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거인 (15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
프랑수아 플라스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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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플라스 작가가 1992년 출간 후 한국어판으로 2002년 국내에 소개된 이후 초등 고학년 추천도서로 자리 잡은 그림책 <마지막 거인>. 아이들 독후감용 그림책이기도 하고, 어른을 위한 동화로 입소문 난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이 유명한 그림책이 새 옷을 입었습니다. 한국어판 15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은 디자인, 판형, 내지, 일러스트 색상에 모두 변화를 줬습니다.


그림책이지만 글밥은 제법 있고, 우화 성격이 있어 배경을 파악하지 못하면 단편적으로만 볼 수밖에 없습니다. 최재천 교수님의 추천사와 개정판에 더해진 오소희 작가의 추천사를 함께 읽으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저는 1판 24쇄 2009년 판으로 오랜 세월 소장하고 있던 그림책이라 개정판 출간 소식이 너무나도 반가웠습니다. 제가 이 그림책을 구입했을 당시에도 제가 보려고 샀고, 지금까지도 책장에 꽂혀 있었으니 얼마나 <마지막 거인>을 애정하고 있는지 짐작하시나요.


당시엔 저 표지 색감과 세로 띠지, 어린이책에 쓰이지 않을 법한 글씨체가 독특해 소장했는데, 개정판 표지는 컬러풀한 느낌입니다. 처음엔 살짝 어색했는데 보면 볼수록 작가의 수채화 느낌을 제대로 살리고 있구나 싶어 만족스럽습니다.


내부 글씨체도 변했습니다. 처음엔 <마지막 거인> 특유의 글씨체가 사라졌다는 생각에 섭섭하긴 했지만, 실제로 읽다 보니 개정판에서는 들여쓰기가 되어있고 눈에 익숙한 글씨체여서 오히려 읽을 때 훨씬 편했습니다.


그림에 반해 작가의 이름을 잘 기억해뒀다가 소설 <오르배 섬의 비밀>까지도 읽었습니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읽고 감동받아 여행과 모험을 꿈꾸며 그림책과 지리학에 관심 많았던 프랑수아 플라스는 모험과 탐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펴냈습니다.


<마지막 거인>은 지리학자 루스모어가 뱃사람으로부터 이상한 그림이 조각되어 있는 '거인의 이'를 사게 되면서 대장정의 막을 올립니다.


거인의 이라니. 속는 셈 치고 사서 살펴보는데 이에 미세한 지도가 새겨져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렇게 미지의 땅에 대한 동경을 품은 채 거인족의 나라를 찾기 위해 떠납니다.





하지만 쉽게 찾을 수 있다면 진즉에 누군가가 찾았겠죠. 기나긴 고행의 탐험길이 이어집니다. 강을 거슬러 오르는 사이 선원들과 원정대원들이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원주민으로부터 살육을 당하기도 하면서 결국 루스모어 혼자만 살아남게 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식량으로 간신히 버티며 피로, 추위, 허기 속에서 포기하려던 그때... 드디어 발견한 거인의 발자국과 무덤. 이내 그곳을 열심히 과학적 탐구 자세로 살펴보고 측정하고, 지형도를 작성해나갑니다.


그리고 더 깊고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그곳엔 온몸이 문신투성이인 살아 있는 거인들이 모습을 보입니다. 거인들은 지친 루스모어를 따스하게 돌봐줍니다. 그렇게 기력을 차린 루스모어는 열 달을 그들과 함께 지내며 관찰합니다.


거인들의 피부는 미세한 자연 변화에 반응하며 문신이 새겨지니 일명 말하는 피부를 가진 셈입니다. 루스모어의 모습까지도 새겨질 정도이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야말로 지폐 괴담처럼 추상적인 문양 속에 숨은그림찾기 하듯 발견해 내는 재미를 보여줍니다.


집을 떠난 지 2년이 훌쩍 지나고서야 다시 돌아온 루스모어. 몇 년 후 그는 거인족과 관련된 신화와 전설을 연구한 책을 내놓습니다. 그 책에는 자신이 발견했던 거인족 보고서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은 거인족 이야기로 난리가 납니다. 루스모어는 세계 곳곳으로 강연을 다니며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은 당신의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꽤나 센 충격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마지막 거인>의 이야기가 시작하기 전 작가가 먼저 보여준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라는 문장은 결말을 알고 보면 그제야 이해됩니다.


루스모어는 거인족의 나라를 찾기 위한 탐험을 떠날 때 영국에서 동인도 회사의 오래된 무역선을 타고 인도 콜카타에 도착합니다. 인도의 후추, 계피 등을 싣기 위한 배였습니다.


<마지막 거인>은 열등한 나라를 교화하겠다며 침략을 일삼고, 야만인이라 불러댄 원주민들보다 더 야만적 행태를 보인 19세기 유럽 제국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제국주의 시대는 국가적 단위로 욕심을 부린 결과로 나타난 모습이지만, 그 바탕에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더불어 인간의 발길에서 간신히 피해있던 아름다운 거인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연과도 동일합니다. 그래서 최재천 교수님은 나만 알고 싶은, 위치가 드러나면 사람들이 몰려와 황폐화시킬 게 뻔하기에 숨겨야 할 자연에 대한 이야기로 추천사를 써 내려갔습니다.


역사적으로 모험과 탐험 정신이라는 허울 아래 우리는 무엇을 파괴해 왔는지, 우월주의를 장착한 채 인종차별을 하고, 전쟁과 기후 위기로 시달리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지구를 함부로 대하고 있습니다.


쉽고 끈질기게 인간의 욕심이 발동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마지막 거인>. 평화롭게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간 거인들의 삶과 욕심을 부리는 인간의 삶을 대비해서 보여주며 인간의 치부를 고발합니다. 다양한 생각을 나눌 수 있게 촉발하는 의미 깊은 책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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