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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변상련
김유례 지음 / 유연한날 / 2022년 7월
평점 :
웬만해선 입 밖에 내놓지 않는 단어, 똥! 내 평생 '똥'이 들어간 단어를 이 책을 읽으며 다 만난 느낌입니다. 여기도 똥, 저기도 똥...
번아웃 증후군에서 벗어나고자 방콕에서 보내며 마음속 실타래를 풀어낸 <뒷걸음치다가 열대야를 피했다>의 김유례 작가의 두 번째 책 <똥변상련>은 더 시원하고 상쾌하게 비움의 미학을 선보입니다.
똥방귀 이야기에 입틀막하며 킥킥대다가 지하철에서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생존 게임을 펼쳐야 하는 급똥을 마주하며 결국 세상사는 돌고 돈다는 이치를 깨달은 작가. 누구나 다 똥싸개들이지만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 우리의 가장 흔한 민낯에 대한 이야기 <똥변상련>.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기는 동병상련처럼 먹고 싸야만 하는 숙명을 가진 우리들의 똥에 얽힌 에피소드가 때로는 애잔하게 때로는 빵 터지는 웃음으로 펼쳐집니다.
똥에 대한 별의별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똥 만드는 기계도 있다 해서 저도 궁금증이 도져 찾아봤어요. 그 기계의 정체는 인체의 소화 과정을 재현한 클로아카라고 부르는 기계입니다. 사람의 소화작용처럼 음식을 넣은 후 똥을 생산하기까지 25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요. 저 거대한 똥통이 축소된 배를 바라보면 인체의 신비를 절감하게 됩니다.
뒷간에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른 것처럼 꽉 막힌 것들이 해소될 때의 그 개운함은 모닝똥, 1일 1똥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똥 통, 똥꼬발랄, 똥 손, 똥값, 똥폼, 똥고집, 똥줄, 똥 군기, 지우개 똥, 똥개, 별똥별... 그러고 보면 똥을 붙여 만든 단어가 꽤 많고 꽤 자주 쓰고 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찌꺼기라는 것 때문에 더럽게 보면서도 때로는 귀엽게 쓰일 때도 있으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똥변상련>에 등장하는 똥이 들어간 단어들은 김유례 작가의 사적인 에피소드가 더해져 웃음을 안겨 준다면, 그 단어들을 마주한 독자 역시 저마다의 에피소드가 쏟아질 겁니다. 억누를 수 없는 똥. 결국은 배출해야 합니다. 신기하게도 마음을 이야기할 때도 이 똥 철학이 유용하게 작용합니다. 배설의 쾌감은 마음의 묵은 짐을 벗어내는 것과도 같습니다.
"비움에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미니멀라이프 책에나 등장할 법한 문장이 여기에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듯 말입니다. 공중 화장실에 예민한 저자가 최대한 집에서 해결하려면 시간을 정해서 투자해야 했습니다. 채워 넣기에만 바빴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똥과 관련한 짧은 글쓰기의 정수를 보여주는 <똥변상련>. 직설적인 똥 그 자체의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똥을 비유한 관계와 상황을 이야기하는 에피소드도 흥미진진합니다.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이들을 두고 똥 싸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라고 말하고, 어려운 처지에 혼이 날 지경일 땐 피똥 쌀 지경이라고 말하듯 인생살이를 비유할 때 똥은 빠지지 않습니다.
절친 사이에 서로의 안부를 묻는 중요한 수단이 되는 것도 똥입니다. 거리낌 없이 변비에 좋은 차를 추천하기도 하면서 똥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함께 있으면 마음 틈틈이 막혔던 숙변들이 쑥하고 밀려납니다.
먹고 싸야 하는 존재로서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다른 스스로의 두 얼굴을 마주하는 <똥변상련>. 똥이라는 한 글자가 가진 매력이 참 묘합니다. 시원한 쾌변처럼 채우고 비우는 일을 순조롭게 해내는 삶을 희망하는 김유례 작가의 똥꼬발랄한 똥=인생 이야기를 만나보세요.