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 - 미국 중앙은행은 어떻게 세계 경제를 망가뜨렸나
크리스토퍼 레너드 지음, 김승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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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금리 결정날에는 세계가 주목합니다. 미국 금리에 따라 세계의 경제가 함께 출렁입니다. 금리를 결정하는 곳이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입니다. FOMC는 연준이 어떤 경로로 행동을 취할지 12명의 투표로 결정합니다. FOMC의 문화는 의장의 의견을 존중하는 전통이 있고, 누군가의 반대 의사가 있을지언정 대개 만장일치를 이끌어냅니다.


그런데 2010년 FOMC 표결 이력을 보면 특이한 일이 발생합니다. 반대, 반대, 반대... 연준 역사상 오랫동안 연달아 반대표를 낸 사람이 나온 겁니다. 당시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의 행장 토머스 호니그입니다.


<돈을 찍어내는 제왕, 연준>에서는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레너드가 내부자 토머스 호니그의 시선을 좇아 미국에서 가장 은밀한 조직 연준을 들여다봅니다. 이 과정에서 연준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영향력이 미친 결과를 살펴봅니다.​​


연준은 실업률이 오를 때마다, 경제성장이 둔화될 때마다 금리를 낮추고 돈을 찍어냈습니다. 단기적 압력에 반응하는 방식입니다. 연준의 중심 모델은 케인스의 이론을 따르고 있습니다. 토머스 호니그는 무엇에 반대표를 던진 걸까요. 당시 연준의 돈 풀기 정책의 일환으로 고안된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반대했습니다. 바로 양적완화(QE)입니다. 금융위기에 대처하느라 이미 금리가 제로 상태였는데 연준은 제로 바운드를 뚫고 더 내려갈 방법을 생각한 겁니다.


연준은 미국 달러를 의지대로 창출해낼 수 있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FOMC는 미국 화폐의 양과 가치를 결정하는 위원회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막느라 100년에 걸쳐 늘렸어야 할 화폐량을 1년 남짓한 기간에 늘렸습니다. 이 돈을 24곳 정도의 거대 은행들의 금고에 넣었습니다.​​


당시 연준 의장 벤 버냉키가 양적완화 창시자입니다. 그런데 2010년의 양적완화는 경제적 위기가 아닌 일상적인 정책 운용 수단으로서의 양적완화였습니다. 은행의 단기 채권을 매입하던 이전과 달리 연준은 장기 채권을 매입해 은행의 계좌에 새로 찍은 돈을 넣어주고 은행은 그 돈으로 대출을 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시중에 돈이 풀리는 방식입니다.


어마어마한 화폐 공급은 월가의 거대은행으로만 흘러갑니다. 당시 호니그는 양적완화가 부유층과 나머지의 격차를 더 크게 벌릴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자산을 소유한 극소수만 혜택받고 월급 받아 저축하며 사는 시민들에게는 해가 되는 결과를 낳을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뭔가 익숙한 이야기이지 않은지요? 호니그의 경고는 현재 이 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부자와 빈자의 격차를 벌이는 데 이보다 막강한 정책을 없을 거라고 합니다. 주식 시장의 활황에 들떴던 시기가 기억나는지요. 그러면서도 왜 중산층은 뒤로 계속 밀려나는지 그 원인이 바로 이 책에 있습니다.​​


호니그의 반대표로 인해 호니그는 당시 선사시대 야만적인 인물처럼 묘사되면서 냉정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언론에서는 그가 인플레이션을 걱정해 반대한다는 식으로 곡해합니다. 호니그는 1973년에 연준에 입사해 연준이 행한 일들을 목격해왔습니다. 주택 버블 시기에는 금리를 너무 낮게 유지해 오히려 불을 지폈다는 데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 패닉 때는 패닉을 멈추기 위해 양적완화가 필요했다 하더라도 긴급 상황 이후에조차 쓴다는 것에 호니그는 반대한 겁니다. 호니그는 결국 싸움에서 졌습니다. 이미 결정 난 상태나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반대표를 공식적으로 던진 이유는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11년 겨울 미국의 금융 시스템은 재배열됩니다. 연준의 정책은 뉴욕 연은 트레이더들이 실현시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연준이 월가에 돈을 창출하는 방식과 연준이 발표한 금리 수준에 일치하도록 뉴욕 연은 트레이더들이 어떻게 실행하는지 그 방식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숫자 놀음이라는 말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돈이 시스템에 밀려오면 모든 금융기관이 수익률 추구에 나서도록 내몰립니다. 이 당시의 양적완화는 해지펀드, 은행, 사모펀드가 더 위험한 방식으로 부채를 일으키도록 부추긴 것밖에 안 되었습니다. 금리마저도 제로금리 정책 (ZIRP)이었기 때문입니다. 제로금리 시대에서는 저축하면 바보짓입니다. 주식, 석유산업, 상업용 부동산으로 돈이 몰렸습니다.


저자는 공장 노동자 존 펠트너의 사례를 통해 연준의 정책이 시민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연준의 정책으로 빚 덩어리가 된 기업에서 일한 근로자의 사례입니다. 뭔가 그 결말이 느껴지지요.


토머스 호니그의 아쉬움은 금융위기때 망하게 두기에는 너무 컸던 은행들이 더 커진 상태가 되어 이제는 더 손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데 있습니다. 연은을 은퇴한 호니그는 예금보험공사 부의장직으로 활동하며 은행을 규제하는 일에 종사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시절 더 이상 높은 자리로 오르지 못한 채 예보를 떠나게 됩니다.​​


한번 시행된 정책을 되돌리려고 하면 비용이 어마어마합니다. 양적완화를 했던 연준도 그 사이 정상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정상화가 되어가자 가려져 있던 글로벌 부채 시장에 형성된 병폐가 드러나게 됩니다. 이게 너무 심각했던 겁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 시대의 연준 의장 조지 파월도 항복하게 됩니다.


이미 양적완화와 제로금리로 시스템이 파괴되었습니다. 호니그는 연준이 자신이 과거에 한 행동의 덫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이젠 시장이 돌아가게 하려면 엄청난 개입이 필요해졌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몰아쳤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2차 대전 이래 가장 많이 공적 자원을 지출했습니다. 2020년의 구제 금융을 짚어보며 당시 미국 경제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영상미가 느껴지는 듯한 스토리텔링이 일품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복잡하고 눈에 띄지 않는 제도를 이토록 생생하게 보여주니 경제 시스템을 잘 알지 못하는 저조차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방식과 그 영향력이 궁금한 경제 초보자들에게 추천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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