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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배진시 지음 / 책과나무 / 2023년 8월
평점 :
프랑스어권 입양인 통역 봉사활동을 하는 배진시 작가. <똘레랑스 독서토론>으로 알게 된 작가인데 이렇게 의미 깊은 활동을 함께 하고 계셨더라고요.
해외 입양인들의 실화를 소설화한 책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입양인을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뜻밖의 이야기에 깜짝 놀라게 될 겁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8명의 해외 입양인들은 생후 3개월부터 열두 살까지 다양한 연령대에서 70~80년대 입양을 갔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한국을 찾아온 이들입니다.
이들의 어린 시절은 정체성 혼란, 공허함, 심리적 갈등, 학대 등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여전히 혼란 속에서 정체성 찾기가 현재진행형인 사람도 있습니다.
80년대 일곱 살의 나이로 동생과 함께 한국을 떠나 2010년 한국으로 돌아와 엄마를 만난 뤽. 말도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프랑스 학교를 다닐 때 그곳을 "외계인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지독한 우울증에 걸린 폭군이었고 매일을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어린 동생은 적응을 잘했다고 하지만 글쎄요. 그 어린아이가 생존을 위해 그랬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집니다.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았던 뤽은 한국에 와서도 재혼을 한 엄마의 외면으로 이방인이 됩니다. 한편 입양은 했지만 사랑으로 키우지 못한 양엄마 때문에 사춘기 시절 자살 시도를 했던 꺄린의 사연도 인상 깊습니다.
간호사가 되었고 엄마가 된 꺄린. 키울 형편이 되지 않아 자신을 버린 친엄마, 정이 없다는 이유로 사랑을 주지 않은 양엄마 사이에서 꺄린은 스스로 '누군가를 버리는 부도덕한 어른으로 성장할까' 두려워집니다.
그래서 한국 엄마를 찾기로 결심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스스로의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자신도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만난 엄마의 사연을 알게 된 후 꺄린은 상처를 이겨낼 힘을 얻으며 홀로서기에 나섭니다.
한국에서 부모를 찾은 이들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는 태도가 있었습니다. 슬픔을 잊어버린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는 애씀이 자리 잡고 있다는걸요.
그리고 여전히 한국이 아직도 애 키우기 힘든 나라인지 의아해합니다. 배곯던 시절 아이라도 살리고 싶어 입양을 보냈다는 친부모의 사연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밥만 먹으면 차별과 학대를 받아도 상관없다는 식의 발상으로만 여겨집니다.
프랑스는 미혼모가 아이를 혼자서도 잘 키울 수 있도록 지원이 이뤄집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토록 발전했다면서 왜 아직도 이런지 궁금해하는 입양인들입니다.
해외 입양 동포 모국 방문 행사가 있을 때면 입양인들에게 민간사절 역할을 한다는 식의 입바른 말을 하는 것도 황당해합니다. 한국은 입양을 보낸 아이들의 그 이후를 전혀 살펴보지 않습니다. 성장과정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입양인들의 사연을 통해 갈 곳 없이 버려진 아이들의 입양을 마치 유학, 이민처럼 여기는 한국 입양 시스템을 꼬집습니다. 해외 입양 신화를 깨뜨려야 합니다.
입양인 미자의 사례는 경악스럽습니다. "저는 김미자입니다. 나이는 11살. 양산초등학교 4학년 2반 8번. 3월 18일에 태어났어요. 아빠는 김동길."
하지만 주소를 몰랐던 미자 씨. 파출소에서 고아원에 하룻밤 재운 뒤 알아보겠다더니 소식이 끊겼고, 단지 길을 잃었을 뿐인데 고아원은 이 아이를 입양 보냅니다.
소아과 의사가 된 입양인 마리옹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건강검진을 받으며 가족력을 묻는 질문에 뿌리가 없다는 수치심이 들었다고 말이죠. 게다가 입양인들은 항상 부모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존재로 매김된다고 합니다. 버려진 아이를 데려왔으니까요.
어린 시절 친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양부모로부터도 고통받은 입양인 끌로에는 그럼에도 한국에 대해 "생존을 위하여 언어와 문화는 다 잊었는데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좋은 양부모 밑에서 잘 자란 해외 입양인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체성 혼란과 상실감은 없었던 일이 되는 게 아닙니다.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한국을 찾은 8명의 해외 입양인들과 연결된 통역사 다정이는 배진시 작가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입양인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국말인데도 그 감정의 결이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제가 평소 흔하게 느끼는 감정의 단어가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해외 입양인들의 내적 공허함을 잘 보여준 다큐 소설 <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함께 읽어보세요. 이방인으로 생존한 입양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만나는 특별한 시간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