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가계 - 소박하고 서늘한 우리 옛글 다시 읽기
이상하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냉담가계는 주자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먼저 경서에 뜻을 두게 하는 편이 좋을듯하니, 사서는 요열하고 경서는 냉담하네." 라며 경서와 사서를 함께 공부하게 하는 방법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요. 역사서는 흥미를 끌기 쉽지만, 경서는 맹물처럼 냉담하여 맛이 없다. 즉, 냉담가계는 경서와 같이 재미없는 책을 읽는 것을 말합니다.

 

옛글의 원전을 해석해 원문과 함께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소개하고, 그 글에 담긴 의미를 풀이하는 구성의 책 <냉담가계>. 순서 상관없이 어느 이야기를 먼저 읽어도 됩니다. 옛글이라 생소한 단어도 많지만, 냉담의 맛을 참고 곱씹으며 읽어야 삶의 참된 깊이를 얻을 수 있다 합니다.  

 

 

<냉담가계>에 나오는 여러 옛글의 소재가 참 다양해요. 정치, 경제, 사회 등 대외적인 부분도 있고 내밀한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글 속에 인용된 고사들이 상당히 많고,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글도 있고 날카로운 비판이 있기도 했어요, 편지글이 대부분이라 읊조리며 읽으면 앞에서 이야기 듣는듯한 느낌이라 더 맛깔나더라고요.


70세의 퇴계 이황이 부부 사이가 좋지 못한 어린 제자 이함현에게 보낸 충고 편지로 부부 사이에 관해 조언을 얻게 되기도 하고, 다양한 경서를 인용하는 글을 통해 명언을 함께하기도 합니다. 조선 학자의 글이 대부분이고 그중에서도 퇴계 이황의 일화가 많이 소개되어 있어요. 


연암 박지원의 편지글은 게으름 피우는 나른한 일상 편지인데 한 폭의 그림이더라고요. 『 사흘을 연이어 내린 비에 가련케도 필운방의 흐드러지게 피었던 살구꽃이 다 떨어져 녹아서 붉은 흙탕물이 되고 말았네. 』 - p153 


99세를 살았던 홍유도는 건강 비결을 언급하기도 했고요, 이쪽저쪽 숨바꼭질 같은 토론 자세를 경계하라는 퇴계와 고봉의 편지글을 통해 전체와 부분을 고루 보는 자세를 배우기도 합니다.


성균관 학생의 출석 점수도 언급되는데 아침과 저녁 두 끼를 식당에서 먹고 도기에 서명하면 1점이래요. 300점이 되어야 식년시에 응시 자격이 주어졌다하니 이렇게 편지글을 통해 당시 조선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 학자는 먼저 몸과 마음을 수렴하여 냉담가계를 애쓰는 공부를 하여, 이 책에서 연찬하고 곱씹어 음미하기를 오래도록 그치지 않아야 비로소 그 맛이 참으로 좋은 글을 알아 학문에 힘을 얻을 수 있을 걸세. (중략) 뱃속의 탁한 기운을 씻어내고 일반 사람들이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맛을 들인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으랴. 』 - p204~205


냉담가계 책 제목이 바로 한 편의 글 속에 있더라고요. 퇴계 이황이 제자 금계 황준량에게 보낸 편지글입니다. 여기서 말한 이 책이란 "주자서절요"인데요, 이황이 편찬한 주자학문의 정수가 담긴 책이죠. 이황 스스로도 이 책은 재미는 없지만 꼭 곱씹으며 읽어야 할 책이라 말한겁니다. 이것때문에 궁금해서 주자서절요를 한글로 해석한 책이 있나 찾아봤는데 마땅찮군요. 원전은 한문이니 요즘 우리가 읽어내려면 한글화 작업이 필요한데 생각외로 우리 옛글의 해석작업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웠습니다. 우리나라 고서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면 좋겠어요.


퇴계 이황도 냉담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저렇게 말했듯, <냉담가계>의 저자도 이렇게 말합니다.


『 고전은 재미없지만 고전을 읽지 않으면 늘 삶의 중심에서 일탈하여 변방을 헤매고 뿌리는 잡지 못하여, 종당에 인문학이란 것이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는 인간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오늘날 사람들은 조금만 자기 취향에 맞지 않으면 그 책을 손에 쥐려 하지 않고,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매우 효율적으로 책을 읽는다. 지식을 선별해 가질 뿐 책에서 지혜를 배우려 하지 않는 것 같다. 』 - p208


책을 읽는 자세를 이야기한 부분도 기억 남습니다. 자기주장이 강한 상태에서 읽으면 자기가 고전을 보고 배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전을 자기에게 맞추는 우를 범하고 만다고 해요. 이렇듯 <냉담가계>는 옛글을 통해 사색하는 자세, 온전한 삶을 살아내는 힘을 이야기합니다. 다양한 소재 때문에 지루할 틈은 없네요. 이황조차도 경서는 맛이 없다 했습니다. 하지만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고전이 우리에게 남기는 효력이 이토록 당연한데 이만하면 꼭꼭 씹어 삼킬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냉담가계>에 소개된 글은 일상을 담은 편지글이지만 그 깊이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처음엔 삼키기 힘들어도 자꾸 읽다 보면 우리 고전만의 정갈한 맛이 확 느껴진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