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더킨트
니콜라이 그로츠니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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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킨트란 음악, 문학, 예술계의 신동을 뜻하는데 작가 니콜라이 그로츠니 본인도 네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해 열 살에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입상한 경력을 가진 분더킨트였다고 합니다. 소설 《분더킨트》는 1980년대 불가리아 국립음악학교에서 보낸 10대 시절을 그린 자전적 장편소설입니다.  

 

소설 《분더킨트》는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이년 전, 불가리아의 영재들을 위한 소피아 음악학교를 배경으로 합니다. 열다섯 살인 주인공 콘스탄틴은 일곱 살 때 이곳에 들어가서 현재 방황하는 사춘기를 겪고 있습니다. 불가리아라는 역사적 배경상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겪는 사회적 억압이 그의 방황을 더 깊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아요. 바이올리니스트 이리나와의 사랑, 천재 피아니스트 바딤에 대한 존경심, 예술가들 간의 묘한 적대심, 학교체제의 반발심 등 십 대 소년다운 감성과 미성숙한 까칠함과 일탈이 그 시대가 아니었다면, 그 나라가 아니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합니다. 그저 그런 방황을 거치고 회개하듯 벗어난다 식의 성장소설이 아니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시원한 기분은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소설 《분더킨트》의 묘한 매력이 더 오래 가슴속에 머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콘스탄틴의 담당 선생님인 카티야의 경고는 허투루 들을 수가 없네요. 경주에서 제일 먼저 탈락하는 건 재능 있는 아이이고, 두 번째로 떠나는 건 야망 있는 아이이고, 오직 로봇 같은 아이만 끝까지 버틴다고. 그게 대부분의 피아노 음반이 견딜 수 없이 형편없는 이유라고요.

 

『 아침, 오후 심지어 한밤중에도, 나는 건반 하나를 누르고 세포 하나하나를 모두 사용하여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허공에 울리는 소리의 반향에 맞춰 내면의 존재를 조율하며 그 목소리의 비밀스러운 원천을 찾아 헤맸다. 』 - p47

 

『 음악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경험된다. 지금 당장도, 나중도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서다. 』 - p58

 

콘스탄틴에게 피아노 연주는 절망을 드러내는 행동이자 자신만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가다듬으며 표출하는 행위입니다. 곡을 연주할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육체라고 합니다. 힘줄에 불이 붙을 때까지 연주하고 나면 허기와 탈수로 혼미해질 정도로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드러냈었고, 음악의 성전에서 산다는 건 선물과도 같다고 하지만 학교에서 퇴출당한 바딤과 이리나. 콘스탄틴조차도 그 길을 걷게 되는데 음악의 성전에서 퇴출당한다는 것이 그들의 삶 자체가 음악으로부터 버림받게 된 것인지 아니면 그들 스스로 그 고리를 끊어내 버린 것인지......  로봇처럼 반복 훈련만 한 근시안적인 연주가들과 대립하는 이 아이들은 음악 안에서 진실해지고 음악 안에서 자신을 정화하는 천재적 재능을 가졌기에 그만큼 바깥으로부터의 충격과 괴리를 오히려 이겨내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많은 걸 이해하는 동시에 거의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이 와 닿습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기계적인 순종형 인간이 되길 거부하는 방황하는 사춘기를 겪는 이들의 이야기가 안타깝습니다.

 

『 우리 내면의 삶은 아직 국영화되지 않은 유일한 공간이고, 그래서 이를 광적으로 지켰기 때문이리라. 심지어는 연인의 눈으로부터도 방어막을 치면서까지, 우리는 우리 영혼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 남몰래 악취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 - p284

 

 

《분더킨트》는 예술가적 감성과 문학적 자질을 겸비한 작가 특유의 문체가 독특한 소설입니다. 첫 문장 '소피아의 하늘은 화강암이다.' 화강암이 주는 그 빛깔과 무게감이 이 소설의 전체 분위기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쇼팽의 화음에 마호가니 색이 감돈다', 'B단조는 빨간색이야. 가을에만 나타나는 빨강이지. 갈색도 섞였고 마호가니로 덧칠도 했어.' 처럼 소리를 이미지화하는 표현도 신비로웠어요. 대신  '삶이란 쇼팽의 프렐류드를 나 자신을 위해 연주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무엇이었다.' 처럼 그 음악의 감성을 모른다면 단번에 이해하기 모호한 문장도 있습니다.

 

목차도 이색적이에요. 25개의 목차는 바흐, 베토벤, 쇼팽 등의 피아노곡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쇼팽을 특히 좋아했는지 쇼팽의 곡이 압도적으로 많기도 하고 쇼팽의 곡에 관한 소설 속 주인공의 생각이 많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 피아노곡들 속에 숨겨진 사연은 무엇일까?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궁금해집니다. 그 곡의 이미지와 해당 챕터 사연이 적절히 어우러지니 이왕이면 곡을 들으면서 읽기를 권해드려요. 곡을 들으며 읽다 보면 그 곡의 느낌을 그 상황에 접목해 섬세하게 묘사한 문장들이 찌릿 와 닿을 겁니다. 피아노 선율을 문장으로 시각화해서 읽는다는 그 느낌이 정말 묘했어요.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특별한 선물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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