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 주임교수 - 가혹한 스승과 제자의 길고도 치열한 싸움
김명주 지음 / 매직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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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수원의 한 보건대 학생 몇 명이 중국에서 해부학 실습을 하던 중 카데바로 장난스러운 사진과 글을 올린 카데바 모욕사건을 기사로 접해 기억하고 있다. 카데바는 해부용 시체를 말하는데 주로 연고가 없는 주검이나 생전에 시신 기증을 위탁한 주검이 사용된다.

 

소설 <해부학 교실>은 의대 해부학 수업을 듣는 본과 1학년생 한동찬과 해부학 주임교수 황유진 교수와의 질긴 인연을 다루고 있다.

의대생들에게 두려움과 호기심의 대상인 악명 높은 해부학 주임교수 황유진과 죽음과 생명에 대한 철학적인 생각이 많은 의대생 한동찬.

고난의 발단은 골학 실습을 하던 동기들에게 예기치 못했던 사건으로 시작된다.

뼈를 가지고 칼싸움을 하듯 툭툭 장난을 치던 동기들이 황교수에 의해 퇴학을 당할 뻔했다가 교수 회의로 그나마 1년 정학으로 끝나게 되었고, 이후 황교수는 학생들을 괴롭히는 것이 삶의 유일한 쾌락으로 알고 사는 사람인마냥 들들 볶게 된다. 해부학 교실과 의과대학의 산 증인이요 대들보이자 터줏대감인 황교수는 학생들에게는 폭력교수, 공포교수로 주눅이 들게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공포의 대상인 황교수가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맞설 말이 없을 정도로 바른 소리뿐이었지만, 온갖 욕설이 난무하고 수시로 군기 잡는 모습은 이 책의 시대 배경이 언제인지 초반에는 전혀 짐작할 수 없어서 황당함이 솟구쳤다. 한참 지나서야 군부독재 반대 시위의 데모 같은 배경이 나와서 이 소설의 배경이 현재가 아닌 70년대 시절이구나 알 수 있었다.

 

여러분, 내가 전에도 얘기했지만 여기 누워 있는 이 카데바들, 이 사람들도 한때는 우리와 똑같이 살아 숨 쉬던 인간이었다. 찌르면 아파하고 고뇌하던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런 행동을 함부로 할 수 있는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술을 배운다는 의학도가 어찌 한 인간에 대하여 모욕과 희롱을 자행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자를 신성한 의학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수시로 치르는 시험, 유급과 퇴학의 공포, 무조건 공부 잘하는 사람이 최고인 생활 속에 한동찬은 카데바로 장난치는 조원들 때문에 어이없는 웃음을 짓던 순간 황교수의 눈에 띄어 조원들 탓에 연대책임으로 1년 정학을 당하게 된다. 말이 통하지 않는 황교수의 고집은 독자가 봐도 심하다 싶을 정도였다.

홀몸으로 피땀 흘려 학비를 보내주고 계신 어머니를 생각해봐도 좀처럼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의욕도 잃고 자신감도 잃은 상태가 되어버린 동찬은 한번 악순환에 빠지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이번에는 데모 시위 때문에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해 또 유급, 자동으로 퇴학이 되어버린다.

황교수에 대한 한동찬의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되고 난동사건을 벌이기도 하지만 그런 적의와 분노도 시간이 지나자 허망함과 허탈감만 남을 뿐, 농약을 먹고 자살 시도를 하려는 순간 포장마차 아주머니의 <다시 하면 된다> 그 한마디에 터닝포인트를 찍게 된다.

새롭게 대학입시 준비를 해서 입학한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이 다녔다가 퇴학당한 그 대학의 의예과.

예과 2년을 마치고 군 생활까지 하고서야 드디어 본과 1학년. 해부학 주임교수 황교수와 다시 대적하게 된다. 나이가 많다거나, 군대를 다녀왔다거나, 다시 들어온 의대생이라고 봐주는 것도 없는 황교수. 황교수와의 싸움은 쓰리고 참혹한 패배로 결국 또다시 유급을 맞게 된다.

하아.. 이쯤 되니 정말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이 둘의 관계가 징하구나 소리가 절로 나오긴 했다.

두 번째 자살시도가 실패로 끝난 한동찬 앞에 옛 시절 친우들의 도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정신개혁 훈련을 해서 부정적 인간은 죽고 긍정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한동찬.

본과 1학년 4수생 한동찬은 '황교수 타도, 해부학 통과' 일명 황타해통 작전으로 신념을 강화하고 매일 새롭게 각오를 다져나갔다. 임자 없는 무덤의 뼈를 가져와서 공부하는 일까지 할 정도로 황교수의 암울했던 그늘을 떠나 유능한 외과의사가 되기 위해 전진을 한 그는 결국 전체수석으로 국가고시 합격이라는 영광을 얻는다. 그 뒤 척척 성공의 카펫이 앞에 깔린 양 승승장구하는 삶을 사는 한동찬.

하지만 황교수의 죽음 이후에 그와 관련된 여러 비밀을 알게 되는데....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재미있겠다 싶은 주제이다. 현직 의사가 써서 더욱 실감 났던 부분들이 많았다. 의대생들의 고난도 엿볼 수 있었고.

'도대체 인간의 몸이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복잡해야 한단 말인가' 라며 의대생들이 한탄하는 부분은 그들의 고난이 얼마나 큰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해준다.

한동찬과 황교수, 두 인물의 내면과 더불어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들은 호흡이 가파를 정도로 속도감이 빠르다. 하지만 중반 즈음에는 사실 약간 지루함이 없진 않았다. 질릴 정도로 두 사람 간의 악연이 해도 해도 너무하는 막장 드라마 기질이 살짝 보여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시대배경이 현재가 아니어서 요즘도 설마 저렇게 할까? 하는 공감에 의심이 생겨 긴장감이 떨어진 탓도 있었지 싶다. 그 부분을 제외하고는 의학도의 삶과 한 인간의 집념과 도전정신을 엿볼 수 있어 전체적으로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카데바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배워야 하며 카데바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의사가 지녀야 할 자질이 보인다고 말한 황교수의 말이 이 시대의 의대생들에게 가슴 깊이 전달됐으면 한다.

이 책이 누군가의 가슴 속에 불꽃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현직 의사인 저자의 생생한 묘사와 전문지식이 녹아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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