고산 적응을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면 그런 유전적 유산 없이도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하거나 고산병을 이겨내고 결국 목표를 성취하는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 결국 슈퍼히어로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물려받은 유전자에 달렸다기보다, 하루하루 스스로 슈퍼히어로가 되기로 선택하는 데 달린 것이 아니겠는가. ” - p212


누구는 괜찮고 누구는 위험하고의 문제가 모두 유전학적으로 다양하기 때문이며, 유전은 단지 수동적으로 받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기회를 잘 이용하면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될 수 있다는 데 가만히 있을 수 없군요. 내가 받은 유전자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노력하면 위험한 발현을 막을 수도 있고, 좋은 쪽으로 발현할 수 있다는 후성유전학, 매력적이네요. 수동적인 운명론 극복이군요.

이렇듯 나를 온전히 나로 있게 하는 건 아주 작은 유전자 변화입니다. 내 행동으로 내 유전자 운명을 결정한다니. <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는 자신의 유전적 유산을 스스로 잘 관리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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