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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쇼핑, 나는 병원에 간다 - 의사, 환자, 가족이 병을 만드는 사회
최연호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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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울병원 소아소화기영양 분야 교수 최연호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들려주는 병원 쇼핑에서 벗어나는 법 <의료쇼핑, 나는 병원에 간다>.
이 책은 의사도 언젠가 환자가 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알고, 환자 입장에서 어떤 진료 행위를 해야 올바른지 고민하는 저자의 휴머니즘 의료를 바탕으로 합니다.
우리는 편해지려고 병원에 갑니다. 하지만 병원은 여전히 불편합니다. 박재영 의사가 쓴 『개념의료』에서 의료 시스템 문제점을 잘 짚어주고 있는데, 저자는 개념의료가 지적한 시스템 개선과 함께 필요한 휴머니즘 의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휴머니즘 의료란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의료 체계에서 거짓이 없고 통찰이 보이는 의료라고 합니다. 환자가 수단이 되지 않고 의사도 도구로 이용되지 않아야 합니다. 환자와 의사 모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의료를 말합니다.
<의료쇼핑, 나는 병원에 간다>는 사람 이야기를 통해 휴머니즘 의료 개념과 사례를 보여줍니다. 환자와 의사 입장을 모두 다룹니다. 왜 병원에 가면 불편한지, 불편함의 실체를 보여줍니다.
저자는 면역 체계 이상으로 발생하는 난치성 희귀질환에 속하는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을 진료합니다. 만성이고 난치성 질환을 앓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도 성인 내과로 일괄적으로 보내지 않고 전문적으로 추적 관찰하며 지속적인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검사에 의해 확진되는 질병이 아니라 마음이 불편해지는 병들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환자 혹은 환자 가족이 만들어내거나 오진한 병들입니다. 어린 환자와 가족을 같이 봐야 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이기에 그가 들려주는 사례들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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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복통의 원인을 변비라고 진단해 변비 치료를 받다가 온 소아환자가 참 많다고 합니다. 보호자와 의사의 흔한 실수는 아이가 가진 불안감에 대해 그 원인을 고려하지 않고 증상에만 매달려 검사하고 약물 치료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진료 시간 부족, 질병 지향적인 진단 및 치료 같은 의료 시스템적 문제뿐만 아니라 그 기반에는 두려움이라는 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손실을 보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대비하는 겁니다. 바로 스스로를 위해서 말이죠.
특히 의료진, 환자, 가족 각각은 모두 옳았지만 결과는 옳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 경우를 이야기합니다. 의원병과 가족원병을 구분해 이야기합니다.
의료가 근원이 된 의원병은 의료 행위가 몸을 아프게 만드는 것입니다. 올바른 의료 행위를 했음에도 실상 피해 보는 환자 사례를 짚어줍니다.
예민한 가족 구성원에 의한 가족원병도 있습니다. 순수한 마음에 어설픈 개입을 하기도 하고, 가스라이팅이나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 같은 의도적인 가족원병도 있다고 합니다.
가족과 의사 모두가 아이 질병에 관여하는 의가족원병. 소아 변비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합니다. 부모와 의사가 만드는 병 아닌 병입니다. 결론적으로 소아 변비는 병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오류를 막기 위해선 아이의 입장이 되어보자고 합니다.
의사도 자신이나 가족에게 처방하기 주저하는 스테로이드. 일단 환자가 좋아지기 때문에 의사는 스테로이드를 선호합니다. 의사 입장에서 왜 그렇게 쉽게 처방할 수밖에 없게 됐는지 그 연결고리를 들여다보면 결국 의사, 환자, 가족 모두가 얽혀 있습니다.
현실에서 약을 안 쓰는 진료를 하면 버럭대거나 병원쇼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할 겁니다. 블랙 컨슈머처럼 환자도 블랙 페이션츠가 있습니다.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그레이 페이션츠도 있습니다. 의료진이 참고 있으면 드러나지 않는 경우입니다.
그레이 페이션츠는 자기 손해에 매우 예민하고, 병원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 하고, 비용 대비 효율성으로만 따집니다. 이들은 의료 소비자가 아닌 의료 낭비자들입니다. 반면 실제 범법 행위는 아니지만 반복적으로 환자와 동료 의료진에게 해를 끼치는 그레이 닥터도 있습니다.
의대 증가 이슈로 소란스러운 요즘, 의사 직업의식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끕니다. 그저 전문직의 꿈, 존경받는 직업, 경제적 풍족이 보장된다는 이유로 의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걸 일깨웁니다. 의사로서의 소명 의식이 있는지, 의사는 마음 깊은 곳에 휴머니즘을 기본으로 다져놓고 있어야 한다는 걸 짚어줍니다.
서로를 믿지 못하며 방어 진료를 하고 과잉 진료를 하고 병원 쇼핑을 다니는 현 실태를 낱낱이 보여준 <의료쇼핑, 나는 병원에 간다>. 의료의 불편한 진실에 자리하는 인간의 두려움을 직시하고 휴머니즘 의료에 기반할 때 의사, 환자, 가족이 만드는 병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의미 깊은 책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