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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인초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평점 :
현암사에서
나쓰메 소세키 사후
100주년 기념으로 출간되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
전집』
시리즈 2차분 네 권이
얼마전에 나왔죠. 1차분 네 권 다 읽고나서 몇 개월간의 공백이 있었는데 그 공백을 말끔히 메꿔준 《우미인초》.
읽는내내 역시 소세키답군~! 소리가 절로
나오네요.
책 제목인
'우미인초'는 양귀비꽃을 말합니다. <풀베개> 작품에서는 핏빛같은 동백꽃 이미지가 소설 속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나쓰메 소세키는 유독 붉은빛의 강렬한
꽃을
애정했는지 이번엔
책 제목으로까지
사용했네요.
소설 《우미인초》는
남자 셋, 여자 셋....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고뇌하는 인간이지만
어두운 결혼관을 가진 '고노', 무사태평한
성격으로 보이지만 진지할 땐 진지해지는 '무네치카',
과거는 지워버리고
실리를 추구하려는 '오노', 고노의 이복동생으로
오노를 자기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오노의 약혼을 알지 못했음에도) 이 책에서 욕망의
화신으로 설정된 '후지오', 고노를 좋아하는
'이토코', 오노의 약혼녀
'사요코'. 남자 셋, 여자 셋이
가진 인연이라는 실타래가 참 묘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관계에서 소세키
작가는 신여성이라
불릴만한 '후지오'를 유독
못마땅해하네요.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따로 있는 남자 '오노'에게 접근하는 '후지오'를 도의적이지 않은 여성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오노' 라는 남자 역시 실리를 추구하며 '후지오'와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담은 장면이 꽤 많이
나옵니다. 결국 '후지오'를 과감히 소설 속에서 죽여버리기까지 할 정도로 소세키 작가는 욕망을 가진 여성, 사랑을 하면
변하는 여성에 관해 단두대 역할을 자처했네요.
《우미인초》는
표면적으로는 삼각관계를 다룬 연애 이야기 또는 결혼관 등을 말하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도의, 양심을 지키며 사는 모습을 추구하길 원하는
작가의 마음이 많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문명의 압박이 심할수록 겉만 번드르르해지고 내면은 점점 썩어간다는
식이죠. 그때는 번민이 유행하는
시대였습니다. 문명의 물결에 저절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중 그
변화에 지치게 마련인 사람들도
많이 나왔던 시기였습니다. 신여성과 구여성이라는 단어로 구분할 정도로 양분화되면서 한편 그 두 가지가 공존하던 어중간한
시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각각의 이야기는 솔직히 지금 21세기 우리들 이야기와 별반 다를것도 없었습니다.
《우미인초》에서도
소세키의 병세는 언급됩니다. 이제는 그의 책마다 이 부분을 찾는 것도 은근 재미있네요. 소세키 작가 본인이 신경쇠약이 심했는데 책마다 매번 그런
인물이 등장하는군요. 이번 책에도 '고노'라는 인물에게 신경쇠약이라는 병을 안겨줍니다. 신경쇠약은 문명의 유행병(p242)이라 하듯, 문명화가
한창 진행되던 그 시대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를 담은 병이겠죠.
도의를
생각하는 과거의 나, 실리를
추구하며 미래를 걱정하는 현재의 나.
각각의 세계가 엇갈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모습이 꼭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며 급변했던 일본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
같았습니다. 시대에 뒤쳐지느냐 맞춰가느냐의 문제.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의 심리. 당시 일본은 서양물 드는 것을 부정적 시각에서 서서히
진보, 근대, 세련됨의 긍정적 의미가 강해지던 시기였으니 그런 시대상과 관련해 소세키 작가는 할 말이 많았을겁니다. 특히 이 책에서 등장인물의
상황이 클라이막스로 향한 계기가 된 장소인 서양문물의 꽃이라 일컫던 박람회장을 묘사한 장면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간극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 초반에
클레오파트라의 최후를 언급하며 자줏빛 사랑, 비수 같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결국엔 '후지오'에게 대입시켰습니다. 당시 이 소설이
나왔을때에도 '후지오'를 왜 죽여야했는가에 대해 찬반이 있을
정도였다네요. 지금 시점에서 읽으면
'후지오'가 과연 죽음을 당할만큼 잘못한 인물인가 의아할 정도입니다. 소세키의 여성관이나 사랑관계는 조금 답답한 면이 있긴해요.
하지만 그게 싫지만은 않은게
바로 그런 점이 '소세키답다 또는 소세키식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할만큼 나름 특색을 갖고 있는게 또 매력이란 말이지요.
▲ 송태욱 번역가님의
요런 해설이 쏠쏠한
재미를 줍니다. 단어가 참
옛스러운게 많아 소세키 전집 1차분으로 나왔었던 네 권의 책에 비해 읽기 힘들었는데 그나마
번역이 잘 되어있어서 매끄럽게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