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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 - 삶의 감각으로 이야기한 장애의 세계
앤드루 릴런드 지음, 송섬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9월
평점 :
2024 퓰리처상 최종후보작 앤드루 릴런드의 책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 시각장애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그가 경험한 내면의 변화와 시각장애라는 주제를 매개로 사회와 역사를 탐구하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어판 표지에는 제목, 부제, 저자명, 역자명이 점자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끝의 시작’이라는 글로 시작하는 이 책은 저자가 시력을 잃으며 겪는 상실의 고통을 넘어 새로운 감각의 출발을 의미합니다.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고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변화된 삶의 방식과 그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세계를 기록한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
시각을 잃어가는 두려움과 그에 따른 일상적인 변화를 면밀히 탐구하며 시작됩니다. 그는 ‘눈먼 자들의 나라’를 새로운 감각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의 내밀한 표현은 마치 처음부터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는 법을 배우는 듯한 경험을 안겨줍니다. 독자도 그 여정에 참여하며 삶의 감각을 새롭게 경험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저자는 시각장애인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느꼈던 혼란을 털어놓습니다. '시각장애인이 아니다'라는 자기암시를 걸면서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을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자립과 타인의 도움,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지팡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사회적으로 '다른' 존재로 인식된다는 사실을 직면합니다.
그의 아내조차도 남편이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고, 주변 사람들은 그를 동정하거나 불안해했습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장애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 소외를 깊이 탐구하게 됩니다. 지팡이는 시각장애의 상징적인 도구임과 동시에 자신과 타인 간의 관계를 바꾸는 요소입니다.
그는 시력을 잃음으로써 자신이 갖고 있던 가부장적 역할이 좌절되는 경험을 합니다. 시각장애와 사회적 통념, 특히 남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탐구하며, 실명을 통해 자신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점자와 오디오북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독서를 해야 했고, 이전에 익숙했던 독서 경험과는 전혀 다른 감각적 경험을 겪게 됩니다. 비시각장애인이 놓칠 수 있는 새로운 인식을 얻게 됩니다.
저자는 자신이 점자를 통해 아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경험을 이야기하며, 비시각장애인들이 생각하는 ‘완전한 독서’와는 다른 형태의 즐거움을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시각장애를 겪으면서도 창조성을 잃지 않는 다양한 사례들도 살펴봅니다. 시각의 한계가 창의력의 한계를 의미하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시각에 의존하지 않는 창조 과정, 감각의 확장, 그리고 예술적 혁신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청각을 통해 세계를 재발견하는 과정을 탐구합니다. 소리로 세계를 재구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소리로 세상을 그린다'라는 말처럼, 보이지 않는 풍경을 청각으로 느끼고 해석하는 경험을 공유합니다.
이러한 감각의 재발견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주변을 인식하게 된 릴런드. 단순한 적응이 아니라, 감각의 진화와도 같았다고 말합니다. 책 후반부에는 철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감각의 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다룹니다. 시각 중심의 인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계로의 도약을 의미합니다.
감각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가는 여정을 담은 철학적 성찰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 시각장애를 단순히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다차원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음을 들려줍니다.
시각의 한계를 넘은 감각의 풍경. 시각장애인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비장애인도 감각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