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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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높고 쓸쓸한>, <연어> 등으로 유명한 안도현 시인은 백석 시정신의 진정한 계승자로 평가받으며 백석앓이의 최고봉으로 알려져 있죠. 1980년 스무 살 무렵부터 시작된 백석앓이를 한 안도현 시인의 관심과 애착의 결정체 《백석 평전은 백석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는 책이네요.

 

우리 정부에서 월북, 납북, 재북 문인들의 해금조치 이후에야 우리 문학사에 재조명된 백석. 오해가 있거나 과대포장된 것들은 근거가 충분한 자료를 통해 바로잡아 평전이라는 형식으로 백석의 문학과 생애를 복원한 《백석 평전》을 통해 백석의 세계관을 깊이있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첫 '귀향'편을 읽으며 안도현 시인의 백석앓이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었어요. 백석을 직접 따라다니는듯한 기법은 소설을 읽는 느낌이어서 신선했어요.  『백석은 코를 싸쥐고 역을 빠져나왔다. 고읍까지 철로를 따라 12킬로미터를 걸어갈 작정이었다. 오랜만에 걷는 길이었다. 어릴 적에 수없이 걸었던 길인데도 마치 처음 가는 길 같았다.』 (p13) 처럼 백석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는듯한 필체가 매력적입니다.

 

2003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고향」 시가 지문으로 등장하면서 우리에게 더욱 널리 알려진 백석의 시에는 유년과 관련된 음식, 가족 등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며 과거의 시공간을 복원하며 고향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습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사설시조 양식에서 새로운 창조를 모색했다고 평가받습니다.

 

『 백석은 일본 문학계를 풍미하고 있던 모더니즘 운동을 폭넓게 수용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시집 「사슴」에 실려 있는 33편의 작품 중에 예닐곱 편을 제외하면 모두 단시이거나 산문 형태의 시라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백석은 외모만 '모던보이'가 아니었다. 일본 유학시절 습작기부터 그는 '가장 모던한 것'과 '가장 조선적인 것'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 - p51

 

백석은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를 새로운 감각과 방법으로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시를 즐겨 읽지 않았던 저조차도 감정을 많이 내세운 시보다는 백석 시의 담백한 맛이 마음에 들었었는데요, 감성이 흘러넘치는 것이 아닌 절제된 애잔함, 소박함, 담백함을 느꼈어요.

 

 

 

 

백석은 1935~1941년 스물네 살에서 서른 살까지 약 7년동안 경성, 함흥, 만주를 오가며 전성기를 누리는데 이때 유일한 시집 「사슴」을 출간했고, 여인들과 몇 차례 사랑에 빠지기도 했답니다.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긋게 되는 시집 「사슴」은 1936년에 100부 한정판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시간적 배경을 고려한 배치 구성으로 유년체험이 담긴 시, 오산소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체험한 세계, 오산고보를 다니던 청소년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시, 성숙한 청년의 시각이 담긴 시 33편이 수록되어 있는, 일반적인 모더니즘의 언어와 백석의 언어를 확연하게 구별하게 해 준 작품입니다.

 

『 백석은 식민지로 오염되고 왜곡되기 이전의 고향, 즉 시원의 순결성을 가지고 있는 고향과 고향의 방언에 착안했다. 고향의 말인 방언이야말로 몰락의 길로 치닫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지켜낼 수 있는 하나의 시적인 역설로 작용할 수 있으리라고 그는 판단했다. 그러니까 백석의 평안도 방언 사용은 향토주의에 매몰된 결과물이 아니라 준비된 창작방법론이며 의도된 기획에서 나온 것이었다. 』 - p99

 

「사슴」이 발간되자마자 당대의 많은 시인들을 매료시켰으며, 해방 이후 후대 시인들에게도 폭넓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대표적인 시인으로 신경림 시인이 있으며 수많은 시인들이 백석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을 했답니다.

 

 

 

 

모던보이의 대명사로 백석의 외모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그는 은근 까다로운 취향이었다고 하네요. 양말 하나에도 신경을 쓸 정도로 외모에 신경을 쓰기도 하고, 결벽증 마냥 행동하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를 보면서 백석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어요. 백석이 아호를 지어줬던 자야 여사와의 사랑 외 몇몇 여인들과의 인연도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곡해하지 않게끔 풀어내고 있습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 다산책방》 시집을 읽으며 그의 생애를 어느정도 알고있긴 했었지만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서 살게 된 백석에 관한 뒷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했었어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어 추측이 난무했었는데 《백석 평전》에서 그 궁금증을 최대한 풀어내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제는 잘 알고 있는 「집게네 네 형제」, 개구리네 한솥밥」, 준치가시」 등은 모두 북한에서의 활동작품이랍니다.

 

 

 

 

북한에서의 백석은 번역에 주력하게 됩니다. 북한에서 아동문학영역의 관심이 확대되던 시기에는 이전에는 없던 새롭고 실험적인 형식인 우리 아이들의 입말에 맞는 운율을 계발해 동화시를 발표하기도 했었지만, 이후 북한 체제에서는 예술성을 강조하는 일이 정치성에 위배된다는 현실때문에 사상성과 정치성이 부족한 작품으로 치부되어 온전한 시인으로서 백석의 역할이 끝나게 되어버립니다.

 

『 해방 이후 백석의 북한에서의 작품활동을 단순히 예술성을 망각하고 시를 정치도구화한 파렴치한 행위로 몰아붙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백석이 북한에서 아동문학논쟁을 통해 문학의 자율성과 미학주의를 주장한 마지막 시인 중 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 p413

 

해금 조치 이후 백석의 시와 산문 연구가 확대되었고 이제는 중,고등학교 국어 관련 교과서에 김수영과 함께 가장 많은 시가 수록된 백석. 경성에서 활동을 오래 했었지만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해방직후 만주에서 고향으로 돌아갔던 그여서 분단이 준 안타까움이 배가 되는 것 같습니다. 북한 문단에서 홀연히 사라지게 된 그의 삶이 애뜻하게 다가옵니다.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역시 큰 획을 그은 정현웅 화가와의 인연덕분에 이렇게 중년의 백석 모습을 볼 수 있네요. 「사슴」 시집 이후 21년만에 단행본으로 발간된 동화시 12편이 실린 「집게네 네 형제」는 북한에서의 아동문학논쟁으로 불거져 결국 백석의 존재가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쉽게 볼 수 없었던 말년의 백석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널리 퍼져있는 영어교사시절 모던보이로서의 백석 사진만을 생각하다가 노년시절의 모습을 보면서 달달함이 깨지긴 했습니다만. ^^; 그 외에도 다양한 참고자료가 《백석 평전》에 한가득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본 유학을 했으면서도 일본어로 된 시는 단 한 편도 발표하지 않고, 조선 사람의 언어를 지키는 시인이고자 했던 백석. 식민지 시대에 살던 지식인이자 문인으로서 그의 행적, 북한 정치체제에서도 진실한 아동문학정신을 피력하며 그만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했던 흔적을 보며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백석의 시를 읽게되면 자연스레 백석앓이에 동참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안도현 시인의 필체나 탄탄한 구성 자료 덕분에 백석의 생애와 작품을 이해하기 쉬웠던것 같습니다. 두툼한 분량의 책이지만 술술 잘 읽혔어요. 백석앓이에 동참하실 분, 백석앓이를 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백석의 세계관을 잘 풀어낸 《백석 평전》 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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