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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가 사는 집
김상현 외 지음, 전홍식 옮김, SF&판타지 도서관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15년 10월
평점 :
2014년 국립과천과학관에서 SF어워드 시상식이 열렸는데요, <조커가 사는 집>에 소설 분야 수상작 일부가 실려있네요. 그동안 나올만한 소재는 거의 다 나온 SF계이기에 뻔한 소재보다 새롭고 참신한 가상현실 소재를 다룬 작품 위주여서 읽는 내내 실험정신을 마구 느낄 수 있었어요.
<조커가 사는 집>은 SF어워드 단편 부문 수상작 외 국내 SF소설계 정상급 작가들의 글과 번역 작품도 한 편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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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문예창작과 출강 교수 김상현 작가의 단편소설인 『조커가 사는 집』은 카드카운팅을 접목해 머릿속의 구체화 작업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상황인데,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모호하단 느낌을 받았네요.
“ 존재하게 하려면 통제해야 한다. 통제하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꿈과 같다. ” - p30
상상한 카드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진짜 같아지는 기분을 느끼는 주인공. 매일 한 시간씩 재정비를 하지 않으면 와르르 무너지기도 하고요. 그러다 떠올리지도 않았는데 어느날 나타난 통제 안 되는 조커가 심상찮습니다. 머릿 속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는게 바로 통제였다면, 이제는 자기 머릿속을 통제하지 못하는군요.
책 제목과 동일한 SF 단편소설 『조커가 사는 집』은 제가 이해하기엔 조금 어렵단 느낌을 받았는데, 아마 작가의 상상력을 못 따라간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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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상으로 가는 길』 은 장르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좀비 소재인데 황금가지 제2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왜소증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좀비가 되기까지의 상황만으로 끌고 나가는 이야기가 오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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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군은 울지 않는다 』 단편소설은 제1회 SF어워드 소설 부분 수상작인데요.
중간중간 배꼽잡을 만한 상황이 나와서 신선했어요. 지구 정복하러 온 외계 전사들이 안전하게 공간이동을 하기 위해 선택한 장소가 바로 산모 뱃 속. 아기로 태어나게 된 어처구니 없는 상황도 재밌었지만, 뭣보다 온전하게 아기를 낳지않고 낙태하는 바람에 외계 전사들 대부분이 치명적 부상을 당하고 되돌아갔다는 상황이 너무 황당하면서 그럴법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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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재밌게 본 글은 『 씨앗 』인데요, 자연의 생존방식을 다룬 소재입니다.
생존하기 위해 모든 살아있는 것은 적응하고 진화하지요. 식물 유전자를 조작해 씨 없는 식물 세상을 만든 인간들. 기업의 이윤만 창출하는 시대에...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자연은 진화한다는 법칙이 적용됩니다.
땅 위에 최후로 살아남은 야생식물이 최후의 순간 인간을 향해 씨앗을 퍼뜨린 겁니다. 와우... 완전 대박.
“ 그 씨앗들 중 적어도 하나는 싹을 틔울 것이다. 하나면 된다. 하나면 충분하다. ”- p191
<조커가 사는 집>에 실린 단편소설은 소재가 중복되지 않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습니다.
덜 매끄러운 부분도 있긴 하지만, 신선한 과학적 상상력이 동원된 실험적인 소설을 읽는 재미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소설가 장강명 작가는 이 책에서 소설 구성의 3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 중 배경에 상상력이라는 첨가제를 듬뿍 넣은 배경증강소설 SF와 판타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SF소설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얼마나 도전적으로 새로운 배경을 실험하느냐, 얼마나 정교하고 매력적인 배경을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SF소설의 완성도가 갈리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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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SF어워드 단편소설을 수록한 <조커가 사는 집>.
국내 SF판타지 작가들을 더 응원하고픈 마음이 들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상현실이란건 과학기술 발달에 따라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죠. 그렇기에 시대 흐름에 따라 또다른 소재가 등장할 여지가 많은 분야이기도 합니다. 뻔한 소재도 새롭게 만드는 게 그들의 역량이요, 뻔하지 않은 소재를 과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발굴하는 것도 역량일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