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용의 불길, 신냉전이 온다 - 일대일로 정책에서 타이완해협의 위기까지 더 은밀하고 거대해진 중국의 위협
이언 윌리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반니 / 2023년 2월
평점 :

그동안 미중전쟁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중국의 위협이 얼마나 은밀하고 거대한지 깨닫게 한 책 <용의 불길, 신냉전이 온다>. 에미상 수상자이자 영국 언론 기자 이언 윌리엄스가 중국과 아시아 곳곳을 다니며 목격한 중국의 힘자랑과 억압을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첫 책<숨소리 하나까지: 중국의 새로운 전제정치>로 감시국가 중국을 다뤘다면, 신간 <용의 불길, 신냉전이 온다>에서는 군사, 산업, 정치, 지역, 사이버 공간 전 영역에서 펼쳐지는 신냉전의 실체를 낱낱이 보여줍니다. 최근 중국의 정찰 풍선과 관련한 이슈가 있는 만큼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사실 신냉전이라는 용어는 서방 지도자들이 사용하길 꺼려 합니다. 냉전이라는 용어를 쓰면 정말로 닥칠까 두렵기 때문에 체제경쟁국, 전략 경쟁이라는 용어로 현 상황을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서방은 중국과 안보, 인권 문제에서는 대립하면서도 무역, 투자, 기후 변화와 보건 등 공동 관심에서는 협력하는 이원화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관계를 바란다는 것이 중국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의 중국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실태라고 비판합니다. 중국은 모든 사안에 위협과 협박으로 맞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시진핑의 총서기 3연임을 확정한 상황에서 사실상 중국의 영구 집권을 허용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서방 민주국가에 깊은 피해의식과 적의를 가진 중국은 오히려 러시아 푸틴과의 관계는 돈독해졌습니다.
"우리는 외세가 우리를 괴롭히거나 압박하거나 노예로 부리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감히 이런 망상을 품는 자는 14억 중국 인민이 피땀으로 쌓아 올린 강철장성에 머리가 깨져 피를 철철 흘릴 것입니다." _시진핑,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 연설(2021.7.1)
<용의 불길, 신냉전이 온다>는 신냉전으로 나타난 여러 전선과 화약고, 중국공산당이 사용한 다양한 전략을 살펴보고 이에 맞서는 서방의 전략 해법을 제시합니다. 특히 충돌 위험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타이완해협은 기사로 자주 등장하는 지역이지만 그 속 사정을 잘 알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회색지대 분쟁 전략을 쓰는 중국과 타이완이 왜 그렇게도 중요한지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타이완(대만)은 국공대전에서 공산당에 패한 국민당이 1949년 타이완으로 후퇴하면서 망명정부로서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분쟁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국가의 요소는 모두 갖췄지만 여전히 공식적으로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건 오로지 중국의 영향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타이완과 중국의 집안싸움으로만 대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하나의 중국 정책'은 타이완은 중국에 속한다는 개념입니다. 타이완 수복이 중국의 원칙입니다. 하지만 민주국가 타이완의 국민 대다수는 자신을 중국인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미 타이완은 민주주의와 다양성이 뚜렷한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타이완을 상대로 회색지대 분쟁 전략을 펼치는 중국. 타이완뿐만 아니라 남중국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중국해는 세계 여느 바다보다 영유권 다툼이 치열한 곳이라는 걸이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됩니다. 이곳은 일본, 한국, 타이완,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많은 나라들에게 중요한 교역로입니다.
그런데 남중국해 90%가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는 중국입니다. 국제법 따위 신경 쓰지 않으며 인공섬까지 만들어 광범위한 주권 행사를 밀고 나가는 중국입니다. 그 안에는 역사를 빙자한 신화와 민족주의 정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중국은 저기가 다 자기네 거라고 우깁니다." 에스트렐라(필리핀 해군 대변인)의 손끝이 남중국해를 가리켰다. "다음에는 미국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길 겁니다." - 용의 불길, 신냉전이 온다
남중국해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사막, 북극, 히말라야산맥, 사이버공간에서 국제적으로 중국의 위협이 펼쳐집니다. 이토록 많은 지역에서 위기가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기에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전 세계가 반도체 부족에 시달렸을 때 첨단산업 분야 대부분이 타이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현실을 깨닫게 한 것처럼 타이완에서 국제적 충돌이 벌어진다면 치러야 할 잠재 비용이 어마어마합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뒤흔드는 위협을 북한 못지않게 중국이 하고 있습니다. 2021년 전쟁 영화 <장진호>가 중국에서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는데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합니다. 중국공산당에서는 한국전쟁을 항미원조, 즉 미국의 부당한 침략에 맞선 방어전으로 생각하며 외세의 도발에 맞서 국익을 보호하겠다는 국민 정서를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이 책에서는 그동안 신중한 입장으로 대처한 일본과 한국의 변화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중국의 공격적인 태도가 낳은 결과로 반중정서가 커지며 동북아시아에서 안보의 초점이 바뀌고 있는 현실을 짚어줍니다.
더불어 중국에 맞선 오스트레일리아와 리투아니아 사례를 소개하며 중국의 협박과 경제 보복의 영향에 대해 살펴보기도 합니다. 재밌는 점은 발트해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는 수출에서 중국은 겨우 1%를 차지할 뿐이라 콧방귀를 뀔 수 있었고, 오스트레일리아 역시 경제 보복을 당할 때 다양한 대처를 하며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야심과 영향력은 만만치 않습니다. 중국은 부유해졌고 세계경제에 깊숙이 얽혀 있습니다. 하지만 오스트레일리아와 리투아니아 사례를 통해 그동안 고분고분 중국의 방침을 따랐던 과거와는 달리 국제사회가 반발하는 전환점이 된 것처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과거의 냉전과는 다른 오늘날의 신냉전에 대해 낱낱이 보여주는 <용의 불길, 신냉전이 온다>. 나치 이후 최대 규모로 한 민족을 감금한 신장의 재교육 수용소처럼 중국의 암울한 피해망상적 세계관에 대해 비판하며, 이런 중국을 상대할 국제사회의 협력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대응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