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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 화려한 영광과 찬란한 시련의 헝가리 역사
빅터 세베스티엔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4년 9월
평점 :
거대한 시간의 박물관, 부다페스트. 2,000년 넘게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서 번영과 고난을 동시에 겪었습니다. 빅터 세베스티엔의 <부다페스트>는 역사의 정수를 잡아내며 부다페스트의 독특한 정체성과 문화적 교차로 역할을 깊이 있게 조명합니다.
부다페스트의 역사는 단순한 도시 발전사가 아닙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접점에 위치한 이 도시는 끊임없이 외세의 침공과 점령, 혁명과 봉기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특히 서양 문명과 동양 제국의 잔재가 겹쳐지며 형성된 독특한 문화와 정체성은 부다페스트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복잡한 역사를 이해하려면 로마 시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부다페스트가 겪어온 다양한 전환점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다뉴브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와 페스트라는 두 지역으로 나뉩니다. 이 도시는 2,0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로마 제국 시기부터 오스만 제국, 합스부르크 왕조, 그리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동서양의 문명과 역사가 교차하는 중요한 지점이었습니다.
부다페스트는 다양한 외세에 의해 점령되고 통치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아퀸쿰은 부다페스트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이후 마자르인의 정착과 함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마자르인들은 유럽 여러 국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외면받으며 스스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습니다.
몽골과 튀르크의 침공은 부다페스트를 황폐화시켰지만, 도시 재건은 그 자체로 저항과 생존의 상징이 됩니다. 이러한 경험은 헝가리의 정체성을 동양과 서양 사이에 위치시켰고 이는 현대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는 부다페스트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왔습니다. 19세기에는 도시를 연결하는 다리들이 건설되고, 헝가리어 부흥 운동이 일어나면서 독립된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점차 강해졌습니다.
헝가리 민족주의의 열망은 1848년 혁명으로 폭발했습니다. 비마자르인에 대한 배려 부족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반격으로 인해 실패했지만, 이 혁명은 부다페스트가 민족 자결권을 요구하는 상징적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독립 투쟁은 헝가리 현대사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으며, 도시의 자존심을 더욱 확고히 했습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부다페스트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 세계적 갈등의 중심에 섰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몰락과 함께 헝가리는 독립국으로 나아가지만, 나치 독일과의 결탁은 또 다른 비극을 불러옵니다. 헝가리는 나치 독일과 동맹을 맺으며 부다페스트는 유대인 학살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호르티 미클로시 제독은 나치의 충성스러운 하수인이 되어 부다페스트를 피로 물들였고, 이는 헝가리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전쟁 후반에 부다페스트는 나치 독일의 철수를 선언했지만, 부다페스트 포위전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도시는 파괴되었고, 1956년 혁명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불안이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부다페스트는 1956년과 1989년, 두 차례의 혁명으로 전 세계에 주목받았습니다. 혁명의 도시, 부다페스트의 이미지가 각인됩니다. 1956년 부다페스트 봉기는 소련군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1989년에는 냉전 종식의 기폭제가 되며 헝가리의 자유를 향한 염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부다페스트의 역사적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부다페스트는 동유럽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서방 세계로 넘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습니다. 헝가리 정부는 1989년 9월 11일, 동독 난민들이 헝가리에서 서독으로 갈 수 있도록 국경을 개방했습니다. 이로 인해 수만 명의 동독 국민이 서독으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국경 개방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를 드러내고 민주화의 열망을 상징하는 순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부다페스트는 사회주의 몰락의 상징적 도시로 자리 잡았으며, 동서양의 경계에 서 있는 상징적 위치를 다시금 보여줬습니다.
부다페스트는 정치적 사건의 무대만이 아니라, 위대한 예술가들과 과학자들을 배출한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 노벨 의학상 수상자 센트죄르지 얼베르트, 노벨 문학상 수상자 케르테스 임레,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 존 폰 노이만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헝가리 출신 인물들이 문화적, 과학적 유산을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헝가리 역사가 개인의 삶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는지 연결성을 짚어보는 탐구 방식이 흥미진진합니다.
동양과 서양의 교차로에서 번영과 고난을 동시에 겪은 도시의 이야기 <부다페스트>. 처음엔 동유럽의 한 도시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히 파고들 이유가 있을까 싶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부다페스트가 지닌 역사적 상징성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2,000년의 역사 속에서 유럽과 세계의 역사를 형성해온 부다페스트의 영광과 비극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