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지도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1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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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 대탐사의 여정을 보여준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가 완결되면서 아쉬움이 진했었는데,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전 6권) 출간 소식에 가슴이 두근댑니다. 말년에도 지적 탐구를 집대성하며 방대한 유고를 남긴 이어령 선생님의 이야기를 이렇게 만날 수 있어 벅차네요.


첫 번째 여정은 국민시로 알려진 윤동주의 <서시>와 함께 합니다. 별을 바라보고, 마주하고, 노래하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별의 지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물음이 담긴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에서 왜 갑자기 하늘의 별 이야기를 꺼내든 걸까요.


우리는 예로부터 천지인 삼재의 협력에 의해 태평성대를 꿈꿨습니다. 천지인의 석 삼 三 자를 수직으로 이으면 왕 王이 됩니다. 하늘, 땅, 인간의 힘까지 아우를 수 있는 사람만이 왕이 되고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은 땅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만 사면 된다며 인심, 즉 투표자의 마음만 잡으려 듭니다. 포퓰리즘 정치 세상입니다. 임금 왕자에서 하늘을 걷어내면 흙 토 土만 남습니다. 땅과 사람만을 지배해서 리더가 된 자는 진정한 왕이 아닌 겁니다.


우리는 하늘을 봐야 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 그중에서도 '하늘'을 이야기하는 <별의 지도>. 이어령 선생님은 그렇게 우리를 하늘로 이끕니다. 그리고 한국인에게 '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인 윤동주의 <서시>로 그 길을 보여줍니다.


동양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올바른 삶이라 여겼던 반면 서양은 천지인이 합치는 것이 아니라 싸우는 역사입니다. 서양 철학의 거대 산맥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늘과 땅에 대해 서로 엇갈린 이야기를 합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중앙에 배치한 두 인물을 보면 플라톤은 손끝을 하늘을 향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향합니다. 그리고 서양 문명은 이처럼 이원론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라는 윤동주 시인의 마음은 맹자의 어록에 나오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맹자의 행복론에 등장하는 이 말은 다른 사람의(하늘) 위치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천지인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윤동주 시인을 저항시인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저항시인 프레임을 제거하고 읽어보자고 합니다. 여기서 세 가지 층위의 부끄러움을 이야기합니다. '하늘이 나를 봤을 때' '땅의 사람이 나를 보았을 때' '자연이 나를 보았을 때'의 부끄러움입니다. 이를 <서시>에 비춰보면 저항시(정치), 인간주의시(휴머니즘), 종교시로 읽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뜻은 천지인이라고 합니다. <서시>는 하늘, 땅, 사람 즉 민족애, 인간애, 우주애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게 드러납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의 상징은 잎새이고, 별은 죽음을 초월한 것을 뜻합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은 현실에서의 괴로움이고 '별을 노래하는 것'은 이상과 꿈을 이야기합니다. <서시>는 마음속 심리적인 부끄러움이나 괴로움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극복한다는 이야기인 겁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뒤에 서술어가 생략된 부분도 짚어봅니다. 부끄럼 없기를 맹세했다, 맹세한다, 맹세할 것이다처럼 동시에 시제도 생략되었습니다. <서시>를 과거형으로 읽으면 시인이 아니라 군자가 되는 셈입니다. 자랑만 하는 시가 됩니다. 결국 그 시구는 과거, 현재, 미래에도 부끄럽지 않게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이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윤동주 시인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리고 설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적인 것에서 우주적인 것으로 향합니다.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말은 프로세스를 의미합니다. 죽는 날까지의 과정입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가면 하늘로 올라갈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죠. 이어령 선생님은 그 여정이 하늘로 올라가는 연과 중력 사이에서 그려지는 연실과 같은 아름다운 포물선임을 짚어줍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인간. 저항시로만 <서시>를 쓰지 않았기에 오늘날에도 우리는 그의 시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별의 지도>에서는 <서시> 외에도 별을 노래한 수많은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생각의 확장을 보여주는 이어령 선생님의 다채로운 사유가 펼쳐져 읽는 내내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별이라는 단어가 안겨주는 희망과 꿈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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