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철학 - 거짓 세상의 파도 위에서 철학으로 중심잡기
라르스 스벤젠 지음, 이재경 옮김 / 에이치비프레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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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철학 교수 라르스 스벤젠의 <거짓말의 철학> 탄생에 지대한 역할을 한 정치인은 도널드 트럼프였습니다. 현대 정치계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거짓말쟁이라고 (이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에게 압도적으로 추월당했지만) 하는데요. 진실할 책임을 저버리는 거짓말과 개소리와 트루시니스(사실 여부 확인 없이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사실로 인식하는 상태)를 파헤치고 싶어 거짓말에 대한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익한 윤리 수업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노르웨이는 최고 수준의 대인신뢰도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전체 가구의 거의 절반이 1인 가구입니다. 개인화된 사회들은 대인 신뢰 수준이 높고 신뢰 반경이 훨씬 큰 반면, 집단주의 사회들은 대인 신뢰 수준이 낮은 양상을 보인다는데 이는 민주주의의 신뢰와도 연결된다고 합니다. 민주주의는 신뢰가 규준이 아닌 사회에서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합니다. 거짓말은 상대를 사실관계가 아닌 자기 의지에 예속시키려는 행동입니다. 정치인과 시민이 진실에 매진하지 않는 곳에서는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의 철학>에서는 진실성이 민주주의에 가치를 지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일깨웁니다.


거짓말에 대한 주제는 사회심리학, 언어철학에서 많이 다뤄 관련 책을 읽어본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거짓말 판별법도 빠짐없이 등장하죠. <거짓말의 철학>에서는 윤리적 쟁점으로 접근합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기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나 친구 사이의 거짓말처럼 사적 영역에서의 거짓말과 정치세계의 사회적 차원의 거짓말을 살펴보며 하얀 거짓말부터 검정 거짓말 그리고 그 사이의 수많은 회색 거짓말로 점철된 이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거짓말의 반대는 진실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진실성이라고 합니다. 내 말이 거짓말인지 여부는 내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달려 있지 않은 겁니다. 내가 내 말을 참으로 믿는지 거짓으로 믿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의 반대는 진실성입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이 실제로 진실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우리는 직감에 의지해 진실로 결론 내리는 경향이 큽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진실과 허위를 구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항상 오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계속 새로운 진실을 찾아야 합니다. 거짓말의 개념을 이해할수록 진리 탐색자로서 책임감 있고 성숙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거짓말은 언제나 잘못이지만, 옹호될 법한 특별한 경우들도 있습니다. 거짓말하는 이유는 참 다양합니다. <거짓말의 철학>에서는 칸트, 쇼펜하우어, 존 스튜어트 밀 등 철학자들은 거짓말을 어떻게 정의 내렸는지 살펴보면서 거짓말에 대한 윤리철학을 소개합니다. 


특히 자기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처럼 자기기만에 대해서는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자기기만은 사실상 거짓말보다 트루시니스에 가깝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정량의 자기기만을 적용하지 않고는 삶을 헤쳐나가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자기기만이 심할 경우 양심이 우리 행동을 인도하는 능력을 방해한다는 데 있습니다. 진실을 추구한다면 적어도 통찰을 제공할 능력, 인생에서 저지른 실수를 바로잡을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거짓말의 철학>은 자기기만이 아니라 자기 인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거짓말계의 압도적 거물 도널드 트럼프는 정치적 거짓말 사례에서 빠지지 않는군요. 너무나도 노골적인 거짓말을 해서 오히려 그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그를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사람'으로 솔직함의 대명사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치에서 거짓말은 언제 허용될까요. 칸트는 거짓말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는 주의고, 결과가 이롭다면 허용되는 건 마키아벨리의 관점이며, 정치에서는 때로 필요하다는 관점을 보인 막스 베버도 있습니다. 현대 정치에서 우리는 외교 정책 관련 거짓말은 결과가 좋으면 용서를 하고, 국내 정책 분야는 지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타적 거짓말이라 불리는 것들은 온정주의 거짓말이기 쉽고, 정치에서 오히려 막대한 파급력을 가진다는 겁니다. 시민을 합리적 의견 형성의 역량이 없는 어린아이처럼 여기는 셈이거든요.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차단하는 대국민 거짓말은 국익이라는 이름하에 수없이 나타났습니다. <거짓말의 철학>은 정치적 거짓말은 진정한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걸 분명히 들려줍니다.


사회심리학 실험에서 사람들은 평소 상호작용의 25퍼센트가량 거짓말을 한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해석은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합니다. 소수가 매우 높은 빈도로 거짓말하면 평균이 쉽게 올라갑니다. 실제 우리가 서로가 하는 말들 중 거짓말의 비중은 매우 적습니다. 정직한 다수가 구축한 신뢰에 거짓말하는 소수가 기생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거짓말이 성공하기도 하고요.





대체로 우리는 사람들이 진실을 말한다고 가정합니다. 거짓말한다는 생각이 들려면 그럴 만한 이유가 필요합니다. 거짓말 판별법으로 남들을 더 의심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거짓말이 쉬운 해법처럼 보일 수 있지만 유지 비용이 꽤 든다고 합니다.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으려면 뱉은 말을 기억하고 입조심을 하는 등 자기 감시가 필요해집니다. 사소한 일에도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에 쉽게 익숙해집니다.


한편으로는 남들에게 숨길 속내는 숨기고,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일이라고 합니다. 인간 공동체는 어느 정도의 가식을 요한다는 걸 부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고 싶은 정보만 취사선택하고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외면하는 확증편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짓말의 철학>은 외부 환경이 아닌 자기 안에 진실성의 뿌리를 두어야 한다고 합니다.


실생활에서는 트루시니스를 특히 경계하자고 조언합니다. 정신적 나태를 경계합니다.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로 진실인지 굳이 확인하려 들지 않은 우리의 성향이 가짜 뉴스, 허위의 주요 원천이라고 말이죠.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진실하기 위해 노력할 도덕적 의무를 이야기하는 책 <거짓말의 철학>. 어려운 해법은 없습니다. 자신이 믿는 바를 말하고, 그것의 진위 확인을 위해 합리적인 노력을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일깨웁니다. 그걸 하지 않기에 이 책이 나온 이유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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