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미쳐 있는 - 실비아 플라스에서 리베카 솔닛까지, 미국 여성 작가들과 페미니즘의 상상력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류경희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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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비평의 문을 연 책 『다락방의 미친 여자』 저자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가 40년 만에 다시 목소리를 냈습니다. 80대가 된 노년의 작가들이 왜 다시 힘을 합쳐야 했을까요?


하루 동안 일어났던 시위 중 사상 최대 규모였다는 여성 행진 시위. 바로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다음 날 일어난 시위였습니다.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는 시위에 참가하는 대신 집필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70년대에는 신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이었지만, 2017년에는 타락한 인물이 지배하는 세계를 응시하게 된 겁니다. 절망감에서 비롯된 시위였습니다. 그동안의 페미니즘 운동은 실패한 걸까요? 쇠퇴했다가 다시 부활한 것일까요?


『다락방의 미친 여자』 이후 40년이 지난 현재, 왜 우리와 우리의 많은 친구들은 여전히 미쳐 있을까를 고민하게 합니다. 여기서 미쳐 있다는 것은 격노한다는 의미입니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는 권위와 남성성의 동일시 문제를 검토했다면 <여전히 미쳐 있는>은 미국 정치와 젠더의 관계를 고찰합니다.


정치사에서 페미니즘의 긴장과 갈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로 힐러리 로뎀 클린턴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성차별주의와 미소지니(여성혐오)를 경험하면서 공직에 출마했고, 편집위원, CEO, 미국 대통령이 되는 일에 뛰어들었던 그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나봅니다.


<여전히 미쳐 있는>에서는 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페미니즘의 역사를 돌아보며 21세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제2물결 페미니즘을 들려줍니다.


이 책은 단순히 페미니즘의 쇠퇴와 몰락 또는 죽음과 부활을 다룬 역사가 아니라 "수 세대에 걸쳐 여성 작가들이 어떤 식으로 문화적 변혁의 비전을 형성하기 위해 자기 삶의 수수께끼를 타진해왔는지 따져보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시인, 소설가, 극작가, 가수, 저널리스트, 이론가 등 대표 인물들을 통해 끊임없이 진화해온 여성운동사를 만나게 됩니다.


1950년대 순응주의 삶과 반발하는 삶 속에서 혼란을 겪은 여성들이 어떤 식으로 각성하게 되는지 그 여정을 실비아 플라스의 삶으로 엿볼 수 있습니다. 60년대에는 그 유명한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헬렌 걸리 브라운이 등장합니다. 전례 없는 성 혁명의 화신들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오늘날의 삶에 큰 영향을 준 70년대 여성운동은 미국의 제2물결 페미니즘을 본격적으로 열었습니다. 이 여정의 바탕이 된 작가들의 책을 함께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도리스 레싱의 지혜를 도움받아 "이 빌어먹을"로 시작하는 케이트 밀릿의 『성 정치학』을 시작으로 수전 손택, 에이드리언 리치, 어슐러 르 귄, 오드리 로드 등 쟁쟁한 인물들이 쓴 책을 살펴봅니다.





80년대와 90년대 페미니즘은 정체성 정치라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초국가적 맥락에서 성적 불평등과 인종적 불평등을 분석하는 겁니다. 미국의 도덕적 타락에 기여한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를 다룬 에이드리언 리치, 토니 모리슨 등의 책이 소개됩니다. 더불어 동성애에 관심의 초점을 맞춘 이브 코소프스키 세지윅과 퀴어 이론의 토대를 만든 주디스 버틀러의 책을 통해 새로운 페미니즘 경향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세기가 바뀌면서 신세대들의 페미니즘사가 이어집니다. 21세기 여성 작가들이 구축하는 다양한 연대를 발견합니다. N. K. 제미신의 부서진 대지 3부작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제미신의 삶과 작품을 분석하는 파트도 반가웠습니다. 리베카 솔닛, 마거릿 애트우드 등 언론계에서 입지를 구축하는 페미니즘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합니다.


이 모든 여정에서 발생하는 백래시 현상에 대해서도 짚어줍니다. 아내와 어머니 역할을 넘어 작가의 삶도 원했던 실비아 플라스가 독신 여성으로부터 공격을 받았고, 글로리아 스타이넘에 대한 터무니없는 가짜뉴스, 인종 간 여성 작가들의 갈등 등 페미니즘 의제가 반대자들에게 이용당하거나 안티 페미니스트 여성들의 수수께끼를 다룬 다양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미국 정치 현장에서의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힐러리 로댐 클린턴과 낸시 펠로시 두 인물의 이야기로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여전히 미쳐 있는>. "타당한 이유로 여전히 미쳐 있는" 이 시대 페미니즘의 현실을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없는 에피소드입니다.


페미니즘 주역들의 삶을 통해 시기마다 여성들이 꿈꾼 미래와 분노를 엿볼 수 있는 <여전히 미쳐 있는>. 가정과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은 가부장제의 유령은 정말 끈질깁니다. 그에 맞서 여전히 미쳐 있는, 미칠 준비가 되어 있는 오늘날 여성 연대의 힘을 기대해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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