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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의 마법사
줄리아노 다 엠폴리 지음, 성귀수 옮김 / 책세상 / 2023년 8월
평점 :
현실에서 우리는 한 편의 정치 드라마라는 비유를 쓰곤 하지만 이 책은 끝판왕 격입니다. 푸틴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러시아 정치사에 등장했고 지금에 이르렀는지, 그 기나긴 '연출'의 대서사를 만나는 시간 <크렘린의 마법사>. 2022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했고, 공쿠르상 최종 후보에 오른 소설입니다.
러시아 역사에 등장한 실제 인물과 사건들이 그대로 등장하는데다가 정치 고문직 출신의 저널리스트 줄리아노 다 엠폴리 작가의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절묘한 스토리텔링이 압권입니다.
크렘린의 마법사라 불린 바딤 바라노프. 소문만 무성한 수수께끼로 둘러싸인 인생을 헤쳐 온 그의 집으로 방문하게 된 '나'. 트윗으로 알게 되어 둘이 직접 만나게 되는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그저 문학을 좋아하는 대학생인 줄 알았던 그가 알고 보니 차르의 고문직을 했던 바딤 바라노프라니.
소설 <크렘린의 마법사>는 한 개인의 인생 스토리이자 러시아 역사를 이끈 권력의 이면을 바딤 바라노프의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차르 시대의 귀족, 소비에트 체제의 엘리트 집단과 같은 체제 변화를 거치며 살아온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배운 인생의 의미, 연출가라는 직업을 가진 바딤의 개인사를 시대별 러시아의 분위기 속에서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러시아를 만든 푸틴을 누가 끌어냈는지 그 출발점도 엿볼 수 있습니다. 방송국 소유주 보리스의 제안으로 바딤은 방송이 아닌 정치를 연출하는 것에 참여하게 됩니다. 거대한 정치극의 주인공이 될 배우는 바로 구 KGB인 FSB 국장이었던 블라디미르 푸틴입니다.
수평의 과잉으로 카오스 상태가 된 러시아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새 인물로 낙점된 푸틴. 이제 다시 권위가 주축인 수직축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던 푸틴은 정치판에 입장합니다.
그런데 금욕적인 공무원일 뿐이었던 푸틴과의 첫 만남에서 바딤은 한눈에 푸틴의 섬광처럼 번득이는 냉소를 알아챕니다. 러시아에서 권력이란 의미를 제대로 보지 못한 보리스가 내쳐지고 바딤은 그렇게 푸틴의 세계를 걷게 됩니다.
왜 러시아가 톨스토이, 푸시킨 대신 폭군 이반, 표트르 대제, 레닌, 스탈린의 향수를 가지게 되었는지. 그들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에게 아주 익숙한 태도와 말투를 가진 푸틴에게 왜 빠져들었는지. 무방비로 노출된 인간의 불안을 잠재울 유일한 방책으로서 권력의 수직성이 어떤 방식으로 먹혔는지. 20세기 말 내란의 위기 속에서 21세기를 맞이한 러시아의 이면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러시아의 해체를 막은 푸틴의 상징성과 그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크렘린의 마법사>. 바딤은 이 소설에서 본능적 재능을 가진 연기자도 체계적인 연기자도 아닌 스스로를 연출해 내는 연기자였던 푸틴의 모습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러우전쟁에 이르기까지 푸틴이 만들어낸 권력의 실체를 이해하게 됩니다.
"러시아에서 중요한 건 권력과의 근접성 즉, 특권입니다. 특권이란 자유의 반대이며, 노예화의 한 형태이니까." - 책 속에서
크렘린의 마법사라 불렸던 소설 속 푸틴의 정치 고문 바딤 바라노프는 실존 인물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를 모델로 했다고 합니다. 막후 실세였던 그를 모델로 전개한 소설인 만큼 더 생생한 팩션 소설이 되었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