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신의학사의 위대한 진실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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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면역 뇌염이 조현병으로 오진되어 정신병원 강제 수감까지 했었던, 오진의 희생자 수재나 개헐런 저자. 오진 경험을 주제로 쓴 회고록 『브레인 온 파이어』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클로이 머레츠가 연기한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될 만큼 화제를 모았습니다.


삶을 뒤흔드는 20대에 겪은 충격적인 경험은 자연스럽게 '로젠한 실험'에 가 닿았습니다. 로젠한 실험은 1960년대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이 실시한 실험입니다. 정신질환자와 일반인을 구분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게 목적이었던 이 실험은 정신의학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동시에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된 실험입니다.


로젠한은 의사와 의료진이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을 구별할 수 있는지 직접 알아보고자 건강한 여덟 명의 남녀를 정신병동에 입원시킵니다. 첫 번째 환자는 데이비드 루리라는 가명으로 입원했던 로젠한 본인이었습니다.


책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는 오진으로 정신질환자가 되었던 저자의 사연이 정신질환 진단 기준의 허점을 내보인 로젠한 실험과 교차하며 펼쳐집니다.


우리가 정신질환자를 대한 역사를 살펴보면 처참합니다. 인권이란 없습니다. 치료법이랍시고 행해진 행동들은 잔혹했습니다. 그들은 인간에게서 버려졌습니다. 그보다 앞선 문제는 정신이상과 온전한 정신의 경계가 덜 과학적이고 덜 정량적인 상태로 진단이 이뤄졌었다는 겁니다.


1887년 악명 높은 보호수용소 중 하나였던 블랙웰섬으로 잠입 취재한 넬리 블라이는 편집자가 아니었더라면 얼마나 오래 섬에 갇혀 있었을지 모릅니다. 넬리 블라이 사건 이후 한 세기가 지난 후, 1969년 로젠한 실험에 이르기까지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그리고 현대판 가짜 환자가 되어버린 저자처럼 오늘날에도 정신보건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합니다.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는 지뢰밭으로 가득한 정신의학 세계를 파헤치려 한 로젠한 실험의 뒷이야기를 추적합니다.


그 여정에서 로젠한의 실제 진료 기록, 가짜 환자 연구에 참여한 사람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로젠한 실험의 의미와 파장, 알려지지 않은 이면을 끄집어냅니다.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


역사적으로 정신병원은 치료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멀쩡한 이들이 감금되기 일쑤였습니다. 가짜 환자들을 병원에 들여보내기 전에 로젠한이 테스트 겸 먼저 들어가 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입원 판정을 받는 접수면접에서 로젠한은 조현정동장애 유형의 조현병 진단을 가뿐하게 받아냅니다.





정신보건 시스템이 그를 정신질환자로 간주한 순간 더 이상은 기본적인 인간의 품위를 누릴 자격은 사라지는 듯했다고 합니다. 광기의 판정이 그가 정상이라고 행동하는 것조차 가려버립니다. 콘택트렌즈를 끼고 있어 바로 앞에서 초점을 맞추지 못했을 때도 위축, 박해 망상 등 부정적인 묘사가 뒤따릅니다.


하루 만에 로젠한은 "온전한 정신과 경험에도, 이곳 상황에 대해 남들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음에도, 나는 넋이 나가 무기력했다."라고 고백합니다. 한마디로 그곳에서 '얼어붙은'겁니다. 당시 그가 쓴 공책에는 '무기력하다'라는 단어가 자주 보입니다. 그리고 그의 기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절박한 어투로 바뀝니다.


아무리 정당한 분노라도 그곳에서는 정신적 장애로 여겨지기에 자제해야 했습니다. 의료진에게 먹힐 만한 서사로 설득하기 시작했고, 결국 퇴원할 수 있게 됩니다. 그곳에서의 경험 이후 주변 사람들은 로젠한의 분위기가 어두워졌고 더 내성적인 사람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정상적인 세계가 이 문제에 주목하도록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로젠한은 깨닫습니다. 그러려면 더 견고하고 정량적인 과학적인 증거를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로젠한 실험이 탄생합니다.


정신의학계를 먹여 살리던 진단이 잘못되었다면 또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여겼던 당시 정신의학계 논쟁처럼 로젠한 실험은 정신질환이란 무엇인지 그 본질을 탐구하게 합니다.


더불어 저자는 로젠한 실험을 추적하면서 든 의문을 하나씩 들여다봅니다. 로젠한을 입원시킨 의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도 합니다. 논지와 어긋난 결과를 보여 로젠한의 실험 결과에서 누락시킨 사례도 있었습니다. 의혹은 남아있습니다.


그럼에도 로젠한 실험이 역설적 쓸모의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정신질환 진단에 있어 신뢰성, 타당성 문제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미국 정신보건 시스템을 좌지우지하며 전 세계 정신의학자들이 진단을 내릴 때 참고하는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수차례 개정되었으며 현재 DSM-5)을 작업할 때마다 로젠한의 연구를 떠올립니다.


로젠한 실험은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위기에 처한 정신의학 분야를 본의 아니게 구하는 구실로 활용된 셈입니다. 하지만 편람을 토대로 한 진단은 근본 원인을 모르는 두통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여전히 오진이 나옵니다.


현대에 새롭게 정신질환으로 분류되거나 사라진 사회적 질병처럼 우리는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해석을 내립니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일까요?


로젠한 실험은 정신질환 진단의 신뢰성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인식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저자가 겪은 것처럼요.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는 정신의학 역사부터 인간 로젠한과 정신의학의 본질적 한계를 보여준 실험을 들여다보며 정신의학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고민을 펼쳐 보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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