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 하버드대 마틴 푸크너의 인류 문화 오디세이
마틴 푸크너 지음, 허진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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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문화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나요? 전통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한 공동체의 자산으로 외부의 간섭에서 지켜내야 하는 문화인가요? 아니면 다른 문화와의 만남에 의해 만들어지며 소유할 수 있는 문화인가요?


수천 년의 인류 문화 역사를 조망하는 책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원제 Culture: The Story of Us>. 하버드대 교수 마틴 푸크너가 인류의 기념비적인 15가지 장면들을 담았습니다.


문화를 이야기할 때 케이팝은 이제 기본값입니다. 문화사가 순환과 혼합을 향하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좋은 사례로 케이팝 이야기도 등장하니 한국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책입니다.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는 오랜 세월 예술, 인문학적 지식을 생산하고 보존하고 변화시키고 다음 세대로 전파하는 문화를 살펴봅니다. 문화를 만드는 인간의 역사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 시작은 쇼베동굴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곳은 인간이 의미를 만드는 장소였습니다. 산사태를 반복하며 몇천 년만에 입구가 드러나자 새로운 선조들이 방문해 이용합니다.


또다시 산사태가 일어나 약 2만 8000년 동안 동굴이 봉쇄되었고, 1994년 장-마리 쇼베가 이끄는 탐험가들이 발견할 때까지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이 사례는 문화 전파가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다고 합니다. 외부의 힘에 의해 지식은 사라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그저 흔적을 엿볼 뿐입니다.


문화는 어떻게 살아남을까요? 유물 발굴사를 보면 버려진 도시는 오히려 약탈에 살아남았고, 지속적인 사용은 놀라울 만큼 파괴적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문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그 과정에서 문화는 상호작용한다는 걸 엿볼 수 있습니다. 교역, 여행, 전쟁, 침략에 의해 뒤섞이기도 하고 단절되기도 합니다.


새로운 세대가 문화적 번영을 지켜나가도록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전할 때 문화는 살아남습니다. 플라톤이 아카데미아를 세웠기에 그 시대의 지식이 전파될 수 있었듯 말이죠. 


저자는 문자 기반 문화의 과대평가를 경계합니다. 석재를 사용함으로써 후대에까지 전해진 인도 아소카 왕의 석조 기둥. 하지만 정복과 점령의 역사를 거치며 석조 기둥에 새긴 문자를 이후 세대는 해독하지 못했습니다.


잊혔던 문화 유적을 발견하면 우리는 복원하려 합니다. 다행히 19세기 브라만 문자 해독에는 성공했지만, 문화의 저장에만 의지하지 말라는 의미를 새기게 됩니다.


아소카왕은 불교 수출을 노력했지만 결국 인도 불교는 쇠퇴했고, 흥미롭게도 동아시아에서 번성합니다. 바로 승려 현장의 인도 여행 후 남긴 <대당서역기> 덕분입니다. 인도 불교를 가져온 현장의 이야기는 문화 수입과 이동의 사례로 손꼽습니다.


우리는 문화를 평가할 때 언제 어디서 처음 발명되었는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무언가가 본래 어디서 나왔는지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라고 합니다. 문화는 거대한 재활용 프로젝트라고 말이죠.


"문화에 소유자는 없다. 우리는 다만 다음 세대에 문화를 물려줄 뿐이다." - p168





문화 차용의 영향력은 에티오피아 역사서 <케브라 나가스트>로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의 직계 후손이 에티오피아의 왕이 되면서 예루살렘에서 훔친 궤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흥미진진합니다. 그동안 저평가되어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훔친 궤를 토대로 유대 왕조의 직계 후손임을 선언하며 에티오피아와 유대 왕조를 연결 짓습니다. 그런데 이 궤를 활용한 전략은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이 아닌 에티오피아 기독교였습니다. 차용자는 연속성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그들이 차용한 문화에 등을 돌리며 독립성을 증명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에 매료된 자메이카에서 라스 타파리 왕의 이름을 딴 라스타파리안 운동이 생겼고, <케브라 나가스트>는 자메이카에서 또 다른 삶을 누리게 됩니다. 이후 블랙팬서 등 다양한 문화적, 정치적 독립 운동에 영감을 줍니다. 라스타파리안 운동은 문화 전이와 융합을 가장 잘 드러내는 예시라고 합니다.


미래도서관(Future Library) 프로젝트를 아시나요? 스코틀랜드 예술가 케이티 패터슨에 의해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매년 작가 한 명이 작품을 쓴 다음 제목을 제외한 모든 것을 비밀에 부쳐 노르웨이 오슬로 공공 도서관에 보관되다가 100년 후인 2114년에 공개하는 겁니다. 첫 번째 작가는 마거릿 애트우드였습니다. 아시아 최초로는 한강 작가가 선정되었습니다.


미래도서관 프로젝트는 봉인이라는 방식으로 문화와 가치를 전달하는 독특한 방법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미래에도 '도서관'이 존재할까?, 노르웨이라는 나라가 존재할까?와 같은 걱정 몇 가지가 떠오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노르웨이에 가지 못한 작가 때부터 일시적 보류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처럼 장기 지속을 약속한 프로젝트마저 문화 보존이 예측불가능한 일로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줍니다. 보존, 상실, 파괴, 복구의 문화사를 보여주는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문화적 다양성의 중요성과 즐거움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조상들이 만들어준 귀중한 문화를 잘 간직해야 한다는 사명을 전하는 책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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