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정원 - 제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혜영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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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에 여행가방 두 개를 내려놓고 택시는 가버렸다.'(p7)로 시작하는 《비밀정원》은 첫 문장만으로 아련함을 부릅니다. 삼백 년을 내려온 종가, 노관을 배경으로 화자 이요의 시선에서 바라 본 엄마와 율이 삼촌 등 그의 가족사를 그리며 60~70년대 시대 잔잔히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노관이라는 장소가 주는 느낌이 독특했어요. 의외로 그곳은 구시대적인 장소가 아닌, 유교적인 풍경과 천주교적 풍경이 더해져 교양 있는 엘리트 집안을 보는 듯했거든요. 공교육을 받지 않고 집에서 생활하는 이요와 엄마의 대화는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타국에 있다 10만에 귀국한 율이 삼촌을 계기로 엄마와 율이 삼촌과의 관계, 성당에서 자란 테레사라는 소녀 등 가족사가 서서히 밝혀집니다. 막장 드라마가 아닌 애달픈 사연으로 비칠 만큼 그들의 이야기는 가슴으로 스며드는 슬픔을 안고 있었습니다. 독자로 하여금 그 비밀을 눈치채게끔 테레사가 노관으로 보낸 편지들의 내용은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고 책을 덮고나서도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부분이었어요. 노관의 연못가에서 만났던 테레사의 편지는 몽환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책 속의 책처럼 동화를 빗대어 쓴 테레사의 편지를 하나씩 읽다 보면 그동안 내가 너무 삭막하게 살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속에는 꿈이 가득했습니다.

 

 

 

율이 삼촌의 친구인 손 교수의 비중도 상당한데요, 국문학자답게 그가 하는 말에는 온갖 명문이 가득하네요. 이 책의 표지를 보자마자 떠올랐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책 속에서도 언급되고, 백석 시인 등 반가운 작가들이 많이 등장한답니다. 이종환의 별밤도 등장하니 옛 추억이 몽실몽실~

 

유신정권과 신군부 시대로 이어지는 시대였던 터라 이요가 대학생이 된 시절의 매캐한 최루탄 연기 내음 장면에서는, 하필 시위가 잦은 시청 옆에 위치했던 우리 집 마당까지 최루탄이 날아들어와 하루 종일 눈물 콧물 흘렸던 기억이 나면서 괜스레 눈을 더 끔벅거리기도 했네요. 옛것과 새로운 것이 혼재된 시절 그리고 최루탄 냄새가 몇 날 이어지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이 소설이 더 공감될듯합니다.

 

저자의 문체도 독특했어요. 단순한 고향집 그 이상의 공간인 노관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풍스러움이 엿보이는데 거기에 유난히 비유를 많이 쓴 묘사 장면이 많아 곱디고운 문장이 여기저기 튀어나오고 있거든요. 소설 초반은 특히 이런 장면이 많아 읽기 진행이 더뎌 약간 지루해지기 쉽다는 단점이 될 수도 있긴 하겠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런 묘사가 좋았던지라...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초반에 비해 평범해진 느낌을 받으며 폭발적인 감정선에 이르지 못하고 약간 아쉬움이 남기도 했습니다.

 

『 내 인생인데도, 내 사랑인데도 나에게는 이미 기회가 없었어. 』 - p168

 

최초로 허무가 찾아온 길목을 잘 기억해둬라. 그러면 그곳을 비켜갈 수가 있지. 』 - p235

 

마음의 해를 품었거든 해를 따르고, 마음에 달을 품었거든 달을 따르게. 시간은 기다려주질 않아. 사랑도 해처럼 진다네. 달처럼 이울지. - p252

 

이뤄질 수 없는 관계는 결국 이뤄지지 못 했습니다. 이뤄질 수 없을 것 같았던 관계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인물들의 행동을 가타부타 판단하지도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율이 삼촌의 마지막 장면에선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렇다고 그의 행동을 공감하지도 않았으면서 말입니다. 애절함에 나온 눈물이었던 건지. '소설의 달콤함은 뼈도 녹게 한다'(p205)는 말처럼 묘한 매력을 분명 가지고 있는 소설이었어요. 황석영 작가님의 심사평처럼 '빈티지'한 매력을 가진 《비밀 정원》입니다. 시간을 가두어 둔 것만 같은 노관의 분위기가 가슴에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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