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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제삿날 ㅣ 학고재 대대손손 8
한미경 글, 이지선 그림 / 학고재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그저 그런 흔한 전통문화 그림책이라 생각했다.
이걸 못 읽었더라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절대 알 수가 없었겠지. 목이 메어오는 먹먹함과 눈물이 자꾸 나게 하는 이 그림책의 한 장면은 잊을 수 없는 감동과 아스라한 아픔이 내 기억 속에 두고두고 남게 될 것 같다. 책을 보는 아이도 나도 숙연한 마음에 잠시 숨을 고른다.
<여우 제삿날>은 제사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주 성대한 제사상도 나오고, 간출한 제사상도 나오지만 이런 음식 저런 음식을 어떻게 차리는지의 기술적인 방법을 세세하게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제사의 '의미, 정신'을 알려주고 있다.
백 년을 제 잘난 맛에 살아온 친구 하나 없는 여우가 잿밥에만 홀랑 정신이 팔렸다가 아기를 구하며 조상의 의미, 정성, 제사의 참뜻을 깨닫게 된다는 줄거리다.
볼로냐 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상을 받은 이지선의 그림은 무심한듯한 선과 담백한 색채가 보면 볼수록 정겹다. 민화의 느낌이 드는 꽃 그림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으니 학고재 출판사의 전통문화 그림책이란 타이틀과 찰떡궁합이다.
요즘은 제사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들도 많을 테고, 제사를 치우는 방식도 집집이 많이 달라서
우리 아이의 경우만 하더라도 제사 장면을 보며 평소의 제사가 아닌 장례식장의 모습을 먼저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나도 여우랑 다를 것 없다. 제사라고 하면 그저 힘들고 피해 가고 싶은 일거리로만 생각했을 뿐 그 의미를 진정 생각해본바 없었던 것 같다.
자신을 초대하는 향냄새라는 것을 안 여우의 한마디,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 그 말에 자꾸 울컥하게 된다. 이 엄마는 감동이 너무 밀려와서 책을 덮고 나서도 그 먹먹함에 허우적거렸지만 아이는 아직 배경경험이 적다 보니 여우의 말 한마디에 가슴 뭉클함을 받으면서도 아이만의 적당한 수위에서 이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 이 책을 다시 보면 이 엄마가 왜 그리도 목이 메고 눈물을 닦고 있었던 건지 녀석도 그때는 느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