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에게 남은 시간 -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는 시대, 인류세를 사는 사람들
최평순 지음 / 해나무 / 2023년 12월
평점 :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 각자의 인생에 남은 시간, 인류에게 남은 시간." - 책 속에서
〈인류세〉, 〈여섯 번째 대멸종〉 등 다수의 환경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환경 다큐멘터리 PD 최평순의 <우리에게 남은 시간>.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인류세는 인류의 활동으로 생겨난 지질시대를 뜻합니다. 노벨 화학상을 받은 파울 크뤼천이 2000년에 주장한 이후 이 용어가 확산했습니다. 지금 신생대 제4기 홀로세가 공인되기까지 50년이 걸렸다는데, 인류세는 언제쯤 공인받을지 궁금합니다.
인간에 의한 지구 시스템의 변화를 드러내는 인류세. 기후위기, 코로나19, 플라스틱 쓰레기 범람 등 인류세 현상은 뚜렷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살고 있음을 꼬집습니다.
'기후 변화'라는 단어가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북극곰이나 코알라가 떠오르나요? 동물과 관련한 환경문제로 인식하기 쉽습니다. 기후 변화라는 단어 앞에서 우리는 '생존'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야 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위기를 위기로 느끼고 있지 않은 겁니다.
2014년 방영된 <하나뿐인 지구 - 기후 변화 특집 히말라야 대재앙 빙하 쓰나미>에서 경고했던 위험이 2021년에 200여 명의 사상자를 낳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작은 국토를 가진 투발루는 9개의 섬 중 2개가 물에 잠겼습니다. 투발루 외무장관의 수중 연설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마존 밀림 화재, 호주 화재 등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은 일상적일 정도로 가까이 왔습니다. 2022년 유럽 폭염으로 6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후 위기를 실감하지 못합니다. 역대급 폭염일 땐 에어컨을 틀면 되니까요. 탄소배출? 에어컨 틀 땐 생각나지 않습니다. 미디어에서도 정작 위기의 본질을 다루는 기사는 없습니다. 써봤자 클릭률도 낮다고 합니다. 기후 위기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그야말로 무관심 그자체입니다.
최평순 PD가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하던 시기에 만든 <텀블러 라이프>라는 25분짜리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일회용 종이컵을 자주 쓰던 그가 텀블러를 사용하면서 겪은 귀찮음을 텀블러를 잘 쓰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이겨내는지 호기심에 만든 영상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계기로 환경 PD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여섯 번째 대멸종>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3년 동안 대멸종 문제를 집중 취재합니다. 대멸종은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 진행중인 사건입니다. 특히 바다는 지구에서 가장 착취를 많이 당한다고 합니다. 멀리 가지 않고 대한민국 바다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슈화가 되지 않아서 우리는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점점점점점점'에는 기괴한 형상의 New Rock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장한나 작가가 우리나라 바닷가에서 채집한 자연화된 플라스틱 돌입니다.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이 돌덩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인류세의 증거입니다.
도시 구조물에 부딪혀 죽는 새는 하루 2만여 마리. 그런데 그렇게 죽은 새들을 본 경험은 흔치 않을 겁니다. 까치나 고양이 등 다른 동물이 먹어 치우고 환경 미화원이 치우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루 2만여 개가 붉은 흔적을 남기는 토마토와 유리창을 깨뜨리는 돌멩이였다면 단번에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을 텐데 말입니다.
'활생'이라는 단어 아시나요? 저도 낯설긴 했는데 이번 기회에 그 개념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활생은 다시 자연의 힘에 기대는 것입니다. 영국의 동물학자 조지 몽비오가 쓴 feral 책을 김산하 박사가 활생으로 번역해 국내에 소개했습니다.
자연 스스로가 잠재적으로 가진 치유력을 발휘하고 생명 다양성을 회복하는 겁니다. 옐로스톤의 늑대 복원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우리나라는 야생에 얼마나 호의적일까요? 사람 살 땅도 부족한데 무슨 야생동물이냐는 생각이 만연한 우리의 태도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기후 위기는 회피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후 위기 대응책은 어떠한가요? 착한 소비자가 되라고 요구할 뿐입니다. 관심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기후 위기에 꾸준한 관심을 보입니다.
저자는 인류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태도를 짚어줍니다. 돌봄의 전략을 행한다는 개념도 흥미로웠습니다. 숲을 돌보고, 가축을 돌보고, 야생동물을 돌본다. 돌본다는 표현은 '숲은 이용하고, 가축은 잡아먹고, 야생동물은 밀어낸다'라는 문장과 정반대입니다.
개인의 무해한 삶의 태도, 과학기술, 사회 전체적인 돌봄 전략이 함께 진행될 때 지구 위기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될 거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지구의 위기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던 최평순 작가의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감수성이 변화하고, 기후 위기를 외면하지 않는 사회적 움직임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바람이 느껴집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