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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
스콧 허친스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
스콧 허친스 저 / 김지원 역 | 북폴리오
출간일 2013년 03월 18일 | 500페이지 | 정가 14,000원
사랑이란.. 사랑의 작용 원리는, 사랑이라고 느끼는 그 감정을 유지하는 방법은 뭘까. 누군가에게 받는 사랑, 주는 사랑.. 사랑이란 감정을 당시에는 만연히 느꼈던 시기를 저 깊은 곳에서 꺼내야만 할 정도의 아스름한 감정으로만 남아있는 것도 진정한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그것이 사랑이란 것조차 모르게 삶에 스며든 무언가도 나름의 진정한 사랑의 의미일까. 나는 책장을 넘기며 행간에서 이 모든 사랑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다...
지능형 컴퓨터의 정의를 세웠던 천재 과학자이자 수학자로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의 암호해독을 담당했던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의 탄생 100주년이 되던 해가 바로 2012년. 이 책의 원서가 출간되었던 해이다. 비운의 삶을 살았던 앨런 튜링의 자살과 닐 아버지의 자살, 앨런 튜링이 생전에 말했던 미래의 인공지능 컴퓨터.. 저자는 앨런 튜링을 기리기 위해 이 책을 썼을까... 인간의 죄악과 미덕, 그 중에서 본질인 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을 인공지능 컴퓨터에 대입해 풀어나가려는 탁월한 재치를 엿볼 수 있다.
아버지의 자살, 이혼을 겪은 30대의 남자가 있다. 그저 혼자였을뿐이지만 자급자족의 생활이라고 위안삼으며 샌프란시스코 도시생활을 시크하게 독신남으로 살아가고 있는 닐 바셋 주니어라는 이름의 남자. 그는 언어학적 컴퓨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회사에서 일하며 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그 입력 데이터들은 바로 98권이나 되는 이십년치의 일기의 주인공인 자살한 아버지의 일기장인 것이다. 그것은 5천장이 넘는 생각과 이야기, 다양한 문구, 인생의 철학, 의학적 조언이 담긴 산더미 같은 사고와 상호 대화하는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지능형' 컴퓨터. 30퍼센트의 확률로 인간을 속일 수 있는 컴퓨터를 말한다. 아버지의 일기를 토대로 만든 인공지능을 지향하는 닥터 바셋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이 컴퓨터는 초기에는 몇가지 대화의 기술을 이용하여 일기에서 적당한 대답을 찾는 것 뿐이었다. 컴퓨터가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수도 없었고, 생각을 따라가지도 못했고,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가려내지 못했다. 2년동안의 작업동안 1퍼센트도 인간을 속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의 과제는 이 인공지능이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 바로 불확실함과 마주했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 설득력 있는 인간의 목소리로 통일성 있는 대화를 할 수 있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닐 바셋 주니어가 살아생전 느꼈던 부자지간의 사랑의 부재를 철저하고 꼼꼼하고 폐쇄적이면서도 유쾌할 정도로 객관적인 방대한 양의 일기속에서 찾으려고 하는 마음의 고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놀라운 내용도 없고 페이지마다 가득한 온갖 의견과 사사로운 이야기들이 아버지를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진정한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일 뿐이라는 것에, 닐 스스로 감상적인 면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사로운 일이 있을때마다 닥터 바셋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는 닐. 닥터 바셋의 대답에서 그것이 일기에 있었던 문장인지 닥터 바셋이 만들어낸 문장인지 혼란이 오는 시점에서 어느쪽이든 말도 안 될만큼 마음의 위안이 되는 답을 찾는 닐의 모습은 아버지와 그 자신을 향한 내면의 깊은 곳을 파고드는 모습을 보게 된다. 튜링테스트에 통과하기 위한 일환으로 닥터 바셋에게 질문하는 능력을 주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닥터 바셋은 닐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추론하여 인식하고 자신의 일기 중에서 빠진 년도의 일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그 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닥터 바셋을 대신해 그 과정을 찾아가는 닐의 행동은 살아생전 아버지와의 사랑의 부재에 대한 이유를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아직 지능형에는 부족한 닥터 바셋의 공백은 '본능과 두뇌에 대해 생각하느라 인간을 조합하는 중대한 요소를 빠뜨린 거라면?' 의문에서 답을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이나 사물에 결속감을 느끼거나 아끼는 것을 느끼는 마음 자체는 단순히 예를 들면 결혼생활 유지라는 수준이지만, 자신과 세상 사이의 모든 상호관계의 일부로서의 사랑에 관한 것. 모든 상호작용이 사랑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감정과 호르몬을 담당하는 변연계가 채움의 주체이니 닥터 바셋에게는 심장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컴퓨터가 항상 연결을 찾도록 만드는 것, 채우고 채움 상태로 머무르는 것. 이것이 닥터 바셋을 통해 느낀 사랑에 관한 닐의 이론이었다.
아버지와의 관계 외에 이야기의 커다란 나머지 한 축은 여자와의 관계를 나타낸다. 결혼생활의 실패, 쿨함을 넘어서는 가벼움만을 유지하는 관계가 일상인, 우리가 누군가에 대한 탐구가 아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집중을 하는 방식을 가진 닐의 생활은 점차 다른 이들의 관계를 보며 그리고 닥터 바셋의 조언을 들으며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에 속해보려는 마음을 찾게 된다.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견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 그녀의 영적 보조자, 약간의 부르주아적인 책임감이, 약간의 닥터 바셋스러움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닐. 그냥 옆에 있어주고 계속 노력하면 된다는 그의 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을 이것으로 대신한다.
결국에 아무것도 없다.
사랑은 자기 실현이다. 사랑은 자력이다. 이 모든 것이 도움은 되지만
불완전한 설명이고 서로 상충되고
결국에 어떤 결론도 내놓지 못한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