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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 - 요양원을 탈출한 엄마와 K-장녀의 우당탕 간병 분투기
유미 지음 / 샘터사 / 2025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죽는 것보다 늙는 게 두려운 시대. 간병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지만, 아무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현실입니다. 유미 작가의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는 뇌종양 판정을 받은 어머니를 돌보는 과정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들을 담아냅니다.
유방암, 신우암, 폐암을 이겨낸 엄마가 이번에는 뇌종양과 싸우는 동안, 딸은 갑작스럽게 간병인이 되어 요양병원, 대학병원, 요양원을 오가며 고군분투합니다. 고통스럽고 때로는 비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통해 돌봄의 본질을 되묻습니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 가족 특히 결혼한 딸이라면 특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아 읽는 내내 어찌나 울컥하던지요. 모녀의 이야기는 3부작 EBS 다큐프라임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의 ‘죽는 것보다 늙는 게 두려운’ 편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간병은 단순한 시간과 노동의 문제가 아닙니다. 간병비의 현실적 부담을 솔직하게 풀어냅니다. "서울 지역 1일 평균 간병비는 12~14만 원 선으로, 열흘이면 150만 원에 육박하고 한 달이면 400만 원이 넘는다"라며 간병 파산의 위험성을 실감합니다. 세대 간 부양 문제를 몸소 겪게 됩니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실상, 고액의 항암 면역주사를 강요하는 의료 시스템의 현실처럼 불편한 진실도 담겨 있습니다.
간병과 돌봄의 책임은 주로 딸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자도 왜 돌봄은 딸의 몫인가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현실을 맞이합니다. 한국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성별 불평등한 돌봄 분담의 현실을 드러냅니다.
작가는 아들인 오빠보다 적은 교육 혜택을 받았지만, 정작 부모 돌봄은 자신의 몫이 된 상황에 분노하기도 합니다. MZ 세대의 딸로서, 베이비붐 세대의 부모를 돌보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딸은 엄마의 돌발적인 행동과 점점 심해지는 증상들 속에서 갈등과 좌절을 경험합니다. 단순히 모녀간의 갈등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갈등의 밑바탕에 깔린 감정의 결이 섬세하게 드러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습니다.
뇌종양으로 인해 아기로 퇴행한 엄마를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엄마가 더 이상 이전의 강인한 모습이 아닌,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느낀 저자의 슬픔과 무력감이 공감됩니다.

간병은 환자뿐만 아니라 간병인에게도 정서적 고통을 안겨줍니다. 엄마와의 충돌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아 나도 몰라 이제!! 나 지금 팍 죽어 버릴 거니까 엄마도 거기서 죽어! 그냥!! 죽어!!!"라는 극단적인 대화는 간병인이 느끼는 번아웃의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감정 폭발 후에 찾아오는 자책감("아픈 엄마에게 죽으라고 소리 지르는 쓰레기 같은 인간아")은 많은 간병인들이 경험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간병은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감정적 소진을 동반하는 총체적 도전입니다.
요나스 요나슨 작가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처럼 엄마가 요양원 창문을 넘어 탈출하는 사건은 이 책의 백미입니다. "맨날 뛰어내린다고 협박하더니 진짜로 저질렀네. 무엇을 상상하건 엄마는 그 이상이다."라는 작가의 말이 오히려 웃음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엄마는 요양원에 간 것도 스스로의 준비된 선택이 아니었기에 너무나도 싫었다고 합니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책 내지를 좌르륵 넘기면 창문에서 날아가는 새 그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엄마의 탈출은 자유와 존엄성을 향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상징합니다. 덕분에 작가는 깨닫습니다. "엄마,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살아. 훨훨 날아가. 엄마의 인생은 엄마가 결정해."라고 말이죠. 엄마의 탈출은 노인 돌봄에서 놓치기 쉬운 환자의 자율성과 존엄성 존중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건입니다.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는 우리 모두가 직면할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좋은 죽음(웰다잉)은 결국 좋은 삶(웰빙)의 연장선에 있으며, 거창한 것이 아닌 나다운 일상을 지켜내는 데 있다는 깨달음을 안겨줍니다.
노화와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주제이기에, 젊은 세대에게도 미래를 준비하는 의미 있는 책입니다. 저도 10년 전에 읽었다면 지금만큼 공감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내 나이가 들수록, 부모의 나이가 들수록 노인 돌봄과 간병 문제는 두렵게만 다가옵니다.
<창문 넘어 도망친 엄마>는 우리 모두의 노년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의료, 복지, 노인 돌봄 분야 종사자들에게는 환자와 가족이 느끼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료가 될 겁니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지나치게 우울하지 않게 풀어내는 유미 작가의 필체도 마음에 듭니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건 존엄성 없는 마지막이 아닐까요. 가족 돌봄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