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황주리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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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스치듯 본 적이 있는 누군가와의 인연 이야기에 상상의 살을 붙여 쓴 서간체 소설 <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작고 따뜻한 힐링 분위기를 머금은 매력적인 한국소설입니다.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신구상주의 계열의 선구자인 화가 황주리 작가는 소설 곳곳에 의미 깊은 그림과 함께 주인공의 외로움과 불안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SNS에서 화가를 발견하자마자 오래전 뉴욕 소호에 있는 화랑에서 처음 본 기억을 되살려낸 의사. 당시 그의 그림에서 받은 위로를 잊지 못한 채 그날 구입했던 그림은 지금도 방에 걸려 있습니다. 그는 매일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가는 전쟁터, 아프가니스탄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서랍 속에 고이 잠들어있던 기억을 들춘 한 통의 편지를 받은 경아. 그림을 그린 화가입니다. 그가 기억납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팔았던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이자 딱 한 번 마주했던 그날의 짧은 인연은 이렇게 세월이 흐른 후 이어집니다. 


호의로 가득 찬 눈빛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해 줬던 시간이었습니다. 둘 다 결혼 생활의 위기를 겪은 시기였고 외로움 속에 갇혀 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삶이 힘들 때마다 그날의 위로가 문득 떠올랐을 정도니까요. 서로의 슬픔이 겹쳐지던 시절에 만난 인연. 서로에게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좋아하는 둘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조금씩 알아갑니다. 


외로웠기에 낯설고 위험한 곳으로 떠나 소외된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사. 외로웠기에 그림을 그렸던 화가.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젊은 날 외로움은 우리의 힘이고 용기였습니다."라는 말처럼 그렇게 삶을 살아낸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다른 장소에서 만났더라면 어땠을까요. 아니면 이후 다시 거리에서 우연히라도 만났더라면 이후의 삶은 달라졌을까요. 실제 전쟁터에 있는 남자와 일상이 전쟁터인 곳에 있는 여자는 서로 지나온 삶을 나누며 또 다른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일상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결국 삶과 죽음입니다. 폭탄 테러가 끊이지 않는 전쟁터와 위험이 일상화된 도시에서의 삶은 생과 사의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그 속에서 그들의 인연은 삶의 선물과도 같습니다. 편지를 쓸 때마다 행복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해합니다. 매일이 전쟁터 같은 삶을 살아가려면 오직 현재에 머무르는 법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수많은 책, 영화, 음악이 함께 합니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뿐만 아니라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 영화 <가스등>, <위대한 개츠비>, <설국열차> 그리고 터틀즈의 <해피 투게더>, 짐 크로스의 <Time in a Bottle> 등이 어우러지며 오감을 자극하는 글을 맛볼 수 있게 합니다. 


휘발성 삶에 익숙한 오늘날, 깊게 묻어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유독 부러워집니다. 나를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위로가 되는 존재가 있다는 게 이토록 큰 위안이 된다는 걸 보여준 <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읽는 내내 이 둘은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만난 이후의 삶 역시 궁금해지는 양가적인 감정이 듭니다. 여운이 길게 남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저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생각나더군요.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고 나니 깨닫게 되는, 그 시절의 불안과 외로움을 위로해 준 무언가를 생각해 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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