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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예찬 - 번역가의 삶과 매혹이 담긴 강의노트
이디스 그로스먼 지음, 공진호 옮김 / 현암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당대 최고의 남미 문학
번역가 중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디스 그로스먼 번역가의 삶과
매혹이 담긴 강의노트 《번역 예찬》.
문학평론가이자 학자인
저자 이디스 그로스먼은 부업으로 단편소설을 번역하다가
90년부터 전업 번역가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번역
예찬》에서는
강연에 기초하여 번역은
왜 중요하냐는 질문을 토대로 번역의 매력과 문학 읽기의 즐거움, 번역의 가치, 번역가의 과제를 논하고
소설 외 시 번역 방법론을
다루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번역이란 행위는 제2의 작품으로서의 번역으로 다루고 있어 사뭇 강한
어조로 번역의 가치를
주장하고 한편으로
번역가를 깎아내리는 출판계
실태를
비판한다.
괜찮은 번역, 읽기
쉬운 번역, 충실한 번역이란 무엇일까?
이디스
그로스먼이 말하는
번역가는
그저 문학의 시녀, 시종
역할이 아닌, '작가'라고 말한다.
그래서 분별없는
직역주의 번역을 꼬집는다. 문학 번역의 목적은 번역서의 독자가 정서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원서의 독자가 맛본 심미적인 경험에 상응하는 원문의 맛을
보길 바라는 것이다. 기본적인 문자적 의미 외에 함축하고 있는 의미나 암시를 알아보는 능력을 갈고닦아야 하는데 이런 과정은 원작자가 창작에 쓰는
언어에 대한 노력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번역가는 원문에 마음의 귀를 기울여 원작자의 음성을 듣는 청자의 역할 뿐 아니라 번역문을 들려주는
화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독서가라면 느끼겠지만
간접 경험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깊은 것은 문학 작품을 통해 접하게 되는 종류의 경험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
번역물이 없다는 가정을
해 본다면 아찔하다. 번역 덕에 얻을 수 있는 언어 간의 생산적인 교환은
강력한 파급력이 있어 뛰어난 소설가여도 번역 없이는 한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번역은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역할을 한다.
문학이 중요한 것과
같은 이유와 측면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
문학이 있는 곳에 번역이 있습니다. 문학과 번역은 허리가 붙은 샴쌍둥이와 같아 절대로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
- p44
좋은 번역이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번역의
이상향으로 충실성을 든다.
그러나 충실성을 직역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번역가는 문맥을 번역하는 사람이오, 번역가는 그 책에 대한
비평적 독서가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번역이라 함은 출판계의 일용직 노동이 아닌 두 담화 영역을, 두 경험 영역을, 두 독자 그룹을 잇는
살아있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
번역가의
충실함은 어휘의 짝짓기가 아니라 문맥에서 드러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즉 원저자의 어조와 의도와 담화 수준이 암시하고 반향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좋은 번역이 좋은 이유는 문맥상의 의미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 - p83
스페인 걸작문학을
영어로 가장 훌륭하게 옮긴 책 중 하나로 평가받는 <돈키호테> 번역의 경험담에서는
번역가로서 경험한 번역
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원작과 400년이라는 세월의 흐름, 숱한 번역서, 해설서, 학술서
등이 있는 상황에서 필연적인 어휘상의
어려움과 모호한 구절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주석의 필요성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현암사에서 2013년부터 출간 중인
100년 전의
작품인 나쓰메 소세키
시리즈가 자연스레 떠오르기도 했다. 그 시리즈를 읽으면서 번역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던 경험을 했던 나로서는 고전을 현대의 번역으로
매치시키는 작업의 중요성에 이디스 그로스먼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번역서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읽지 못하는 중요한 언어가 얼마나 많고, 번역되지 않았더라면 전혀 알지 못할 소중한 문학 작품은 또 얼마나
많은지. 번역 작품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우리나라보다 영미 쪽이 더 심한가 보다. 저자는 자국어의 울타리에 갇힌 영미 출판계를
비판한다. 다른 언어권 문학의 번역을 육성하고 장려해야 할 이유를 많이 다루고 있는데 사상교류의 기초적 작용의 역할, 즉 독자인 우리가 번역을
통해 받는 혜택이 무엇인지를 통해 그 이유를 말한다. 노벨 문학상 심사 대상이 되려면 영어로 번역되는 것이 중요한데 정작 영미권 출판사는 번역을
꺼리는 현상으로 인해 번역 문학을 육성할 윤리적, 문화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다양한 세계와 문화를 위한 포용의 번역이
필요하다.
번역가의 문학적
감수성과 원문을 최대한 깊이 들여다보는 능력이 특히 강조되는 시 번역에 관한 이야기는 시를 즐겨 읽지 않는 나에겐 조금
어렵게 다가오긴
했다.
시를 번역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반드시 어떻게 번역해야 한다는 번역 시의 영향력과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으니 시 번역에 특히 관심 있는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힐듯하다.
강의를 기반으로 한
책이어서 책 분량 자체는 많지 않지만, 번역의 중요성, 번역가가 지녀야 할 자질과 과제, 번역가의 위상에 관한 알짜배기 글만 담겨있어 쉽게
책장을 넘길만한 책은
아니었다. 부록으로 이 책의 번역가 공진호님과
도서비평가 로쟈 이현우님이 번역과 번역가에 대한 화두를 국내 현실을 살펴 이야기 나눈 인터뷰가 실려있는데, 문학 번역가로 살아가면서 느낀 고민을
경험담 속에 풀어내는 공진호님과 인문서 번역의 어려움과 번역과 관련한 국내 출판계 현실을
이야기하는 이현우님의 이야기는 영미 출판계 현실에서 이야기한 《번역
예찬》에서 느꼈던 약간의
아쉬움을 보충하고
있다.
번역의 가치는 물론이고
번역자와 편집자의 자질 등
번역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번역
예찬》을 통해
번역서의 비율이 높은
국내 출판 현실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제대로 고민해 볼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