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영성 - 세월호 이후에도 ‘삶’은 가능한가
김진호 외 지음 / 현암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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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조그맣게 그려진 침몰하는 배 그림만 봐도 가슴이 욱신거립니다. 2014년 4월, 세월호에 갇혀 수장되는 것을 생방송으로 지켜본 우리는 그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세월호 사건을 언제까지고 기억할 수 있을까요. <사회적 영성>은 세월호 사건과 밀양 송전탑 사건 등을 다루며 당대의 감정 현상에 대해 성찰을 하고 있습니다.

 

 

 

비이성, 감성의 영역에서의 성찰을 '공감'이라 하는데 이것을 사회적 영성이라 말합니다. <사회적 영성>은 교회 중심적 영성이 아니라, 교회가 독점한 영성 해방과 자본주의에 의해 왜곡된 영성을 바로잡자는 화두를 던진 책입니다.

 

 

세월호 사건 당시 대통령 온다고 의전 준비하느라 잠수사 투입을 지연시키고, 팽목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공립시설은 관료들 차지, 희생자 가족들은 30분이 넘는 거리의 체육관 바닥 생활... 당시 그런 모습들은 봉건제 시대를 떠올리게 합니다. 게다가 사건 이후 일부 종교, 단체 수장이란 사람들의 막말은 넋을 놓게 하였고요. 각종 망언은 그들의 죽음을 나와 연관된 사태가 아니라고 느끼는 감각 때문이라 하네요. 타자의 죽음을 내 일, 우리의 일로 여기지 않는 것이라고요.

 

 

 

세월호 사건에서 희생자 가족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억해 달라고요. 잊지 말아 달라고요. 그리고 우리는 잊지 않겠다고, 기억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제대로 들었을까요. 고통에 대해 말하지 않더라도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듣지 않고서도 알 수 있는 것, 이런 태도가 오랫동안 고통의 당사자들을 소외시켰다는 것을 이 책에서 일깨워줍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 가장 큰 고통은 '고통을 넘어 자신이 당한 그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고통'이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그들은 절대적 외로움에 갇힐 수밖에요. 고통의 문제에서는 해결만큼이나 듣기와 기억이 중요하다고 하네요.

 

 

 

 

기억과 추억의 차이를 이야기합니다. 추억은 개인적 관계가 있어야 가능하고, 세월호는 사건으로서의 기억을 해야 한다 합니다. 그저 배에 탄 사람들의 불운으로 인한 사고가 아니라 한국사회가 처한 현실의 보편성을 드러낸 커다란 사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요. 기억이란 추억과는 달리 개인과 공동체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말은 이 사건을 통해 깨달음,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 자각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하네요. 고통을 대면하는 고통을 느끼며, 그들의 고통에 영원히 다가설 수 없다는 고통을, 즉 고통과 고통이 만났을 때 기억하게 됩니다. '너'의 희생이 아닌 그저 '남'의 희생으로만 바라보면 교통사고 숫자와 비교하는 식이 된다합니다. 정부는 국가의 위기로 세월호 사건을 바꿔치기했습니다. 

 

 

 

 

기억의 개인화와 기억의 국가화의 차이. 이렇게 국가개조론이란 말이 정부에서 나오는 수준에서는 개인은 그 기억을 망각하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사회 안으로 기억을 새겨 넣을 수 있을까요.

 

 

 

 

안전을 외치며 지금처럼 사는 삶이 아닌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가' 토론이 바탕되어야 한다 합니다. 너로 인해 나의 삶이, 우리의 삶이 이렇게 돌이킬 수 없게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요. 그들을 잃은 상실을 어떻게 우리 삶과 사회에 새겨 넣고 있는지 묻습니다.

 

 

 

 

이십대 청년백수, 사십대 퇴직, 알바천국 사회. 힐링이 아닌 킬링 사회에서 우리가 '가만히 있음'으로 합의해버린 현 사회의 제도적 시스템을 외면하고 묵인하며 오직 문화콘텐츠를 통해서만 값싼 힐링을 추구해온 우리들에게 킬링사회에 대한 비판과 책임 있는 대안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제안합니다. 그러려면 관계적 영성을 의미하는 사회적 영성이란 개념이 필요하고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깨닫는 일부터 시작된다 합니다.  

 

<사회적 영성>에서는 사회적 고통에 무감하고 무관심한 전통 신학의 침몰을 비판합니다.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책임 있게 참여하는 신학의 필요를 요구합니다. 사라진 애도 기능을 부활할 수 있게 하려면, 이윤보다 생명을 앞세우는 사회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화두를 던진 의미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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