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짐바르도 자서전 -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으로 20세기를 뒤흔든 사회심리학의 대가
필립 짐바르도 지음, 정지현 옮김 / 앤페이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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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 이론, 루시퍼 이펙트, 타임 패러독스... 심리학 책에서 한 번쯤 접할 수 있는 바로 이 이론들의 창시자, 심리학계의 살아있는 전설 필립 짐바르도 자서전을 만나봅니다.​​ 질문과 답변 형식의 인터뷰 기록으로 구성된 자서전이어서 생생하게 직접 목소리를 듣는 듯한 기분을 안겨줍니다. 기대 이상으로 재밌는 입담을 가진 분이시더라고요.​​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겪은 필립 짐바르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에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해나갔다고 합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2세로 파란 눈에 큰 코, 큰 키와 마른 체형... 이런 신체 특성은 또래 아이들에게 유대인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지독한 차별을 받게 됩니다. 그는 힘센 리더의 행동과 특징을 관찰하며 흉내 내기 시작했고 성장하면서 자신감 넘치는 학생으로 변하게 됩니다. 직관적인 어린 심리학자의 면모를 일찌감치 보인 겁니다.​​


그의 생김새로 인한 오해는 이후에도 이어집니다. 고등학교 시절엔 시칠리아 출신 마피아라 여기질 않나, 누군가는 그를 푸에르토리코인이라 여깁니다. 싸구려 사진관에서 찍은 어두운 사진과 재즈를 좋아한다는 취미를 쓴 지원서는 그를 흑인일 거라 생각하게 만들었고 당시 흑인 대학원생을 뽑지 않았던 예일대 심리학과 대학원에 입학하지 못할 뻔했습니다.


사회심리학자로서의 이력에 본격적으로 날개를 달게 된 건 심리학계의 거장들이 모인 스탠퍼드대학교에 정교수직을 제안받으며 시작됩니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이 이뤄집니다. 처음엔 기숙사 학생들과 3일간 경찰과 도둑 놀이라는 모의실험으로 시작했는데 흥미로운 결과를 낳는 걸 보고 본격적으로 실험에 돌입합니다. 심신이 건강한 청년들을 모집해 교도관과 죄수의 역할을 임의 배정하고, 실제 경찰의 도움으로 입건 절차를 따르며 교도소(조던홀 건물 지하)로 이송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죄수복으로 갈아입고 번호를 부여받는 순간부터 제도적 비개인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권력이 지배하는 교도소 실험의 탄생 비화를 짐바르도의 목소리로 들으니 더 흥미진진하더라고요. 신체적 처벌은 금지하지만 심리적 형벌은 막지 않았던 그 실험은 뜻밖의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교도관의 '힘'을 가진 자들은 억압적인 행동을 스스럼없이 하게 됩니다. 너그러운 교도관이라 할지라도 지배적인 교도관의 결정에 따라갑니다. 죄수 역할을 하는 아이들은 각자도생의 태도를 보입니다. 점차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집니다.


모두가 스트레스가 극에 달합니다. 실험 36시간 만에 신경쇠약 증상을 보이는 학생이 나타납니다. 짐바르도조차 연구자가 아닌 교도소 감독관의 역할에 매몰되어버린 바람에 더 일찍 개입하지 못한 것을 자책했을 정도입니다. 결국 원래 2주 예정이었던 실험은 일찍 종료하게 됩니다.​​


1971년에 진행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은 유일하게 하루 24시간 내내 진행된 사회과학 연구이자 사회심리학에서 행해진 가장 극적인 실험입니다. 선량한 사람이 얼마나 악하게 변할 수 있는지 보여줬습니다. 모든 면에서 '상황의 힘'이 극적으로 드러난 실험이었습니다. 상황의 힘이 어떻게 개인의 성격과 사회적 행동을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줬습니다. 이 실험은 맡은 역할이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역할놀이에서조차 우리는 그 경계를 넘을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는 상황의 힘에 취약하다는 걸 의식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합니다.


자서전에서는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에 쏟아진 비판과 오해에 대해 답하는 파트도 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강력한 상황의 힘에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요. 누구나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저항 지침을 마련하기도 합니다. 이 내용은 그의 저서 <루시퍼 이펙트>에서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탠퍼드 교소도 실험 덕분에 탄생한 후속 연구가 많습니다. 수줍음 프로젝트, 시간관, 마인드컨트롤, 광기 등이 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 중 어느 시간대에 집중하는지에 따라 삶의 태도가 결정되는 '짐바르도 시간관' 연구가 특히 인상 깊습니다. 이 이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기애성 인격장애와 현재 지향적 쾌락주의자 면모를 설명할 때에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실험에 참여한 학생들의 심리적 반응이 극에 달했기에 그의 실험 이후 스탠퍼드는 물론 모든 기관이 실험에 대해 보수적으로 돌아섰을 정도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이 낳은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이후 연구 실험부터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일부 사회심리학자들이 fMRI 기계를 이용해 뇌 연구로 전환하게 되는 뜻밖의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TED 강연 당시 시간이 촉박했을 때 머릿속에서 벌어진 상황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선 배꼽 잡고 웃을 정도로 솔직한 그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옵니다. 학창 시절부터 시작한 반전운동은 물론이고 소수집단과 여성 교수 임용에 앞장선 짐바르도의 인생을 엿볼 수 있습니다.​​


26부작 TV 시리즈 <심리학의 발견> 프로젝트에 참여해 심리학의 모든 것을 다루며 대중에게도 익숙한 스타 교수 필립 짐바르도가 들려주는 심리학자로서의 성장기 <필립 짐바르도 자서전>. 수많은 어젠다를 제기하며 20세기를 뒤흔든 사회심리학의 대가 필립 짐바르도의 이야기는 심리학을 좋아하는 일반인과 심리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 유의미한 시간이 될 겁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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