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유근표 지음 / 북루덴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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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상 3대 패전이 원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에게 전멸당한 칠천량해전, 병자호란 당시 경기도 광주 쌍령고개에서 경상도 근왕군이 청군에게 무참하게 패배한 쌍령전투, 6·25전쟁 당시 국군 제3군단이 인민군과 중공군 연합군에게 참패한 현리전투라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역사상 3대 혼군은 선조, 인조, 고종입니다. 칠천량해전은 선조 때, 쌍령전투는 인조 때입니다. 혼군과 전쟁의 관계를 엿볼 수 있게 됩니다.


20여 년간 성곽과 병자호란을 연구한 유근표 저자는 <인조 1636>에서 조선과 청 양국의 1차 사료를 중심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까지 파헤쳐 인조와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보여줍니다.


인조는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물입니다. 임진왜란 때 도망간 선조의 뒤치다꺼리를 한 세자 광해군이 왕위에 올랐지만, 5년 만에 광해군을 내치고 조카가 왕이 된 겁니다. 그렇게 조선 16대 군왕이 된 인조. 하지만 반정을 도왔는데도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이들이 또다시 반란을(성공하지 못했기에 반란군이 되어버린) 일으킵니다. 한국사 공부할 때 한 번쯤 들어본 이괄의 난입니다. 이때 엿새 동안 왕이 바뀌어 있었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선조의 열 번째 아들 흥안군이 용상에 앉은 겁니다. 하마터면 인조 정권이 순식간에 무너질 뻔했습니다.


반란으로 정권을 탈취한 인조와 공신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또 다른 반란이었을 겁니다. 아직 명나라로부터 책봉을 받지 못한 상태였던 인조는 애가 탈 수밖에 없었지요. 명으로부터 책봉을 받기까지 무려 2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런 약점들이 인조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는 상상에 맡깁니다.


인조 정권은 주변 상황을 살피기보다 자신들의 안위에 집중합니다. 군사력이 강해지는 걸 두려워하며 군사 훈련조차 시키지 못하게 하니 조선의 군사력은 엉망진창일 수밖에요. 게다가 바깥 상황을 살피지도 못한 채 주야장천 숭명배금 정책을 고수합니다. 인조가 광해군을 칠 때 내건 반정 명분들 중 하나가 바로 명나라를 숭상하지 않는 광해군 때문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은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일개 부족에 불과했던 여진족은 후금을 세워 명나라 정벌을 최종 목표로 삼았고, 조선은 임진왜란 때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죽어가는 명나라를 계속 붙잡고 있었습니다. 광해군처럼 노련한 외교를 했다면 전쟁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인조 정권의 정치적 행동은 무지 그 자체였습니다. 저자는 정묘호란, 병자호란은 냉철하면서도 유연한 대처를 하지 못한 인조 정권의 책임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러고 보면 병자호란이 워낙 큰 사건이다 보니 정묘호란의 역사성을 잘 알지 못했었는데요. 이번 기회에 1627년에 벌어진 홍타이지의 조선 정벌, 정묘호란의 전후 사정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도 인조는 강화도로 도망간 전력이 있습니다.


한 번 큰코다쳐놓고서도 인조 정권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군사력은 엉망인 채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합니다. 이번엔 남한산성으로 파천을 결정합니다. 저자는 그날의 긴박했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기록들을 나열합니다. 병자호란은 소설, 드라마, 영화 등의 소재로 등장해 익숙한 전쟁이지만 <인조 1636>에서 그 실상을 정확한 사료를 통해 제대로 정리해 봅니다. 항쟁이냐 항복이냐 고뇌하는 인조와 주화파와 척화파의 논쟁 이외에도 우리가 몰랐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무능한 군주와 지휘부들 때문에 고통받은 이들의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인조의 삼전도 굴욕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청나라로 끌려간 피로인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절절하고 허망한 사연으로 점철된 비극입니다. 화냥년, 호래자식 같은 단어가 바로 청나라로 끌려간 여인들과 그 이후 태어난 아이들을 일컫는 단어였습니다. 사대부들의 이기적이고 냉혹한 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가슴 아픈 단어입니다.


이때 소현세자와 강빈도 인질이 되어 청나라에서 8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고국으로 돌아온 소현세자를 기다린 건 죽음이었습니다. 영화 <올빼미>에서 인조의 광기를 엿볼 수 있었는데요. 서른넷의 젊은 나이에 의문사한 소현세자와 그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도무지 인조에 대한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힘들어집니다.


인조반정에서부터 소현세자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조와 관련한 국내 전반적인 상황과 조, 청, 명 3국이 얽힌 국외 정세의 복잡한 사연까지 시간을 거슬러 당시의 이야기를 정확한 사료만을 바탕으로 기술한 <인조 1636>. 이런 자료들을 통해 그저 재미있는 엔터테인먼트의 소재가 아닌 우리의 역사라는 걸 생생하게 깨닫게 되니, 어리석은 결정을 하며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든 인조 정권은 고구마 답답 그 자체입니다. 과거의 이야기에 if를 설정해 봤자 결과는 바뀌지 않지만, '만약에'라는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 자주 든 인조 시대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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