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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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책이 꼬박 하루 붙잡고 있으니 다 읽혀진다. 

2002년에 다른 출판사의 책으로 읽다가 (당시에는 작가가 그렇게도 유명한 사람인지도 몰랐고 단순히 고양이가 나온다고 해서 읽었던)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힘들어 내 취향이 아닌 책으로 단언하며 중간에 집어치웠는데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시점에 현암사 소세키 전집 출간을 계기로 다시 한번 도전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어느 출판사의 것이건 하물며 발로 쓴 번역이어도 1장은 원래 재밌다.

중반 이후부터가 관건이다. 고양이도 한해 나이 먹었다고 점잔을 빼는지 칼날같은 비유가 고양이의 목소리에서 점점 사람의 대화로 바톤을 넘겨주는 경우가 많아 주제가 조금만 생소해도 머리가 지끈거릴판인데 어려운 한자투, 일본식 표기 등이 송태욱 번역의 현암사 책은 한글로 순화가 잘 되어있는데다가 문장 줄 간격 등 편집면에서도 세련되어있어 술술 넘어간다. 번역의 힘이란게 이렇다.

간결한 문장과 세련된 편집 덕에 드디어 완독을 하게 됐다. 그러고선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이거 결말이 이렇다고????!!!!!!"

나름 반전의 결말을 맞있어 한동안 충격에서 못 헤어났다.

 

그 유명한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로 시작되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는 주요 인물이 세 사람이다.

우유부단하고 냉소적인 중학교 영어선생 구샤미(고양이의 주인되시겠다), 내뱉는 말의 90%는 사실인지 거짓인지 구분이 힘든 허풍쟁이 메이테이, 이들의 장단을 맞추는 간게쓰. 모두 일본 메이지 시대의 지식인에 속하는 자들로 그들을 통해 일본 사회상을 꼬집고 있다.

 

『 원래 인간이라는 족속은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여 다들 우쭐거리며 거만하게 군다. 인간보다 좀 더 강한 자가 나와 혹독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거만하게 굴지 모른다. 』 - p25 

『 주인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은, 일기라도 써서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어두운 방에서나마 발휘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 - p49

 

그런대로 만족하며 평생 이름없는 고양이로 살아갈 생각을 하며 인간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관찰하는 '나' 고양이가 책을 이끌어간다.

인간들은 참으로 제멋대로 구는 족속이라며 초반에는 인간들이 하는 행태 자체에 쓴 소리를 퍼붓는다. 

 

그렇다고 진지하게 쓴 소리만 하고 있느냐? 

고양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담는, 진지해보이는 소세키 작가에게 이런 면이 있단 말인가 할 정도로 어느 장면에선 빵 터지기도 하고, 킬킬거리기도 하고, 이거 허당 기질이 대단한걸? 하는 느낌을 몇번이고 받았다.

 

『 나는 새해 들어 다소 유명해졌으니 비록 고양이지만 다소 자부심이 드는 것 같아 흐뭇하다. 』 - p37

 

이렇게만 적어두면 반만 이해되는 셈이니 현암사 책이 두꺼워진 이유는 바로 친절한 각주에 있다. 읽으면서 동시에 이해를 해야 하는 장면이 많은데 그때마다 책 아래 간략히 설명을 덧붙이고 있어 바로바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위의 이야기는 바로 1905년 1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장을 하이쿠 전문잡지 호토토기스에 발표하고나서 호평을 얻어 연재가 계속되었다는 의미라는 것을 각주를 통해 바로 알지못하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셈이다. 소세키만 파고든 전문 학자도 아니고 일반독자에게는 그래서 이번 현암사 책이 매력만점이란 것.

 

인간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그들의 사상과 언행을 평가하고 싶어하는 '나' 고양이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고양이로서 진화의 최고 단계에 도달해 있다며 자신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고양이가 떡국떡을 몰래 먹고 떡이 이에 박혀 곤란해진 장면에서는 체면이 영 말이 아니다. 소세키 작가가 전생에 고양이였나 싶을 정도로 '나' 고양이의 속마음을 그럴싸하게 표현하고 있어 한바탕 웃게 만든다.

『 씹어도 씹어도, 10을 3으로 나눌 때와 마찬가지로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 - p55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소세키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다.

일본에서 상, 중, 하편 세권으로 출간되었는데 중편에서 작가의 말에 소세키의 친구 시키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시키와는 문학을 매개로 비판도 주고 받는 절친한 친구였고 시키를 통해 소세키라는 필명의(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 작가가 세상에 태어난 계기가 될 정도로 시키와의 관계는 깊다. 하지만 소세키가 영국 유학 당시 투병중이던 친구 시키의 편지에 답장을 더 해주지 못한 채 친구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 미안함이 절절히 묻어나온다.

 

소세키는 얼굴때문에 소심함이 많았다한다. 천연두 자국이 남아 곰보가 된 자신의 모습을 고양이의 말을 통해 비하한 장면이 나온다.

『 무슨 업보로 이런 묘한 얼굴을 가지고 염치도 없이 20세기의 공기를 호흡하고 있는 것일까. 』 - p419

 

그 외에도 소세키는 위선적인 교양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 자기본위의 이기주의 등 개인, 사회, 국가의 군상을 곳곳에서 풍자한다. 소세키가 살고 있던 메이지 시대는 문호개방으로 서양의 것을 그대로 베끼는 풍토였는데 서양 문명 따위 그런식으로 따라해봤자 틀려먹었다며 개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니체의 초인론을 들먹이며 민족성과 내셔널리즘의 일면만 받아들이는 군국주의 국가의 당시 사태를 비판하기도 한다. 이렇듯 현실 세계를 '나' 고양이의 눈을 통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소세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겨우 10여 년의 작품활동기간임에도 소세키는 일본근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일본 국민작가로 불린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사회를 정면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비판적 시각으로 다양한 비유와 은유를 통해 반영하기 때문에 일본 국민작가로서의 폭넓은 독자층을 얻고 지속적인 지지를 받아오게 된 것이 아닐까. 100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고전에서 받는 고리타분함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세상... 별반 다를것도 없네 싶다. 그래서 안타깝기도 하고 '나' 고양이가 말하고 있는것이 공감이 되는 이유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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