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치고 잘 뛰네 - 남자들의 세상 속 여자들의 달리기
로런 플레시먼 지음, 이윤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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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선수권 대회 챔피언 이력을 가졌지만 부상으로 올림픽 무대는 서보지 못했던, 미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경력의 장거리 달리기 선수 중 한 명인 로런 플레시먼. 은퇴 후 여성 육상팀 코치와 작가로 활동하며 선수들을 위한 권리를 위해 앞장서고 있습니다.


<여자치고 잘 뛰네>는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시스템 속에서 뛰는 여성 선수들에 대한 차별과 섭식장애 문화를 생생하게 겪은 저자의 고발문이자 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달렸던 저자의 성장기입니다. 여성 스포츠의 현실을 드러내는 강력한 메시지를 만나보세요.


1972년 제정된 미국 교육에서 성차별을 금지한 최초의 법, 타이틀 나인. 그 이전까지 여성 스포츠는 그저 동호회, 학교 내 활동이었을 뿐입니다. 타이틀 나인 덕분에 스포츠에서 여성과 소녀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게 됩니다. 하지만 법과 현실의 간극은 큽니다.


우리 스포츠 시스템은 여성의 재능을 제대로 육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한 로런 플레시먼. <여자치고 잘 뛰네>는 여성 스포츠의 변화에 관한 포괄적 논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낼만합니다.


로런 플레시먼은 중학교 때 체육 시간의 1,600미터 달리기에서 매번 1등할 정도로 달리기 실력이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1등은 남자아이가 차지합니다. 능력의 차이는 재능, 노력,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믿고 있었던 저자는 충격을 받습니다. 이제 남자아이들이 자신을 이기기 시작할 거란 생각에 속이 쓰립니다.


다른 여학생들은 이미 변화하는 몸을 자각하며 운동할 때마다 신경 쓰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춘기 호르몬이 신체적 변화를 일으키는 12세가 되면 남녀 능력 개선 속도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스포츠를 하는 10대 후반 남학생은 10명 중 1명꼴로 그만두지만 여학생은 3명 중 1명꼴로 그만둔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여학생이 스포츠를 그만두는 이유 중 근본적인 요인은 사춘기, 신체적 변화였던 겁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부분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사춘기는 여자애들이 회복할 수 없는 부상이에요." - p65


저자는 사춘기가 늦게 와 본격적으로 육상 스포츠에 진입한 후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신예 스타로 활약합니다. 좌절감을 맛본 경험 없이 승승장구한 케이스입니다. 저자가 극히 드문 예외였다고 인정합니다.


스타 선수들은 이미 섭식장애의 늪에 깊이 빠졌습니다. 신기록을 세운 여자아이가 전액 장학생으로 대학교에 들어간 후 섭식장애로 인해 선수 생활을 그만두는 것을 목격합니다.


여자 선수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잘못된 신념이 있습니다. 몸이 탄탄하다면 점프할 때 흔들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도 그렇게 믿었다고 합니다.




날씬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칼로리를 제한하고 조절하는 엘리트 운동선수다운 생활습관이 내분비계의 호르몬 수치를 바꿔 뼈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근육은 놔두고 지방은 다 빼버리면 결국 골다공증, 섭식장애, 무월경이라는 여자 선수의 삼중고가 찾아옵니다.


저자 역시 뒤늦게 호르몬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즈음부터 우승을 놓치기 시작합니다. 여성의 생물학적 요인에 의한 하락기, 정체기에 대해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남자들은 경쟁에 집중할 시기에 여자들은 에너지의 대부분을 스스로와의 싸움에 쏟게 됩니다.


여자 선수들 사이에서는 마르고 아픈 소녀들이 계속해서 기록을 경신하고, 한두 해 성공했다가 사라지는 게 흔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저자는 섭식장애를 앓지 않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 하지만, 당장은 제 앞길도 가누기 힘든 처지입니다. 영향력을 키워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챔피언이 되고 올림픽 출전 선수가 되어야 했습니다.


이상적인 경기 체중에 대한 잘못된 개념은 결국 피로골절을 자주 겪게 만듭니다. '우연한 부상'을 당할 때마다 원인에 대한 도움을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올림픽 선발전 때마다 피로골절이 그의 발목을 붙잡아버립니다.


올림픽을 제외하곤 미국 챔피언이 되는 등 높은 성과를 보인 덕분에 나이키의 후원을 받아 프로선수가 된 로런 플레시먼. 스스로도 잘 압니다. 그는 백인이고, 마른 체형에, 서구적인 미의 기준에 부합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의 유리함을 그냥 둘 수 없었습니다. 나이키를 이용해 그는 어린 소녀들의 롤모델이 되어 자신이 강인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싶어 했습니다. "순응하고 감사하는 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까다로운 여성으로 낙인찍힐 것 같았다"라며 두려워하면서도 그의 목소리가 반영된 나이키 광고가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여성 선수들은 오롯이 브랜드 후원으로 지탱해나가야했고, 성별 차이는 여전했습니다. 그도 임신 이후 나이키와의 계약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임신은 경력단절 그 자체가 됩니다. 하지만 여성용 의류 회사 와젤과 인연을 맺습니다. 임신한 상태로 후원 계약을 체결한 최초의 여성이 됩니다.


<여자치고 잘 뛰네>는 여성 선수들이 직면하는 도전과 한계 속에서 여성 스포츠의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칩니다. 내부자의 시선으로 드러낸 여성 스포츠 구조의 악순환을 이해하게 되면서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았던 문제들을 새롭게 각성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여성 선수들이 자신의 역량과 잠재력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하며 차별과 편견에 맞서 오랜 세월 싸워오고 있는 로런 플레시먼. 여성 스포츠의 성장과 진보를 촉진하는 메시지를 내보이며 열정적으로 투쟁하는 그의 여정을 응원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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