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것에 관하여 병실 노트
버지니아 울프.줄리아 스티븐 지음 / 두시의나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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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영국의 대표 작가 버지니아 울프. 평생 몸과 마음을 앓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버지니아는 열세 살 때 어머니 줄리아 스티븐이 돌아가신 이후부터 정신이상 상태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성인이 된 후 30년간 작가 생활을 하며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올랜도>, <자기만의 방> 등의 역작을 선보였습니다.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린 버지니아 울프에게 어머니의 부재는 컸을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는 간병인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습니다. 어머니 줄리아 스티븐은 숙련된 간병인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병실 노트>라는 책도 내놓았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정작 버지니아 울프는 아플 때 어머니의 돌봄을 받지 못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등대로> 집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직전 1925년에 신경쇠약을 경험한 직후 침대에서 쓰고 1930년에 발표한 에세이 <아픈 것에 관하여>와 어머니 줄리아 스티븐이 1883년 출간한 <병실 노트>를 합본한 책 <아픈 것에 관하여 병실 노트>. 긴 세월을 건너뛰었지만 아픈 자와 간병하는 자, 책으로나마 모녀를 한자리에 만나게 했습니다.


문학은 정신에만 관심을 둘 뿐, 질병 묘사에서 빈약한 언어를 갖고 있다며 투덜대는(!) 버지니아 울프. 그래서일까요. 버지니아의 일기장에는 육체가 매일 겪는 드라마를 기록한 흔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육신의 아픔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영향을 받는데도, 왜 문학은 외면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아픔을 묘사할 표현의 빈약함에 대해 고민합니다.


"사랑은 체온 40도에 물러나야 하고, 질투는 좌골신경통에 양보해야 한다." - 아픈 것에 관하여 


아프면 가식도 중단됩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머릿속에 소설이 통째로 있는데 쥐가 마구 갉아대는 것 같은" 끔찍한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좌절과 고통 속에서 "우리는 직립 부대원 노릇을 그만두고 탈영병이 된다."라며 누워서 올려다보는 세계를 만나기도 합니다. 아파서 누워있었기에 알 수 있었던 세상을 말입니다. 건강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을 직립 부대원이라 묘사하는 장면이 인상 깊습니다. 곳곳에서 반짝이는 단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버지니아가 누워서 보고 생각하며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가는 여정을 이 글에서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습니다. 각주가 없으면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들 만큼 수많은 인물과 작품이 언급되는 문학적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입니다. 분량은 짧지만 밋밋하지 않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어머니 줄리아 스티븐이 19세기 환자를 가정에서 보살피는 요령을 담은 <병실 노트>. 환자를 이해하고 보살피는 태도와 방법을 세심하게 알려줍니다. 곤란에 처한 이들을 보살피고 간병하느라 집을 비우기 일쑤였습니다. 게다가 정작 자신의 딸을 간병하지 못한 채 세상을 뜹니다.


줄리아는 모든 간병인의 필수적인 의무는 명랑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억지 명랑함이 아니라 주위에 압박감 대신 활기를 일으키는 조용한 쾌활함을 뜻합니다. 줄리아의 <병실노트>에는 오늘날에도 통하는 실용적인 노하우가 실려 있습니다. 소소한 괴로움이지만 환자에겐 골칫거리가 되는 부스러기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침구를 털었다고 만족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침대에 오래 누워있는 환자는 입고 있는 옷의 주름조차도 거슬릴 수 있음을 짚어줍니다.


환자를 놀래지 않기 위해 손을 차갑지 않게 주의하는 것 등 병치레 중에는 사소한 것이란 없다며 꼼꼼하게 살피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간병인 역할에 능숙했던 줄리아는 신중한 관찰자였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여인의 천성으로 여겨진 간병. 어머니 줄리아는 간병에 있어서 능력자였지만, 버지니아 울프는 이 빅토리아 시대의 유령과도 같은 여성성을 죽인 후에야 글을 쓸 수 있었다고 에세이 <여성들을 위한 직업>에서 밝혔습니다. 버지니아는 병치레 경험은 일반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니 줄리아는 환자를 사적인 관계로 두지 않고 철저히 케이스로 생각했거든요. 버지니아 울프가 어머니의 돌봄을 받았더라면 어땠을지 상상해 봅니다.


버지니아 울프 전기를 집필한 옥스퍼드대학교 영문학과 명예교수 헤르미온 리와 <울프 연구 연감>의 창립 편집자 마크 핫세, 그리고 내과의이자 문학비평가 리타 샤론의 깊이 있는 해설 덕분에 읽는 맛이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실용적인 관점과 문학적인 관점으로 대비되어 있는 서로 다른 두 편의 글이 묘하게 마주 닿아있는 <아픈 것에 관하여 병실 노트>. 모녀가 경험한 질병의 세계를 한 권으로 만나는 시간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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