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미술관 - 그림 속 잠들어 있던 역사를 깨우다
김선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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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역사적 맥락을 탐구하는 <사유하는 미술관>. 그림을 매개체로 한 인문학적 사유를 펼치는 예술 칼럼니스트 김선지 저자의 책입니다. 왕과 비, 스캔들, 음식, 신앙, 권력, 근대 사회의 모습까지 명화 속에 잠들어 있던 역사를 여섯 가지 키워드로 풀어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명화 속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그림 속에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그림으로 남아 기록된다는 걸 보여주는 <사유하는 미술관>. 예술 작품은 역사를 반영하는 기록물이자 인간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저자의 말이 인상 깊습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강력했던 절대 군주 루이 14세.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함은 그의 성격을 잘 반영했습니다. 게다가 1년에 두 차례 새로운 직물의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루이 14세가 사망할 무렵엔 프랑스 인구의 3분의 1이 섬유, 패션 산업에 종사했을 정도로 프랑스를 세계 최고의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의 메카로 만듭니다. 나르시시즘적 자만심 끝판왕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루이 14세의 초상화를 통해 17세기 패셔니스타가 유럽의 패션계에 미친 영향력을 살펴봅니다.


빵 터지게 한 작품이 있었는데요.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작품은 낭만적 영웅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게 과장되었지만 전설적인 영웅으로 떠오르죠. 반면 폴 들라르슈의 작품에서는 너무나도 현실적이라 초라함 그 자체입니다. 초인적 영웅 이미지로 프로파간다적 목적을 달성한 다비드의 그림과 인간적인 면모를 통해 오히려 현실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들라르슈의 그림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클레오파트라의 매혹적인 이야기부터 마리 앙투아네트를 괴롭힌 그림들을 포함해 인간의 섹슈얼리티를 부정한 중세 기독교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명화들까지,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윤리와 규범들을 살펴보기도 합니다. 그림으로만 봤는데도 도도함이 풍겨나오는 작품도 만났습니다. 19세기 최강 나르시시스트 올도이니의 초상화와 사진들입니다. 최초의 카메라가 발명된 시대였는데 올도이니의 포즈를 보면 정말 진정한 셀럽이다 싶을 정도입니다.





먹스타그램의 전신이 그림에 이미 있었습니다. 커피, 설탕, 후추 등 음식 문화가 반영된 작품들이 소개됩니다. 르네상스의 요람 피렌체 유력 가문 메디치가의 금수저였던 카트린이 프랑스 식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습니다. 프랑스 왕가와 결혼해 궁정에 들어가게 된 카트린. 어찌나 먹을 것도 없고 매너도 없는지 프랑스 식문화에 충격먹습니다. 결국 카트린이 프랑스 궁정 귀족들에게 식사 에티켓을 소개하고 다양한 음식을 전파했으니, 지금의 프랑스 미식문화 발전에 카트린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겠더라고요.


혐오의 역사가 그림에 고스란히 담기기도 했습니다. 이국적인 사치품으로 취급했던 노예들이 나온 작품, 다모증 인간을 인간 컬렉션 중 하나로 그저 애완동물로 취급한 작품들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저자가 짚어주는 의미를 알고 나니 그림 뒤에 숨은 아픔이 보입니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나타난 근대 사회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도 살펴봅니다. 19세기 파리지앵의 여가 생활, 산업 시대 도시 빈민의 자화상, 스모그에 덮인 런던 등 근대 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통해 우리는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고민과 희망을 가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명화 속에 잠든 역사를 깨우는 시간 <사유하는 미술관>. 역사를 새롭게 알게 되고, 작품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미술과 역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시간 여행하세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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