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근대사 왜곡은 언제 시작되는가 - 한일 근대사 속살 이야기
박경민 지음 / 밥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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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저자의 <한일 근대 인물 기행>을 인상 깊게 읽은 터라 신간 <일본의 근대사 왜곡은 언제 시작되는가>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전작에서는 핵심 인물들의 활약상을 통해 한일 근대사를 훑었다면, 이번에는 특별한 역사적 사건 두 가지에 초점 맞춥니다.


일본에 의한 강제 개항과 경복궁 점령입니다. 불평등 조약이라며 시험에도 자주 나와 낯설지 않은 강화도조약이지만 그 과정은 사실 세밀하게 알진 못했습니다. 이 책에서 강화도 조약으로 귀결되는 강제 개항 과정을 세세히 짚어줍니다.


그리고 이런 사건이 있었던가 갸웃할 수도 있는 경복궁 점령 사건도 있습니다. 동학농민운동 기간 중 벌어진 사건입니다. 역사학계는 그동안 일본의 거짓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조직적으로 은폐, 축소했던 역사가 이 시기에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는 걸 이 책에서 낱낱이 밝힙니다.


일본의 에도막부가 끝나고 메이지 천황의 친정이 시작되며 메이지 신정부는 새로운 외교관계 수립에 박차를 가합니다. 천황이 주체가 되어 근대적 외교로 탈바꿈합니다.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따르고 있던 상황이라 국서를 접수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일본에서는 조선과 전쟁을 벌이자는 정한론이 거세집니다. 하지만 메이지 6년의 정변으로 불리는 일본 정치사 대변혁으로 정한론은 어영부영 되어버렸고, 대신 대만을 침공하며 갈증을 해소합니다. 대만 침공으로 이어진 배경 역시 참 스펙터클하더군요. 당시 중국의 속국인 류큐왕국(현 오키나와현)을 일본 영토로 편입시키며 류큐왕국과 대만과의 다툼을 일본과 청의 싸움으로 만들어버린 겁니다.


이쯤에서 조선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실각하고 고종이 친정을 개시합니다. 일본은 조선과의 관계를 재설정할 기회를 얻습니다. 개항의 계기를 만든 운요호 사건도 일본이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했던 사건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무력으로 영종성을 함락시켰는데도 조선 조정에서 오간 대화를 보면 한숨만 나올 지경입니다.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버젓이 나와 있는데 얼빠질 정도로 한심한 대화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조선 최초의 근대조약이라는 강화도조약이 1876년 체결됩니다.


1894년은 한국사 타임라인에서 꽤 많은 사건이 등장하는 해입니다.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청일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의 주목을 받지 못한 사건이 하나 더 있음을 짚어줍니다. 1894년 7월 28일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사건입니다.


<일본의 근대사 왜곡은 언제 시작되는가>에서는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주장을 뒤엎는 증거들을 하나하나 밝힙니다.





눈앞의 편한 길만 찾는데 익숙한 고종은 부정부패, 매관매직, 삼정의 문란과 탐관오리들의 수탈이 극심해 농민들이 들고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을 청군을 차병해서라도 토벌하고 싶어 했습니다. 문제는 청을 불러들이니 일본이 가만있을 리가 없지요.


청은 조선 정부의 요청으로 속방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일본은 제물포조약에 의해 공관과 거류민 보호 명목으로 조선에 군을 집결시킵니다.


하지만 일본의 기록을 보면 일본군 파병 목적은 어느새 바뀌어 있습니다. 반란을 신속히 진압시키고, 반란 평정 뒤 조선 내정 개혁을 위한 청과의 협상이 잘 안되면 일본 단독으로 정치개혁을 실시토록 하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어떠한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군대를 경성에 주둔시켜 두라고 합니다.


저자는 당시 『주한일본공사관기록』을 통해 일본이 얼마나 이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는지 짚어줍니다. 무려 경복궁 포위 계획이 기술된 기록까지도 있었습니다.


물론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언제나 부인입니다. 조선 병사와의 우발적 충돌로 시작되어 어쩔 수 없이 응전하다 왕궁에 들어가 국왕을 보호까지 하게 되었다는 식입니다. 이후의 역사는 친일내각에 의한 갑오개혁이 시작되었고, 청일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조선은 외부세계와 연결해 주던 전신마저 단절됩니다.


국제적 눈초리를 의식한 일본 정부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까지는 국제법을 잘 지켰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정서를 가졌다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진실은 드러나지 않았던 기록에 있었고,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사건이 한일 근대사 역사 왜곡의 시발점인 겁니다.


한일 근대외교의 민낯을 보여주는 <일본의 근대사 왜곡은 언제 시작되는가>. 일본의 침략 야욕이 훨씬 전부터 노골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정이 얼마나 무능했으면 일본이 저토록 뻔뻔하게 굴었을까 치가 떨립니다. 분명 결과를 알고 읽는데도, 긴장감을 몸에 두른 채 읽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소설 읽는 것처럼 흡인력 좋은 전개 방식 덕분이기도 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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