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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현대사 - 드라마처럼 읽는 이웃들의 이야기
배진시 지음 / 책과나무 / 2024년 9월
평점 :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세대의 갈등과 공존을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묘사한 <이웃집 현대사>. 세대의 기억을 엮은 독특한 소설입니다.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입니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경험한 변화와 가치관의 충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지숙과 기철 부부네를 중심으로 위로는 1905년생부터 아래로는 2012년생까지 3세대에 걸친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가며 꿈, 욕망,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좌절하고 다시 일어섭니다. 현대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채로운 이야기 덕분에 시대의 흐름과 그 시절을 살아낸 이들의 감정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1970년대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당시 주요 사건들이 인물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70년대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인 인물인 장준하의 의문사는 당시 억압적인 정치 상황을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입니다. 이 사건을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의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집 문제는 큰 골칫거리입니다. 세대가 다르더라도 집을 향한 갈망은 변함이 없습니다. 70년대에는 집을 소유하는 것이 단순한 자산 이상의 상징성을 지녔던 시기입니다.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뒤바꾸고, 또 세대 간 경제적 격차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보여줍니다.
1980년대는 이념 대립과 사회적 갈등이 고조된 시기였습니다. 다양한 민주화 운동과 이념 충돌이 인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배진시 작가는 이 시대에 한국 사회가 어떻게 급격히 정치화되었는지, 각기 다른 이념이 어떻게 세대 간의 갈등을 촉발했는지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더불어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은 성적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믿음을 가지도록 만들었습니다. 당시 교육과 사회적 기대가 어떻게 개인의 삶을 제한하고, 좌절감을 안겨줬는지 고민을 담은 에피소드가 인상 깊습니다.
1990년대는 물질적 풍요와 소비문화가 급속히 확산된 시기입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통해 경제적 번영의 이면에 존재하던 어두운 현실이 드러납니다.
90년대에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며 기성세대와 충돌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X세대의 가치관은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달랐으며, 그들의 삶의 방식은 그 시대의 물질주의와 맞물려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이 시기 소비와 욕망이 어떻게 사람들의 정체성을 바꿨는지, 그로 인해 생긴 세대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이어집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중심을 이룹니다. 결혼이 더 이상 낭만적 사랑의 결과물이 아니라, 계약과 같은 사회적 제도로 변질되었음을 보여줍니다.
2000년대 말, 한국 사회는 또다시 커다란 변화를 맞이합니다. 2016년 광화문 광장에 모였던 수많은 사람들은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에 저항하며 새로운 시대를 요구했습니다. 각 세대가 나름의 방식으로 공존하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모습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다양한 세대가 살아온 삶의 흔적을 엿보는 시간 <이웃집 현대사>. 세대 간의 차이가 단순한 갈등이 아닌, 서로 다른 기억과 경험의 공존임을 일깨웁니다.
삐삐와 휴대폰의 등장, 노량진 고시촌 모습 등 사회 변화는 물론이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IMF 외환위기, 광화문 촛불 집회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현실적인 배경 속에서도 드라마처럼 극적인 인간관계와 사건들이 얽혀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 세대 간의 갈등과 그에 따른 사회적 변화를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역사를 몸소 체험한 이들에게는 잊힌 기억을 되살리고,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시각을 선사하는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