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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엔 중요한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
스기모토 다쓰히코 외 지음, 고시이 다카시 그림, 노경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3월
평점 :
동굴을 벗어난 인류가 집을 짓기 시작한 이래로 인류사는 언제는 건축물이 함께 합니다. <역사 속엔 중요한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인도 문명, 중국 문명까지 고대 문명 발상지를 중심으로 인류와 역사와 건축물의 관계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전작 <세상엔 알고 싶은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번에도 흥미진진한 건축물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지금의 도시는 시대의 요청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해 왔습니다. 자연환경에 좌우되기도 하고, 기술 발달에 의한 건축 형식이 진화하고, 사람들의 사상이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이 책은 자연, 인간, 건축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끼쳤는지 역사 속 건축물을 통해 살펴봅니다. 다룬 문명이 주로 아시아권이어서 더 가깝게 다가옵니다. 건축물에 담긴 배경을 알고 나면 여행 중 만나게 될 건축물들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인류 최초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살펴봅니다. 자연환경이 윤택했기에 새로운 문화 창조의 발상지 그 자체입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세계 문명을 압도적으로 이끕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제사 시설인 괴베클리 테페 유적은 수렵·채집 사회에서 생산과 직접 관련이 없는 건물을 지었다는 것 때문에 놀라운 건축물입니다. 생활이 풍요로워질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지었을 겁니다. 상상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은 인지혁명을 이뤄낸 인류의 특징입니다.
세계사 최초의 도시와 문명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지 수메르인이 지은 도시 우루크를 살펴보며 배울 수 있습니다. 농경, 유목, 상업 사회가 합쳐지는 지점에서 탄생했기에 문자도 발명되고, 사람들을 통합하기 위해 사상을 공유합니다. 그와 동시에 격차, 전염병, 전쟁 등의 부작용도 생깁니다.
그런데 최초의 도시와 문명을 낳은 메소포타미아는 자연환경이 생각보다 꽤 가혹했다고 합니다. 범람 등 생존을 위협하는 자연재해가 늘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나가면서 도시와 문명을 발달시킬 수 있었는지 그들의 건축물을 바탕으로 살펴봅니다.
수렵·채집을 생업으로 삼은 인류는 환경에 맞춰 식량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며 생활했습니다. 그때그때 이동하며 생활하는 이동형 주택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착형으로 바뀌며 대충 임시로 설치한 집의 형태가 크게 달라집니다.
자연과 환경에 따라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 전략은 흥미롭습니다. 에스키모는 그 추운 북쪽 땅에서마저도 정착해냅니다. 인류 주거의 형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는 주거의 기능이 아니라 '구할 수 있는 소재'였다고 합니다.
혹한의 북극은 나무, 돌, 흙을 구하기 힘듭니다. 그렇게 이글루가 탄생합니다. 눈 벽돌을 성형하고 쌓아 올린 이글루 기술력도 놀랍지만, 내부는 섭씨 20도 이상도 유지된다고 하니 더 놀랍습니다. 그 온도에 녹지 않도록 내부엔 가죽을 두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대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 인류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인도는 다양한 기후 풍토와 지리적 특성이 장벽이 되어 지역마다 다채로운 언어와 풍속이 생겨납니다. 다양성 그 자체인 곳이죠. 공용어만 22종에 전체 언어가 수백 종이 넘습니다. 그만큼 인도는 아시아 다른 곳과 비교해도 전혀 다른 독특한 세계관을 지닌 곳입니다.
브라만교,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등 인도 세계의 사상은 역사적으로 계속 변화해왔습니다. 동남아시아와 한중일로 전해졌지만 정작 인도에서는 불교가 쇠퇴했고 이제는 힌두교가 대세입니다. 이처럼 다양성을 그대로 끌어안은 인도 세계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건축물들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초기 인도 세계의 물과 종교의 관계성을 엿볼 수 있는 모헨조다로 유적, 강력한 왕권을 자랑한 아소카왕 시대에 만든 스투파(부처의 묘이자 사당을 뜻함), 크메르 건축 기술이 반영된 최고 걸작 앙코르 와트 등이 소개됩니다.
현대 건축물도 있습니다. 스리랑카 천재 건축가 제프리 바와의 해리턴스 칸달라마 리조트는 바위를 피해 건물을 짓지 않고 일부러 복도 한가운데에 큰 바위가 드러나도록 할 만큼 자연에 녹아든 건물입니다.
중국 건축의 현상과 원리를 역사와 함께 살펴봅니다. 농경 세계와 유목 세계의 접점 지역인 황하 유역의 중원에서 시작된 중국 문명도 참 다사다난합니다. 몽골 제국은 유라시아를 석권하며 세계 제국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이후 아편 전쟁을 겪으며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중국을 이해하려면 일관성 있게 유지한 중화사상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건축도 중화사상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중화사상은 자신들을 문명의 중심인 화(華)로 이해하고 풍속과 문화가 다른 타자를 오랑캐(夷)로 배제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은나라 왕비의 무덤 은허 부호 묘에서는 중화사상으로 발전하는 중국인이 모범으로 삼을 만한 문명을 엿볼 수 있고, 시대가 흘러도 변함없는 예법 건축의 원리는 자금성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국 건축가가 풍수를 따져 지은 홍콩상하이은행 홍콩 본점 빌딩 스토리도 재밌습니다. 진 시대에 기록된 풍수의 경전 <장서>의 이야기와 함께 생활 관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 풍수가 어떻게 건축물에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줍니다.
건축의 즐거움을 역사와 함께 풀어나간 <역사 속엔 중요한 건축물이 너무도 많아>. 자연, 인간, 건축의 긴밀한 연계가 돋보이는 건축물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보세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