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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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나는 손해만 봐왔다.  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도련님》. 아버지는 '나'를 볼 때마다 틀려먹은 녀석이라 불렀고, 어머니도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린데다, 부모님께 예쁨 받는 형과는 자연스레 사이가 좋지 않은 말썽꾸러기 악동 도련님. 하지만 기요라 불리는 할멈 하녀만은 '나'를 애지중지해준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형에게 얹혀살기 싫어 집을 판 돈 중에 600 엔을 끝으로 형과의 인연마저 끊고 그 돈으로 공부를 더 하고 수학선생이 된다.

 

 

 

 

『 그런데 신기하게도 3년이 지나자 마침내 졸업을 했다. 스스로도 의아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불평을 할 수도 없는 일이라 일단 얌전히 졸업은 해두었다. 』 - p25

 

『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월급 40엔을 박도 이렇게 먼 촌구석까지 올 리 만무하지 않은가. 』 - p32

 

『 친구 집도 싫은데 학교 숙직실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것이 40엔 안에 포함되어 있는 거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냥 참고 해 주자. 』 - p51

 

 

비교적 만사태평한 시절을 보내고 시골 학교로 부임하는데, 도쿄 토박이에 가냘픈데다 몸집을 가진 도련님으로서는 시골구석이 썩 맘에 들지는 않는다. 첫날 교장 선생님의 교육정신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를 들으며 하는 생각이나, 다른 선생들과 첫인사 나누면서 바로 생김새로 어림짐작하며 별명을 붙여주는 장면, 숙직을 서야 하는 장면 등을 보면 입발림 소리는 싫어하고 단념은 빨라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치고는 그래도 제법 시크하게 군다.

 

좁은 동네다 보니 시시껄렁한 일상도 교실 아이들에게 회자되고 다른 선생들의 쓸데없는 참견도 받다 보니 하는 타고난 기질이 서서히 발동걸리는듯하다. 너구리 교장선생은 살아있는 교육의 신이나 되는 양 체면치레용 번드레한 말만 하고, 빨간셔츠 교감선생알랑쇠 미술선생이 하는 말들도 하나하나 비위에 거슬릴 지경이다.

  

 

 『 정직하게 살면 누가 이용하든 두렵지 않습니다. 』 - p75

 

교감 빨간셔츠가 말하는 정신적 오락이라 부르는 고상한 취미생활이 실상 물질적 오락과 별반 차이도 없고 실제로는 뒤에서 몰래 물질적 오락을 취하는 그의 이중적 행동을 비꼬며 오래된 연못이여,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 』 에 빗대 그가 말하는 정신적 오락을 비꼬기도 한다.

'마돈나'라고 불리는 근방에서 제일 예쁜 아가씨를 두고 원래 약혼자였던 끝물호박과 마돈나를 차지하기 위해 술수를 쓰는 빨간셔츠와의 관계를 두고 우리의 도련님은 점잖은 끝물호박을 불쌍히 여기며 더욱 빨간셔츠에 대한 혐오감이 짙어진다.

 

 

『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나빠지는 일을 장려하고 있는 것 같다. 나빠지지 않으면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간혹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을 보면, 도련님이라는 둥 애송이라는 둥 트집을 잡아 경멸한다. 』 - p76

 

『 세상이 이런 곳이라면 나도 지지 않고 남들처럼 속이지 않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 - p98

 

『 사과를 하거나 용서를 빌 때 진지하게 받아들여 용서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정직한 바보라고 할 것이다. 용서를 비는 것도 가짜로 하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도 가짜로 용서하는 거라고 생각해도 된다. 』 - p144

 

 

 

그러다 빨간셔츠의 책략에 '나'와 산미치광이라 별명 붙인 주임 수학선생도 걸려드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로써 불의를 응징한다는 목적으로 빨간셔츠를 나름의 방법으로 응징하려고 계획을 짜는 둘의 모습은 한편으론 우스꽝스러울 지경이다. 그들이 결국 취한 응징이라는 것이 결국엔 폭력이었으니까.  "아무리 교묘한 말로 변명한다 해도 정의는 용서하지 않으니까." 며 빨간셔츠와 알랑쇠를 두드려 패는 장면을 보고는 한참을 웃었다. 100년 전 도련님 작품에서 B급 코드를 느낄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본인은 심각하게 대사 치는데 그걸 보는 이는 픽픽 웃음이 날 지경이다. 이 장면을 보며 의협심 충만한 오! 쾌남~ '다찌마와 리'가 생각났다.

 

 

《도련님》에 나오는 대사는 리드미컬하다. 전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때에는 서사적 묘사였다면 《도련님》은 1906년 작품이건만 현대소설 같은 느낌도 충만하고 사실적인 체험적 소재가 잘 녹아든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쓰메 소세키가 교사생활 중 심한 신경쇠약 증세 때문에 시코쿠의 마쓰야마 중학교로 전근해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쓴 《도련님》이기 때문이다. 도련님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정직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정의를 표창하면서도 결국 '싸우는' 모습에서 완력의 세상이라는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대변하고 있다. 게다가 착각 대장이란 말을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도련님의 행동은 사실 겉모습으로 상대방의 인품을 결정내리는 경향이 강하다. 싫은 소리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대응하며 단칼에 거절하면서도 한편으론 우물쭈물 말을 내뱉지 못하는 도련님의 모습은 온갖 행태로 찌든 현실의 세상에서 무시당하고 싶지는 않으면서도 수동적인 행동을 이면에 가진 풋풋함과 당참을 안고 세상에 뛰어든 신참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년 이미지의 '도련님'인 것이다. 도련님이 빨간셔츠와 싸운다 한들 결국 학교를 떠난 쪽은 빨간셔츠가 아니라 도련님이다. 결국, 변화는 없다. 이것이 소세키가 말하고자 한 '진실'이 아니었을까.

 

 

 

△ <도련님>은 나쓰메 소세키가 마쓰야마에 있던 시절을 배경으로 했던지라 <도련님> 소설에 등장하는 온천이라든지 온천을 가기 위해 탄 열차 등이 현재 마쓰야마에 재현되어 관광상품으로 운영중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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