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거기, 머물다 - 공경희 북 에세이
공경희 지음, 김수지 그림 / 멜론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한 권 한 권 자식과도 같은 번역한 책 중 51권을 추려 그 시절을 회고하는 시간을 마련한 공경희 번역가의 북에세이 《아직도 거기, 머물다》는 옮긴이의 말 자체가 하나의 근사한 작품이 된다는 것을 느낀다. 

 

번역 작품으로는 소설이 많지만 그 외 고전, 교양서, 에세이, 육아서, 자기 계발서, 어린이책 등 다양한 분야의 번역 작업 덕분에 《아직도 거기, 머물다》에는 공경희 번역가의 마음속에 후두둑 들이친 큰 감동을 준 다양한 장르의 책이 가득하다. 번역 책 뒤쪽의 옮긴이의 말 외에도 번역 작업을 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나 현재의 감상을 덧붙여 둔 글도 많은데 단순히 책 감상평이 아닌 삶의 지혜가 곁들여져 더욱 풍성한 느낌이다.

 

공경희 번역가가 스물네 살의 나이로 정식 데뷔한 작품은 나도 엄청나게 좋아했던 시드니 셀던의 <시간의 모래밭>.

번역작가가 되겠다고 생각도 못 했던 시절 우연히 의뢰받았던 원고 덕분에 그 후 25년 넘게 번역 작가로 살게 된 출발점이 된 책이었고, 마침 1987년 저작권 협약이 발효되면서 정식으로 한국어 번역판을 계약해서 출판한 최초의 대중소설이기도 한 작품이라 특히 기억에 남을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내 기억에는 번역가 이름이 남아있지 않았는데 시드니 셀던 책을 좋아하던 시기에 즐겨 봤던 의학전문 소설가 로빈 쿡의 <코마>도 공경희 님의 번역 작품이란 걸 알게 되어 반가웠다.

 

 

초베스트셀러였던 책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통해 소설을 보는 시각의 변화에 대해 깨달았다는 공경희 번역가님. 번역했을 당시 푸릇푸릇한 신혼 초였다는데 주인공 프란체스카를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다시 번역해보고 싶은 책이라고. 그 섬세한 감정의 떨림까지 공감하며 잡아내고 싶다고...

내가 놓칠뻔한 책도 이 책을 통해 발견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템플 그랜든>. 자폐증 진단을 받을 주인공이 동물학자가 되고 동물권익의 대변자, 자폐아의 통역자가 된다는 내가 특별히 읽고 싶은 주제의 책을 발견하게 되어 기쁨만배다.

번역을 마치고 목 놓아 엉엉 울기도 했다는 <굿바이, 찰리 피스풀> 번역 에피소드, <파이 이야기> 번역 때 유려한 언어의 뉘앙스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려는 작업이 특히 힘들어 번역이 소설의 발목을 잡을까 걱정을 했었다며 번역가로서의 애로가 담긴 에피소드, 책을 펼치자마자 번역자라는 입장은 잊고 완전히 독자가 되어 글에 빠지게 한 <수녀와 가문비나무 이야기> 에피소드 등 내가 읽었던 책은 그 감동을 고스란히 새롭게 일깨워주고,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은 읽고 싶게 만드는 맛깔스러움에 작가의 책을 모두 읽어내는 전작주의가 아닌 공경희 번역가가 번역한 책을 죄다 섭렵해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 책은 생명체와 같아서 저마다의 운명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중략)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한 행간의 의미를 알아듣게 되었다. 만나본 적 없는 저자와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중략)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같은 작품을 만났을 때 낯익음과 함께 새로움을 느꼈다. 오로지 새로움과 만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 - p377

 

 

내 기억에 오래 남을 만큼 재미를 만끽했던 추억의 소설로 자리 잡은 시드니 셀던의 초창기 책 번역가가 바로 공경희 님이었고, 우리 아이 유아 시기에 대박 난 책이었던 <곰 사냥을 떠나자>(시공주니어)의 번역가도 공경희 님이다. 오즈의 마법사 DVD를 아이와 함께 몇십 번을 보면서 두터운 <주석달린 오즈의 마법사>(북폴리오)를 아이와 뒤적거린 소중한 추억을 남긴 이 책 역시 번역가가 공경희 님이다. 이렇듯 개인적으로 공경희 번역가는 나에게 있어서도 추억의 번역가라고 말할 수 있다. 번역가로 얻은 큰 축복을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 준 공경희 님의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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