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힘 -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
서경식 지음, 서은혜 옮김 / 현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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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 2세로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 역사의 증인으로 살아온 서경식 저자의 책 <시의 힘>.

요즘 세대에게는 재일조선인이라는 말 자체도 낯설듯 합니다.


이 책은 재일조선인의 삶을 사는 그에게 시와 문학이 어떻게 단단한 자아를 형성시켰는지, 그의 경험을 토대로 시와 문학의 역할을 이야기합니다. 80년 전의 루쉰, 60년 전의 나카노 시게하루, 그 외 한국의 시인들이 남긴 시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구제책이 될 수 있을지를 알려줍니다.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를 설명하는 글에서는 그의 자의식 성장 과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고3 때 필명으로 자비 출판한 시집 「8월」에는 1960년대 재일조선인의 정신사를 알 수 있는 시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일본어로 한국이라는 조국을 이야기하는 것의 한계와 모국어로 쓰기엔 너무 일본인이라 양자 사이의 경계에서 재일조선인만의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게다가 한국 유학을 갔던 두 형이 정치범으로 수감생활을 하게 되면서, 한국의 민주화와 조선의 평화통일을 위해 스스로 도약을 원하지만, 맘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일본에서 한국시인들의 저작물을 읽으며 민족 문학과의 만남 이후 그에게 시와 문학이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남고자 하는 저항의 무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자아 탐구 자세가 보입니다. 자의식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말이지요. 그는 일본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재일조선인이라는 소수자 입장의 대항적 이야기를 제시하는 것으로 본분을 다하고 있습니다.


『 인간은 승리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가 이기고 있기에 정의에 관해 묻고, 허위로 뒤덮여 있기에 진실을 말하려고 싸운다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자로서 가져야 할 도덕의 이상적 모습이다. 』 - p55


 


일본 국민의 사고방식, 일본 현 정권의 모습을 이야기할 땐 속이 터지기도 했네요.

동아시아 근대사에 대한 엄청난 시각차를 보여줍니다. 메이지유신 이래 청일, 러일 전쟁부터 이어진 침략사와 그로 인해 추진된 근대화 그 자체를 비판적으로 파악하는 시점이 없었던 일본이잖아요.


윤동주의 시가 일본에서는 어떻게 인기를 얻고 있는지 이야기할 때도 화가 치밀더군요.

일본에서 조선의 시인을 이해하려면 고통, 고뇌, 굴욕을 생략하지 말아야 하건만 윤동주의 시는 그저 감미로운 서정시로 일본인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합니다. 게다가 문화적 식민지주의 심성의 고의 번역으로 의미를 퇴색시켜 안타깝게 하더라고요.

그런데 한국인도 크게 다를 바는 없을 겁니다. 이제는 잊히고 있는,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먼 옛날이야기 정도로만 여기고 있으니까요.

 

 

 

여기서 서경식 저자는 중국 시인 루쉰과 여러 민족 시인을 소개합니다.

나카노 시게하루는 루쉰의 시를 "서정시 형태의 정치적 태도 결정"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정치와 문학의 결합이 돋보였던 루쉰과 조선인으로서 근대적 자아 형성에 깊은 영향을 준 이상화 시인 이야기가 특히 인상 깊었어요.


 

 

그들의 시를 통해 서경식 저자는 시와 문학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바로 시와 문학의 역할이라고요.

그런 시는 차곡차곡 쌓여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준다고 합니다. 승산 유무로 따지자면 소수자는 언제나 패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시와 문학은 인간은 이러해야 한다거나, 이럴 수가 있다거나, 이렇게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는 거죠. 시인이란 어떤 경우에도 침묵해선 안 되는 사람인 겁니다.


『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이 사회에 소외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시인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지금 이 시대가 시인들에게 새로운 노래를 요구하고 있다. 』 - p155


 

 

동아시아 근대사의 역사관과 관련한 시와 문학의 힘을 이야기하는 책 <시의 힘>.

일본이나 한국이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새겨들을만한 말이 많습니다. 재일조선인의 삶을 살며 겪은 자의식 변화와 성장을 통해 시와 문학의 힘은 바로 우리를 끝없이 비인간화하는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합니다.


사회적 의제를 다루면서도 쉽게 읽히는 책을 만났습니다.

<시의 힘>을 읽는 내내 그가 쓴 다른 책도 꼭 읽어보고 싶어질 정도로 매력 있는 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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