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역사 6 - 흔적 : 보잘것없되 있어야 할 땅의 역사 6
박종인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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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의 인문 기행 시리즈 땅의 역사, 여섯 번째 책이 나왔습니다. 역사의 이면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박종인의 땅의 역사를 읽으며 비로소 알게 된 역사적 사실이 참 많습니다. 그가 다루는 역사는 승자의 목소리로 쓴 광명의 역사가 아닌 실패의 역사, 아픔의 역사입니다.


때로는 부끄럽고 창피한 역사이기도 합니다. 없애고 싶은 물건이면 쓰레기통으로 버리면 그만인데 역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창피하고 아픈 역사는 지워진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망각하지 말아야 할 흔적까지도 말입니다.


박종인 저자는 그 흔적을 찾아 나섰습니다. <땅의 역사 6 흔적> 편에서는 작은 돌덩이, 자빠져 있는 비석, 지워진 기록 등 사소하지만 간신히 살아남은 흔적들의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부터 개화기, 식민지, 근대에 이르기까지 거짓을 말하지 않는 땅에서 발견한 아직 지워지지 않은 흔적들을 살펴봅니다.


서울공예박물관 터의 복잡한 역사로 시작합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왕족의 땅이었던 자리에 옛 천민을 기리는 박물관이 들어섰으니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세종이 끔찍이 사랑한 막내아들 영응대군을 위해 안국동 인가 60여 채를 헐어 지은 집이 바로 그 자리입니다.


고종의 왕세자 이척의 초호화판 혼례식도 안동별궁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갑신정변 때는 안동별궁 방화를 신호로 거사를 준비하기도 했을 만큼 그곳은 철저히 왕족의 땅이었습니다. 그곳에 천대받던 장인들의 작품이 가득한 서울공예박물관이 들어섰으니 대대로 폐쇄된 특권의 땅이 결국 이렇게 백성에게 돌아왔습니다. 이제 그곳에 가면 그 터에서 일어난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떠올라 복잡미묘해질 것 같습니다.


기록을 남기지 않고 은밀히 거래된 공녀에 대한 이야기는 가슴이 저릿해집니다. 고려 시대 원나라로 바쳐진 공녀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 조선시대 명, 청에 바친 기록에는 공녀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은밀히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물증이 남지 않는 구두로 통보하고 선발은 조선에 파견된 사신들이 결정했습니다.


백성을 생각해 한글을 창제한 세종마저도 어김없이 공녀를 바쳤습니다. 공녀는 여자가 아니라 공물인 나라였습니다. 경복궁 행랑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을 착잡하게 만듭니다. 물건으로 취급된 건 공녀뿐만이 아니라 노비도 있습니다. 스스로를 노비로 팔기도 했을 정도로 생존이 힘겨웠던 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당시 불법이었지만 표준계약서 양식이 있을 정도로 성행했습니다.






신분과 계급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부조리, 불안정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땅의 역사 6 흔적>. 고질적인 폐단은 걷잡을 수 없을 지경입니다. 망국으로 향하는 길이 이토록 뻔히 보일 줄이야 싶을 정도입니다. 읽는 내내 갑갑한 마음이 들기 마련이지만 이런 역사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과오를 반성하고 반복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동학농민혁명을 발발시킨 탐관오리 조병갑은 대한제국 법부 민사국장(일명 판사)으로 권력에 복귀하며 떵떵거리며 살았습니다. 정독도서관 땅에 얽힌 역사도 참 대단했습니다. 갑신정변의 김옥균과 서재필이 그 터에 살았는데 김옥균의 집터 표식만 현재 있을 뿐입니다.


이후 을사오적 박제순의 집터가 되었는데 현재 우물돌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안내판이 의뭉스럽습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료라 여겨져 관리하게 되었다 식입니다. 어떤 의미인지는 빠져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 그대로 썼으면 될 것을 왜 정체를 숨기는지 의아합니다.


조선귀족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조선 식민지화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을 더 귀하게 하고 영화롭게 하기 위해 신설된 신분입니다. 일명 매국귀족입니다. 윤덕영이 대표인물입니다. 고종조차 조선 500년 동안 본 적 없는 간악한 자라고 비난했을 정도입니다. 동생 윤택영이 베이징에서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로부터 헌사를 받아와 비석에 새겼는데 현재 쓰러진 채 가정집 빨래판이 되어 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고속도로 공사 과정에서 생긴 역사적 흔적을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작은 비석을 만나고서야 한 군인의 사고를 알게 됩니다. 당시 공사에 투입된 인력에는 육군이 투입되었고 이때 군인이 순직한 겁니다. 이 외에도 경부고속도로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바치며 뚫은 길이라는 걸 짚어줍니다. 금산휴게소 맞은편에 그 죽은 자들을 기리는 위령탑이 서 있다고 합니다.


이 땅이 기억하는 역사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무심코 지나친 곳에 얽힌 역사적 진실을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이 나라가 지금에 이르게 된 역사적 증거를 만나는 셈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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