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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분을 찾습니다 - 나치를 피해 탈출한 유대인 아이들의 삶
줄리언 보저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24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1938년 나치의 광기가 오스트리아 빈을 덮쳤을 때, 한 줄짜리 신문 광고가 어린 생명들을 구해냈습니다. 그 광고는 다름 아닌 "친절한 분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낯선 사람들에게 자녀의 생명을 맡기는 절박한 유대인 부모들의 외침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영국 가디언의 기자 줄리언 보저가 자신의 아버지가 광고의 주인공 중 한 명임을 알게 되며 시작됩니다. <친절한 분을 찾습니다>는 홀로코스트 속 유대인 아이들의 탈출과 그 뒤에 남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담아낸 논픽션입니다.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직후, 유대인들은 하루아침에 자신의 조국에서 추방당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빈의 유대인 공동체는 가족의 생존을 위해 필사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살리기 위해 맨체스터 가디언에 아이를 맡아줄 사람을 구하는 광고를 냈고, 이 광고는 곧 영국 전역의 친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닿았습니다.

<친절한 분을 찾습니다>는 저자의 아버지인 보비 보거를 포함해 이 광고를 통해 탈출한 8명의 아이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합니다.
당시 광고의 한 예는 이렇습니다. "훌륭한 빈 가문 출신의 제 아들, 총명한 11세 남자아이를 교육시켜 줄 친절한 분을 찾습니다." 이 문구가 나치의 손아귀에서 아이를 구하려는 생존의 연결줄이었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이 책은 나치를 피해 유대인 아이들의 탈출 여정만을 그려낸 책이 아닙니다. 저자는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겪어야 했던 정체성 혼란과 상실 그리고 평생을 따라다닌 역사적 트라우마를 세심하게 살핍니다.
저자의 아버지 보비는 어린 시절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나 명문대에 진학하고 가정을 꾸리며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치로부터 도망친 기억과 어린 시절의 분리 경험은 그의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결국 그는 50대 중반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아들이자 저자인 줄리언 보저는 이러한 개인적 비극을 가족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풀어내며, 트라우마가 단순히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트라우마는 아이들이 생존 후에도 지속적으로 삶에 영향을 미쳤고, 이는 2세대, 3세대에 이르기까지 대물림되며 그 무게를 남겼습니다. 저자는 생존 그 자체를 축복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을 던집니다. 단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모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친절한 분을 찾습니다>는 각기 다른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보여줍니다. 탈출한 아이들은 단순히 물리적 생존만이 아니라, 심리적·사회적 생존까지 고민해야 했습니다.
14세였던 조지는 부모를 구출하려는 책임감에 열세 살 소년의 몸으로 성인의 짐을 짊어졌고, 게르트루드는 고독에 괴로워하며 "부모와 함께 죽더라도 빈에 남았더라면 나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저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삶을 단지 과거의 사건으로 두지 않습니다. 그들의 경험은 오늘날 난민 문제와도 닮아있으며, 전쟁과 폭력이 가족, 공동체, 그리고 세대에 걸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시사합니다.
친절한 마음 하나가 한 생명을 구하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연쇄적 변화는 뜻깊었습니다. 이 책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는 낯선 이들의 친절함입니다. 광고를 통해 아이들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을 걸고 이방인들을 돕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결단은 단지 몇몇 개인의 생명을 구한 것이 아니라, 전체 세대에 걸쳐 이어지는 유산을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친절함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도움은 생존의 기회를 제공했지만, 트라우마와 상실감을 완전히 치유하지는 못했습니다. 폭력과 전쟁은 단순히 당대의 피해로 끝나지 않으며, 그 트라우마는 후세대까지 이어진다는 걸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오늘날 전 세계 난민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역할을 고민하게 합니다.
홀로코스트 속 생존자들의 잊힌 기록을 되살린 <친절한 분을 찾습니다>. 한 줄 광고로 생명을 구한 놀라운 실화와 함께 트라우마가 대물림되는 과정을 섬세히 그려낸 걸작입니다.
과거의 비극과 그로 인한 깊은 상처를 되짚으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감동적인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