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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으로 읽는 밤의 동화
안지은 지음 / 콜라보 / 2022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엔 주인공과 악당의 뚜렷한 선악 대비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동화의 매력에 빠졌었다면, 인생의 쓴맛을 알아갈수록 선악 구조가 다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빌런이라고 알던 캐릭터를 다시 보기도 합니다. 선한 인물이라고 해서 욕망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안지은 작가는 심리 에세이 <욕망으로 읽는 밤의 동화>에서 동화 원작을 탐독하며 새롭게 포착한 장면들과 캐릭터들의 욕망을 통해 인간관계와 삶을 이야기합니다. 안지은 작가의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소장 가치를 더하고 있습니다.
익히 알고 있던 명작동화 12편을 사랑, 인간 본성, 관계, 성장이라는 테마로 욕망이라는 시각으로 다시 읽는 시간 <욕망으로 읽는 밤의 동화>. "욕망하는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보며 위로받는다."는 작가의 말처럼 치열하게 욕망을 추구한 인물에게서 발견하는, 억눌려 두었던 마음속 욕망이 반응하는 자신의 모습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줄거리를 포함해 캐릭터의 욕망 분석과 캐릭터 시점에서 진행하는 인터뷰로 구성된 방식도 흥미진진합니다. 캐릭터의 속마음을 완전히 드러내는 듯한 솔직한 발언들 덕분에 캐릭터에 대한 감정 이입이 더 잘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때로는 유머 감각까지 장착한 인물들의 발언이 웃음을 안겨주기도 해서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했고요. 동화책 독후감을 쓰는 아이들에게도 뻔한 독후감보다 이런 가상 인터뷰 방식으로 독후감을 써보게 하고 싶어졌어요.
어린 시절부터 유독 마음을 끌어당기는 동화가 있는 만큼이나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싫어했던 동화도 있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저만의 호불호 이유를 짐작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질투를 했기에 괜스레 꼴 보기 싫었고, 누군가는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을 엿본 탓에 싫어했던 이유도 있었더라고요.
사랑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사람을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있다고 말하잖아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말 역시 성공한 신데렐라를 바라보는 독자 관점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신데렐라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는 신데렐라의 언니들에게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대한 불안을 가진 벌거벗은 임금님에게서는 무너지는 자존심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애쓰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인어공주>는 원작을 알아야 그 속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동화이기도 했습니다. 애니메이션으로만 알던 인어공주에게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 중 하나가 인어공주가 욕망한 '인간의 영혼'이었어요. 애초에 인어공주는 불멸의 영혼에 대한 환상을 가진 캐릭터였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되어야만 했던 거죠. 작가는 해보고 싶은 건 결국은 했던, 어쩌면 자신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던 인어공주의 모습을 발견해냅니다.
<백설공주>의 왕비에게서는 타인의 시선에 갇힌 채 외모의 아름다움이 주는 행복에 도취한 왕비의 모습을, 명랑 쾌활한 알라딘에게서는 자신의 힘으로 이룬 게 거의 없는 무능력한 알라딘의 모습을 짚어내기도 합니다.
"견딘다는 것은 좋지 않은 상황일 때 하는 말이다. 우리는 행복을 견디고 있다 말하지 않는다. 견디고 있음은 모든 것을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있는 고통을 참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 욕망으로 읽는 밤의 동화
동화 <완두콩 다섯 알>의 매력을 재발견하기도 합니다. 다섯 개의 완두콩 중 막내 완두콩은 아픈 소녀의 창가에 떨어져 그곳에서 싹을 틔웁니다. <마지막 잎새>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이 동화는 작은 희망을 통해 조금씩 건강을 되찾는 소녀의 이야기인데요. 기약 없는 희망조차 사치였던 이들에게 작은 콩 한 알이 뜻밖의 기적과 희망이 되는 여정에서 우리가 위로받는 지점을 짚어줍니다. 그나저나 이 동화의 마지막 부분은 쿠키 영상을 보는 듯한 재미를 안겨줍니다. 다섯 완두콩 중 하수구에 빠진 넷째 완두콩의 이야기에 숨은 의미를 짚어준 작가 덕분에 이 동화의 매력이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것만 기억나는 동화 <피노키오>. 저자는 이 동화를 두고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인형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된 인형이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된 이야기"라고 하는데요. 피노키오는 쉽게 살고 싶어 행동했던 과거를 후회하고 반성하며 제대로 살려고 하다 보니 인간이 된 셈이었습니다. 어쩌다 바른 인간이 되어 버린 피노키오가 인간의 삶에 자리 잡은 달콤하지 않은, 고통스러운 삶을 마주할 때 어떤 생각을 할지도 들여다보는 작가의 세심한 시각이 돋보였습니다.
후크 선장의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한 <피터팬> 해석도 흥미롭습니다. 후크에게 피터팬은 꿈과 자유를 말하면서 남의 고통엔 관심 없는 유쾌한 척하는 위선자일 뿐이라는 말에 슬쩍 공감되는 건 어른이어서일까요. 더 이상 동화책을 꺼내보지 않는 때가 오는 것처럼 어린이는 그렇게 네버랜드를 떠난다는 작가의 말에 울컥하는 것 역시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 동심으로 가득 찬 그때와 어른이 된 나와의 간극을 절감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