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 지음, 김정훈 옮김 / 호두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자들의 철학자라 불리는 프랑스 철학자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1903~1985)의 '죽음' 철학 <죽음 :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두툼한 분량의 벽돌책인데다가 철학 특유의 난해함이 있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 즈음에 타이밍 좋게 등장하는 문장들이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합니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나 다양한 음악 작품을 인용하며 한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단이 딱 등장하거든요.


죽음은 출생, 성장, 노화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생물학적인 현상입니다. 여기에 무슨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걸까요. 왜 죽음을 철학해야 하는 걸까요. <죽음 :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에서 그 이유를 그리고 사유의 끝을 만나보세요.


죽음은 명백하고 자명한 것인데도 언제 만나든 충격적입니다. 왜 누군가의 죽음은 항상 일종의 불상사가 되는 걸까요? 정상적인 사건이라면 우리는 왜 산 자가 사라질 때마다, 마치 처음 일어난 사건이라도 된 듯이 놀라는 걸까요.


우리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신과는 무관한 일인 것처럼 대한다고 합니다. 나에게 "죽다" 동사는 미래형밖에 없습니다. 죽는 것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입니다. 나를 죽음의 생존자로 만드는 셈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죽음을 사유 가능한 추상적 개념으로 만듭니다.


장켈레비치는 "사멸의 법칙은 모든 피조물에게 적용되지만, 나만은 제외... 하지만 깊이 들어가지 말자! 아니, 너무 열심히 생각하지 말자. 이런 것이죠." (p21)라고 말하며 평소 죽음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짚어줍니다.​


그런데 그런 죽음을 진지하게 의식하고 실감하게 되었을 때는 부모의 죽음처럼 소중한 이의 죽음을 경험했을 때입니다. 실재성, 임박함, 몸소 관련됨. 이때 비로소 죽음은 진지해집니다.


"죽음은 그 진지함을 "실감하는" 이를 통해 시간과 공간 속으로 파고듭니다. 죽음이 하나의 사건으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 p31, 죽음 


장켈레비치는 죽음을 이편과 저편으로 나눠봅니다. 죽음 이편의 죽음 철학은 죽음을 죽음 이전에 파악하겠다는 겁니다. 죽음 저편의 죽음 철학은 내세, 영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죽음 순간의 죽음 철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해 말하려고 할 때에, 생각이라도 할 때에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한 저자는 죽는 순간의 철학으로 사유를 이어갑니다. 죽는 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마법처럼 일어납니다. 소크라테스 최후의 날을 보여주는 <파이돈>에서는 "몸을 떨었다."라는 말로 죽음을 말할 뿐입니다. 


장켈레비치는 죽는 순간은 그 어떤 식으로도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사색이나 추론의 소재도 될 수 없다고 합니다. 죽음을 가까이서 보았던 생존자는 전혀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과 같다고 합니다. 살아남았으니까요. 이거야말로 '무지한 앎'이라고 합니다.





산 자는 죽을 운명이라는 조건에서만 산 자입니다. "생명 있는 것의 죽음은 죽게 되어있는 생을 열정적으로 만듭니다."(p668)처럼 죽음이 있기에 삶이 더욱 가치있다는 결론을 우리는 익숙하게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삶의 눈으로 고찰합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죽음의 순간은 살아온 삶만을 말하고, 거기서 의미를 끌어낼 뿐이었을까요.


그럼에도 장켈레비치는 "어쨌든 죽어야 한다면, 적어도 한 번은 실존의 독특한 맛을 맛보는 편이 낫습니다."(p670)라고 합니다. 절망적인 순환 속에서도 "존재했다, 살았다, 사랑했다."(p673)는 데에 의미를 두도록 말입니다.


읽는 내내 그동안 알고 있다고 생각한 '죽음'은 제대로 된 사유가 아니었음을, 애초에 대상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고 있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죽음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을 들려주는 <죽음 :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 죽음에 대한 사유가 모순적이고 역설적이란 생각이 들면서 공허함으로 끝나버리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즈음, 그럼에도 우리가 죽음을 철학하는 이유를 짚어주는 저자의 스토리텔링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