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벽 - 평화로운 일상을 가로막는 냉전의 유산
김려실 외 지음 / 호밀밭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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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27일은 정전 70주년입니다. 한국전쟁이 멈춘 지 무려 70년이 흘렀습니다.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는 줄어들고 있고, 역사로만 알고 있는 세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쟁 세대의 자녀로 태어나 반공을 외치던 냉전 시대에서 자란 세대라면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아이만 해도 한국전쟁은 그저 임진왜란과 같은 역사 속 기록일 뿐이거든요.


하지만 냉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냉전의 유산은 강력해졌고 신냉전이라는 용어에도 익숙해졌습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여 일상에 스며든 냉정의 유산들을 살펴본 <냉전의 벽>. 우리가 잊고 있었던 냉전의 산물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시위나 전쟁은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냉전이지만 일상 깊숙이 스며든 냉전의 산물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무서운 건 이 냉전의 유산이 평화로운 일상을 가로막는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정부의 프레임에 갇혀 가치관을 형성하게 됩니다. 만들어진 전쟁 이야기를 비판적으로 다룬 김려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저도 이제서야 알게 된 진실이 많았습니다.


독재 정권의 정치 이벤트가 어떻게 한미동맹과 반공 사업과 연결되어 맥아더 신화를 낳았는지 짚어보는 글은 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승만으로부터 박정희에 걸친 맥아더 신화 만들기가 우리의 역사적 기억에 미친 영향은 무척 큽니다. 맥아더는 사후 한국에서 무당들의 신이 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핵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괴수 SF 영화에 담긴 의미를 재조명하는 이희원 저자의 글도 인상 깊었습니다. 일본의 고지라, 한국의 용가리 흥행에 드리워진 냉전의 서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김경숙 저자가 쓴 한국 전쟁으로 희생된 아이들에 대한 글도 의미 깊었습니다. 한국 전쟁 고아 구호의 두 얼굴, 혼혈 아동에 대한 냉담한 사회적 시선을 낱낱이 고발합니다. 최근에 읽은 그레이스 M. 조의 회고록 <전쟁 같은 맛>이 떠올라 가슴이 아릿해집니다.


류영욱 저자의 글에서는 놀이 문화에 스며든 냉전의 산물을, 양정은 저자의 글에서는 과거 반공 교육과 현재 통일 교육을 비판적으로 살펴봅니다. 그러고 보니 고무줄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 불러댔던 노래 가사가 지금 생각해 보면 뜨악스럽습니다. 무찌르자 공산당,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같은 진중가요 가사를 자연스럽게 불렀으니까요.


냉전의 잔재는 교육 분야에서도 끈덕지게 발견됩니다. 반공주의 교육계를 장악하고 있었던 시대에는 적, 괴수, 멸공, 승공, 북진 등의 용어가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교과서의 통일 교육 역시 실상은 북진 통일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었습니다. 맹목적인 반공정신의 유산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한국 속 남의 땅이었던 용산 기지가 우리에게 온전히 되돌아오기까지 남은 숙제들을 짚어주는 백동현 저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 외에도 우리가 잊고 있었던 미군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수희 저자, 한국인의 식문화를 바꾼 전시 식량 스팸을 통해 냉전의 유산을 들려주는 이시성 저자까지 냉전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한국 전쟁을 기억하고자 해마다 기념식을 열지만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냉전의 벽>은 정전 이후 70년 동안 우리 정신의 벽처럼 세워진 냉전의 유산을 제대로 인지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가치관이 오늘날까지도 다방면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이지만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시민들을 일깨우는 책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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