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눅눅한 여름밤 서늘함을 안겨주는 스릴러 소설, 폴라 호킨스의 <걸 온 더 트레인>.

전미대륙에서 6초마다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답게 영화화 제작 결정 난 <더 걸 온 더 트레인>의 원작소설입니다.


 

 

 

처음부터 스릴감이 쏴~아 상승합니다.

죽음을 앞둔 누군가를 묘사한 장면. 영상으로 자동재생되는 느낌이랄까요.


레이첼, 메건, 애나 세 여자의 시점을 오가는 구성이네요.

레이첼은 단기 기억 상실을 앓는 알코올 중독자, 이혼녀, 실직자... 그야말로 망가질대로 망가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혼 후 함께 사는 친구에게 말하기 창피하다는 이유로 런던의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척 몇 개월째 보내고 있죠. 통근 기차를 타고 그 시간 동안 기차 밖 풍경에 주의를 기울이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면서 그녀가 결혼 당시 살았던 집 근처의 한 집을 어느새 매일 관찰하게 되는데, 그 집에 사는 부부에게 제이슨과 제스라는 이름까지 붙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행복해 보이는 부부의 모습에 그녀 자신의 결혼생활을 떠올리며 레이첼이 잃어버린 것에 대한 갈망을 그 부부에게 투사하고 있죠.


『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이젠 남자들이 탐내기는커녕 좋아하기 힘든 여자가 되어버렸다. (중략) 내가 잠자코 있을 때나 움직일 때나 내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진 상처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는 것 같다. 』 - p24


 

한편, 레이첼이 제스라고 부르는 메건이라는 여자는 결혼 3년 차로,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남편과는 속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집에만 있기에는 갑갑해 하고 그런 공허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아쉬운 것 없이 달콤한 인생을 즐기는 듯하다가도 어느 순간 달아나고 싶어지는 심정이랄까요. 하루하루를 채울 무언가를 갈망합니다. 그러다 불륜에 이르게 되고요.


『 이 행복에 집중하고 순간을 즐기며 다른 곳에서 최고의 행복을 찾지 않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텐데 』 - p88


『 인생에 난 구멍들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다. 콘크리트를 돌아 뻗어 나가는 나무뿌리처럼, 우리는 그 구멍들을 피하면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 』 - p139


그리고 마지막 여자 애나는 레이첼의 결혼을 깨뜨리고 아내 자리를 차지한 여자예요.

그동안 아이도 낳고 나름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남편의 전처인 레이첼이 술 마시고 와서 난리 부리는 것만 빼면 말이죠. 애나는 자신이 행복했던 한 가정을 깨뜨렸다는 죄책감 따윈 없습니다. 전처가 가정을 유지할 수 없게 원인 제공을 했다고 믿으니까요.


나름의 상처가 있는 세 여자.

그중에서도 레이첼은 정말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는 알코올 중독 행동에 소설을 읽는 저마저도 진저리 날 정도입니다. 애초에 술을 마시지말걸 하며 후회하기 일쑤면서 또 마시고. 동정심이 생기다가도 한숨 나오게 만드는 스타일의 전형적인 모습이네요.


 

 

『 솔직히 말해 여자가 가치를 인정받는 기준은 딱 두 가지다. 외모와 엄마로서의 역할. 미인은 아니고 아이도 가질 수 없는 난 그럼 뭘까? 쓸모없는 인간. 』 - p118


『 그 강인함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그걸 잃어버린 기억도 없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서 깎여나갔나 보다.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조금씩 조금씩. 』 - p135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기차에서 그 집을 관찰하던 중 뭔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드는 레이첼.

곧 제스라는 상상의 이름을 붙여준 메건의 실종 소식을 듣게 됩니다. 게다가 메건이 실종된 날은 레이젤이 술에 취해 전 남편을 만나러 그 동네에 갔다가 기억을 잃고, 머리는 무언가에 맞은 상처를 입은 채 다음날 집에서 깨어났던 그 날입니다.


 

 

도대체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몰라도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났음은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는 그냥 잊어버린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좋든 싫든 사건에 연루된 레이첼은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기억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힙니다. 메건 실종사건에 오지랖 부리며 끼어들게 됩니다. 한편으론 그날 밤의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렵기도 합니다.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그 진실이 끔찍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드니까요.


 

 

『 우리는 기억을 일시적으로 상실한 동안에는 기억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억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내게 그 시간은 블랙홀처럼 뻥 뚫려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 - p137


레이첼이 제이슨과 제스라는 그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짜가 진실을 드러내는 순간 세 여자의 운명은 얽힙니다. 결국 메건은 살해된 채 발견됩니다.


<걸 온 더 트레인>은 자아상실감이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 여자의 외로움과 공허함은 저마다의 이유로 시작되었지만, 어느 경우도 아픔의 깊이 차이는 순위 매길 수 없더군요. 책을 읽는 내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여자는 남편을 배신한 메건도 아니고, 한 가정을 깨뜨린 불륜녀 애나도 아닌... 바로 레이첼이었어요. 넌 뭘 해도 그 지경 그 꼴로 계속 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여자였어요. 생각해보니 폴라 호킨스 작가가 레이첼이 비호감형으로 보이게 교묘한 장치를 많이 섞은 것 같네요.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지질함과 오지랖의 극치를 보여준 레이첼을 섣불리 비난하기는 힘들 겁니다.


알코올 중독증세와 함께 왔던 그녀의 폭력성. 한 여자가 쓸모없는 인간으로 나락에 떨어지기까지... 자신도 몰랐던 감춰진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왜 <걸 온 더 트레인>이 히치콕스러운 스릴러라는 평을 받는지 알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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